2015년 9월 26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방글라데시



부자라고 다 행복한 건 아니라는 말을 흔히 하곤 한다.

맞는 말이다.

재산은 많지만 속사정이 괴로운 사람도 많다.


최빈국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1위라는 보고도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거다.

물질의 풍요만이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표적인 예로 종종 인용된다.


그런데 우연히 TV를 통해 방글라데시를 보니

행복지수 1위라는 게 정말인지 의심이 생긴다.

그들의 빈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하루 한 끼의 식사도 장담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행복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거의 없다.

그리고 카메라에 비친 그들 역시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얼굴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근심으로 가득했다.


통계란 누가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조사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조작되고 뒤틀린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풍족함이 행복이 아니듯 극단적인 결핍도 행복일 수는 없다.

물질의 풍족함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은 

마치 없으면 더 행복하다는 듯한 왜곡된 여운을 남기고 

그런 왜곡된 인식을 부추기는데 

방글라데시의 매우 미심쩍은 행복지수가 동원된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것은 

정도를 넘어서는 부족함 속에선 행복하기 어렵다는 

구체적이고도 체험적이며 역시 뜬금없는 실례를 내가 하나 알고 있다는 거다.


바로 일 년에 한 번 작품을 할까 말까 한 김아중 팬으로 사는 것.

볼 영화가 없어서 손가락이나 빨고 사는 것.

이거... 결코, 행복하지 않다...

아니 행복해질 수가 없다.


김아중은 팬들의 행복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매년 새해 공약은 물 공약이냐! 물 공약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팬 안 했다! 안 했다!


라고 하면 안 되겠지...

난 무서운 아저씨가 아니야...

아, 근데 낙이 없어...


오래전에 본 영화 '달콤한 인생'에 이런 대사가 있었단다.


『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아중 영화 세 편이 동시에 개봉하는 꿈...






그 무대 인사마다 따라다니는 꿈...


사인도 받고 아는 척도 해보고 악수도 해보고...

한 번만이라도...




(사진 출처: 밀튼 스텔리 http://www.miltonstelle.co.kr/)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투표하기



요즘 매일 하는 일이 있다.

아래 주소로 가서 하루에 한 번씩 투표하는 거다.

http://votingstation.net/index.php?lang=ja&region=individual&global=01530036


      (9월 19일. 이상하게 표가 많았던 날)


어쩐 일인지 내 투표 위치는 다른 나라로 설정되어있는데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두고 있다.


일 인당 하루 한 표라는 제한이 없다면

온종일 키보드가 부서지게 찍어댈 수도 있는데

그렇게 못하는 게 아쉽다.


사실 난 아이디 두 개로 매일 두 개의 표를 찍는다.

미친...

나만 그럴 리는 없다는 개운치 않은 합리화로

매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 거다.


'오직 김아중을 위하여'...

때라고는 발톱의 때 정도나 있을까 말까 했던

내 때 묻지 않았던 삶을 헌 신짝 버리듯 버렸다는 

비장함과 아련한 순정이 뒤엉켜 돌아가는 느낌적 느낌...


저거 일등 하면 그 연예인 팬 미팅을 열어준다고 했던가?

뭐 이젠 아무래도 좋다.

이미 일등은 물 건너갔고 

그냥 소일 삼아 동네 한 바퀴 도는 할아버지의 심정으로

매일 김아중 사진을 한 번 보면서 아침을 여는 거다.

아무 의미없다...


근데 보면 김아중은 일본 표가 상당히 많다.

일본 사이트니 당연히...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 연예인 중에서 남녀 불문하고 일본 표는 가장 많다.

김아중의 어떤 면이 말도 안 통하는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까지 움직이는지 신기하다.

나를 움직이는 김아중의 모든 매력이 그 어떤 면이긴 하겠지만...


음... 더 할 얘기는 없고

나처럼 심심한 분들은 투표나 하시기를...

결코, 당신처럼 심심할 리 없다는 분들도 하시기를... 

두 번, 세 번 하시기를...


만에 하나라도 김아중 본인이 이 글을 본다면... 

아, 그런 개꿈 같은 일이 이 가을에 정말 일어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자신에게 투표하시기를...

심심하지 않으시냐는...

일가친척 모두 다 함께...

쑥스러울 거 없다는...

원래 저런 투표란 자기 찍는 거라는...


그런데 루마니아 사람들도 한국 연예인들한테 투표를 많이 한다.

정말 의외다.

김아중도 꾸준하게 루마니아 표를 얻고 있다.

한류라는 게 있긴 있는 모양인데

루마니아 사람이 한국 연예인을 좋아한다라...

나한테는 좀 수수께끼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나의 스릴



난 롤러코스터 타는 게 좋다.

천천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잠시 머뭇거리는 정적이 흐른 후 갑자기 뚝 떨어지며

숨이 막히고 오금이 저리게 되는 그 느낌.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 같은.


잠깐의 무중력 상태,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빠른 속도와 회전.

모든 게 끝난 후의 나른한 안도감. 

그런 것들이 좋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난 뒤에는 놀이공원에 갈 일이 없어져서

마지막으로 타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번지 점프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축 늘어진 오징어 같은 내 몸으론 이제 무리다.


스포츠와 관련해서 시청하는 유일한 운동 경기는 F1 자동차 경주다.

빠른 속도와 고성능 엔진의 날카로운 고음은 무료한 심장을 뛰게 한다.

그래서 내 드림 카는 정지선에서 미친 듯 튀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늘에서 돈이 궤짝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내가 타볼 일은 없을 거다.


몸은 오징어처럼 물렁거려도 마음만은 짜릿한 스릴을 원한다.

롤러코스터나 F1처럼 빠른 속도가 주는 스릴이 좋지만 

나이가 드니까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스릴을 느낄만한 일이 거의 없다.


내 벨 소리는 김아중의 'Show me your heart'다.

내 기억엔 이걸 사용한 지 적어도 반년은 넘었는데 

그간 아내가 아무 말이 없었다.


난 아내가 김아중 노래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나이는 다른 데로 먹었으려니 하며 지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벨이 울리면 언제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 가슴이 따끔거려서

최대한 전화를 빨리 받는 것이 습관이 됐다.


며칠 전에도 쓸데없는 스팸 전화가 오기에 

평소처럼 날쌘 동작으로 그냥 꺼버렸는데 

그날따라 아내가 지나가는 투로 

"당신 그 벨 소리는 뭐야?

당신이랑 안 어울리는데... 좀 의외야.ㅎㅎ"

하는 거였다.


헉. 

아내가 여태 이게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니.

이럴 수가.

올 것이 왔구나. 

난관이다. 하는 등의 온갖 생각에 등줄기가 저릿해지는 순간

아내 옆에 있던 큰 애가 갑자기 당연하다는 투로

"김아중 아니에요?"

하며 뜬금없이 튀어나와 내 생각을 딱 가로막았다.


아니, 이놈이가 그걸 어떻게...

이제 보니 이놈 이거 무서운 놈일세...


"잉? 김아중? 참, 나...ㅎㅎ"

아내는 자기가 여태 몰랐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벨 소리까지 김아중 노래로 듣는 게 어이가 없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모호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어 맞어... 당신 여태 몰랐어?ㅎㅎ"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난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얼굴을 재빨리 스캔하면서 

당연한 걸 새삼 왜 그러느냐는 분위기를 최대한 잡았다.


... 나도 단련이 좀 된 듯...


"근데 어떻게 그렇게 했어?"

"아, 내 건 그냥 폰에 있는 노래를 벨로 지정하면 돼.ㅎㅎ"

"참, 별걸 다 해요.ㅎㅎ 내 것도 그렇게 되나?"


말하다 보니 폰에 김아중 노래가 있다는 걸 털어놓은 셈이었는데 

아들 애가 엄마 폰 벨 소리도 바꿀 수 있다, 

자기가 나중에 노래를 넣어주겠다고 다시 껴드는 바람에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얘기가 일단락되었다.

... 이놈이 병 주고 약 주고...


어쨌든 무사했다.

모든 게 지나간 뒤의 홀가분한 안도감.

물 간 오징어 같은 할배의 스릴...

김아중코스터.

요즘 유일한 스릴이다.


그래서 내가 벨 소리를 김아중 노래로 지정했는지도 모른다.

내 무의식이 은연중에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을 찾아낸 걸 거다.


그나저나 내 블로그가 발각된다면 그건 아내가 아니라

아들애 때문일 것만 같다는 걱정이 생겼다.

얘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은근히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이건 스릴이 스카이다이빙 수준인데...

김아중은 너무 스릴이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5년 9월 8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내 모자






이런 블로그에 내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는 건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블로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모든 얘기가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래서 말을 꺼내 보자면 난 머리가 작은 편이 아니다.


아, 햇살이 이렇게도 좋은데 이 무슨 뜬금없는 고백인가...


수학 부등식 단원을 자면서 배웠더라도 다 알겠지만

무엇무엇보다 작지 않다는 뜻은

그게 무엇이든 그것보다 크거나 같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 무엇이 무엇이든 난 큰 게 아니라

그 무엇과 같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


머릿속 내용물도 작은 편이 아니라면 바랄 게 없겠지만

그건 또 아니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 좀 있다.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더할 나위 없는 끝물에 이르렀지만

난 여름마다 은근히 모자에 신경이 쓰이는데 올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자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뙤약볕에 강아지와 산책이라도 하게 되면

챙 넓은 둥근 모자를 쓴 사람이 부러워지기도 하고

머리도 채 감지 않은 아침나절에 어디라도 급히 나갈 일이 생기면

어울리는 모자 하나가 절실해지는데

나로 말하자면 내게 어울리는 올바른 사이즈를 일반 마트나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발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원 사이즈 핏츠 올' 혹은 '프리 사이즈' 따위의

시답지 않은 설명을 붙이고 있는 모자들은

백이면 백 모두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그런 설명에 솔깃해서, 또는 머리가 짧을 때 억지로라도 맞는 듯해서 샀던 것들은

한 번의 세탁 과정을 거치면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얌전히 얹게 되는 사이즈로 변신하게 된다.


허접스러운 티셔츠 하나에도 대중소 세 가지 구분이 있는 마당에

어째서 모자 만큼은 하나같이 한 사이즈밖에 없는지 정말 궁금한 일이다.

예전 학창 시절엔 교모에도 사이즈 구분이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교모가 폐지된 이후에는 머리 큰 사람들도 덩달아 우리나라에서 폐지된 것인지,

모자 만드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수년 전에 우연히 미국이나 영국 가게에서는

XL을 넘어 XXL 사이즈까지 인터넷으로 판매한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건 마치 세상의 눈을 피해 어디에선가 숨어지내던 나의 동족들이

일시에 대밍아웃이라도 하는 듯한 숨 가쁜 감동이었고

누가 내게 이제 당신은 이 세상에 더는 혼자가 아니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모자라는 게 그다지 절실한 물건은 아니었고 또

그런 것까지 외국으로부터 사기는 좀 뭣하다는 생각에 그냥 부러워하고 말았는데

작년 겨울 미국에 머물 때 마침 생각이 나서

인터넷으로 겨울용 XL 사이즈 하나를 주문했었다.


예전에 L 사이즈 머리까지 문제없다던 모자를 한 번 구매했다가

그들의 L과 나의 L 사이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XL이었다.


내 소중한 개인 정보를 블로그에 까발리다니...


하여간 당시에 며칠을 기다려 XL 사이즈 모자를 받아들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머리를 넣어보는데

아무런 저항도 없이 머리가 모자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드디어 내 자리를 찾았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학창 시절 이래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

'모자를 찾아서'라는 길고 외로운 여정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는 성취감 같은 것들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여 마치 신세계라도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더구나 그 모자는 넉넉했다는 사실.

그랬다. XL은 내게도 넉넉했던 거다.

내가 늘 마음속으로만 웅얼거리던 작은 외침.

'난 그저 작지 않을 뿐이야!'를 확인했다는 것도 의의라면 의의였다.


이제 낮이고 밤이고 어디든 머리 안 감고도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긋한 기분.

이젠 내 머리를 구속하며 옥죄던 모자들은 가라...


무슨 모자 하나 사고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지만,

옷이나 신발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모자들은

스타일이나 사이즈가 다양하지 않아서

내 맘에 드는 것을 과연 살 수 있을지 그간 의문이 들었었기 때문에

모자를 찾았을 때의 기분은 남달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머리 작은 것들은 모른다...

니들이 뭘 아러... 니들이 모자를 아러?...


하지만 적어도 모자는 누군가 어딘가에서 만들기는 만들 거라는 희망은 있었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드는 거니까 말이다.

나보다 훨씬 심한 사람도 어딘가엔 자신의 모자가 있을 거라는

믿음까지 버릴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데 배우는 다르다.

내 맘에 딱 드는 배우.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할 수 없다.

김아중을 보기 전까진 나도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늘이 돕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배우들은 모두 그저 어딘가 맞지 않는 모자들처럼

잠시 머리 위에 얹어졌다가 어딘가로 잊혀가곤 했다.


김아중은 내게 꼭 맞는 모자 같은 배우다.

잘 맞아서 편안하고 바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지 않고

머리 대신 마음을 덮어주는 모자.

모자든 배우든 마음에 드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어쨌든 이번 여름에는 아마존에서 둥근 챙이 달린 여름 모자 하나를 샀다.

이제 내 사이즈를 아니까 실패하지 않는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맞는 모자가 여름과 겨울용으로 각각 하나씩 있는 거다.

마음은 김아중 하나로 사시사철 덮을 수 있지만

머리를 덮는 데는 대충 두 개는 필요한 듯싶다.


아내도 내가 잘 맞는 모자를 찾았다니까 자기 일처럼 좋아했었다.

그간 모자를 찾아 헤매던 나의 수고를 알기 때문이었다.

김아중을 찾았다고 했을 때는 말도 못하게 뜨악한 표정이더니...

그거 참...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