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김아중의 '나의 PS 파트너'를 봤다.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건지 고민이었다.




아무리 일코를 해제했다고는 하지만,

들이밀 때와 빠질 때는 구분하며 살아야 하는데 마침 수요일에 아내가


"당신 왜 걔 영화 보러 안 가?" 하며 물었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좋은 날도 온다.




'걔'가 누군지는 피차 아는 거고

제목이건 뭐건 아무것도 필요없이

아내에게도 그건 그냥 김아중 영화였나 보다.



"어, 봐야지. 내일 볼까? 조조 보고 ... 점심 먹고 들어오면 되겠네."



나는 잊고 있었다는 듯한 심드렁한 말투와 점심을 버무려

영화 보고 밥 먹는 매우 일상적인 흐름을 완성했다.




내가 김아중 영화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게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의미고

비록 이제 코스프레는 소용없을지라도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만큼은 끊임없이 해야 하는 거다.




아내도 내 제안이 흡족했는지 토를 달지 않았고

나는 내 잔머리에 흡족했다.

아내도 좋고 나도 좋고.




그렇게 해서 개봉 일주일이 지난 13일 목요일에

당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대 비굴하지도 않게 아내와 극장엘 갔다.

아내는 19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 아무 말 없이 표를 샀고




조조였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고

대형 스크린에서 6년 만에 다시 보는 김아중은 감격스러웠으며

영화는 매끄럽고 빠르고 재치있었고

나는 역시 마냥 행복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오래 앉아서 여운을 즐기고 싶었지만,

아내에게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계산 아래

미련 없다는 듯 아내보다 먼저 극장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부가 장면들을 놓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영화 끝나고 밥 먹고 간단한 쇼핑을 마칠 때까지

아내는 영화에 대해 가타부타 일절 말이 없었고

나는 몸을 사리느라 할 말이 없었는데

차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는




"김아중 보니까 좋으냐?ㅎㅎ" 고 물었다.

"응. 좋지.ㅎㅎ"

"나이도 모르고 주책이야.ㅎㅎ"


아내는 나에 대해 이제 포기했는지 아니면 달관했는지

얼마 전에 했던 말을 그대로 하더니 더는 말이 없었는데




내가 반응을 떠보려고 대사가 좀 그렇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거 때문에 보는데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PS 뜻은 알고 봤는지도 묻고 싶었지만

잘 넘어가는 사람 주저앉힐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그리고 12월 20일 개봉 2주가 지난 목요일

혼자 다시 밤늦게 영화를 보고 왔다.

내게 아직 그런 용기가 기특하게도 남아있었나 보다.




여전히 김아중을 보는 것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고 행복이었고

다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쪽 팔리는 것도 무시한 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끝까지 앉아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도 아쉽기만 했다.




극장을 나서니 'Show Me Your Heart'가 다시 귓가에 맴돌았는데

언제 다시 김아중을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지

언제고 다시 볼 수나 있을지 먹먹한 느낌이었다.




앞으로 또 몇 번의 추운 겨울이 지나가야 할지.

추운 날 또 다른 겨울이 걱정이다.





(사진 출처: 2012년 11월 22일 '나의 PS 파트너' 쇼케이스. 인터넷 여기저기)


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김아중 일코를 해제했다.



'해피투게더'(이하 '해투')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의 PS 파트너'가 개봉하는 날이었는데도 폭설 때문에 볼 수가 없었던데다
서울에서는 김아중이 팬들과 같이 단체 관람도 하는 상황에서
'해투'도 못 본다면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고
팬으로서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원래 계획은 나중에 다운이나 받아서
아무도 없을 때 조용히 감상하는 거였는데
어차피 '나의 PS 파트너'를 아내와 같이 보면
그동안의 내 코스프레를 아내가 다 짐작하고도 남을 마당에
굳이 마지막 순간까지 본색을 숨겨야 할 이유를 스스로 찾기도 어려웠다.
악당도 원래 마지막 순간에는 인심 쓰며 다 털어놓는 거니까...




그래서 '싸인' 이후 근 1년 넘게 세심하게 일구어낸 나의 소중한 일코를
스스로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사실은 못내 아쉽고 까닭 없이 두려웠지만
'해투'를 그냥 제시간에 보는 것으로
목요일 밤 8시쯤에 이르러 마음을 잡았는데
자폭을 결심하기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음은 물론이다.




마침 '해투'가 시작할 때 아내는 부엌에서 무언가로 분주했기 때문에
천우신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적어도 거실 TV의 리모컨을 내가 선점하게 됨으로써
잠시나마 채널 선택권이 내게로 귀속되었다고 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아내가 다른 프로를 먼저 보고 있는데
내가 중간에 채널을 바꿔 '해투'를 보자고 하는 것 같은,
감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최악의 무리수는 피할 수 있게 된 거다.




여름날 계곡에 먼저 자리 깐 사람이 임자 없는 물웅덩이 주인 행세하듯
TV도 먼저 앉아 먼저 보고 있으면 장땡인 거다.




그렇게 앉아 '해투'의 개그맨들 때문인지 혹은 김아중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혼자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는데
부엌에 있던 아내가 얼마 후에 다가오더니 재밌느냐고 물어봤다.

'아, 뭐 그냥.'




초긴장 상태에 빠지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는데
누워있던 강아지를 껴안고 뽀뽀를 하느라 TV는 건성으로 쳐다보던 아내가
부지불식간에 내 머리에 쿡하고 알밤을 먹이며 그랬다.




'아이고 왜 보나 했다. 그러면 그렇지.'
'주책이야 하여간... 나이는...ㅎㅎ'

아내는 다행히 묵인한다는 것인지 비웃음인지 모를 미소를 머금고
쓱 일어나 부엌으로 가더니 언제나처럼 미드를 봤다.





아 올 것이 왔다 갔구나 하는 후련함도 있었지만
어쩐지 후회도 밀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라니...




그간 당신 일코에 설마 하면서도 거의 속을 뻔했는데
당신 같은 김아중빠가 어디 가겠느냐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거의 먹혀들어간 일코를 조급하게 내 발로 차버린 건 아닌가 하는 후회와
아내에게는 역시나 하는 확신을 또다시 심어주고 말았다는 낭패감 등이 겹쳐
내 앞에 놓인 생이 약간 막막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내는 꽤 긴 시간 동안 부엌에서 얌전히 미드를 보며
나를 이해해줄 수도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해투'가 끝날 무렵,
전기장판과 김아중이 전달하는 따스함에 몸과 마음이 녹아내리던,
하지만 부엌의 움직임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던 내게 다시 다가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의도적이었는지 나와 TV 화면 사이를 떡하니
가로막고 앉아 강아지 양치를 시켜주며 말했다.




'보니까 좋으냐? 아이구 그렇게 좋아?ㅎㅎ'
'ㅎㅎ'

아내는 웃었지만 내게 침묵은 금이었다.
일코가 해제된 상태에서 같이 웃는 것 외엔 할 말도 없었고.




그간 아내가 속아 넘어갔든, 속을 뻔했든, 아니면 속아주는 척을 했든
일코는 나 혼자 하고 나 혼자 만족하는 작은 비밀이었는데
이제 그만두게 되니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느른한 삶에 일코가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이 나쁘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의 PS 파트너'까지 보고 나면 일코 해제가 아니라 무장 해제 수준일 거다.
그때는 납작 엎드려 죽은 듯 지내는 게 상책일 텐데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할 일이다.




지금은
오랜만에 출사표를 던진 김아중에게
아무 걱정도 없이 아무 대책도 없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사진 출처: 2012년 12월 6일 KBS 2TV 해피투게더.
디시인사이드 김아중 갤러리 개념글 중에서, 금손 Vivien 캡처
http://gall.dcinside.com/list.php?id=kimajoong&no=57939&page=1&recommend=1&recommend=1&bbs=)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김아중의 나의 PS 파트너 개봉!


대박을 기원합니다.

파이팅!




(사진 출처: 인터넷에서 주워 옴)


김아중 팬 약자



여러 해 동안 김아중 팬질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잘 몰랐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많은 것에 등급이 있어 때론 사람을 울리고 웃기듯
팬에도 상중하의 급이 있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드는 거다.





상과 중을 나누는 기준은 별거 없다.
김아중을 만나봤다면 상, 아니면 중급이다.

가히 팬질의 끝, 팬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직접 만나서 사진 찍고 사인을 받는,
정말 할 일 없는 팬이 아니라면 범접할 수 없는 상급.




중과 하의 경계도 별거 아니다.
팬 활동을 하면 중, 아니면 하급이다.

팬클럽이나 카페, 갤러리 등에서 활동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팬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TV나 영화에 나오면 눈여겨보면서도 팬클럽에는 가입하지 않는,
티는 안 내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 팬들은 하급이다.




이 중간에 상에 이르지 못한 한을 품은 채 팬클럽을 떠도는,
역시 할 일도 없는 팬 대부분은 중급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처음 팬질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아중과 같이 사진 찍는 팬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거를 할 수 있으리라, 어깨동무까지는 몰라도
악수를 빙자하여 그 하얗고 고운 손을 아무 이유 없이 두 손 모아 잡아보리라
생각하며 꿈에 부풀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도 팬질의 끝을 당연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스스로 판단하건대, 나는 중급의 어느 끝자락에 매달려있다는 생각이었고
조금만 더 지나면 곧 상급으로 진입할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팬질의 정상을 바라보며 할 일이 이렇게도 없을까 싶은 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은 거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상 단계로의 진입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만나면 뭐 할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거나 일단 만나고 말겠다는,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진 않는 각목 같은 의지와




내가 바로 팬이다 하고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비록 그것이 쌀 한 톨만큼이라 해도,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아쉽게도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듯한, 그런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의지와 용기가 내겐 없다는 생각이 이제 든다.
원래 그런 게 없었는지 혹은 세월이라는 벽이 막아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거 수많았던 팬 사인회와 팬 미팅, 레드카펫을 바라볼 때는
그래도 '나도 언젠가는' 하는
기약 없는 가느다란 희망 하나가 있었는데




최근에 대책 없이 마구 쏟아지는,
이유도 가지가지인 각종 시사회와 무대 인사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함에 가위눌리듯 버둥거리다가 문득 깨달은 거다.




의지박약인 나는 지난 6년간 언제나 이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는 걸 말이다.




내가 그런 곳에 가서 실제로 김아중을 보는 것은
김아중이 쓴다는 SF 시나리오보다 더 SF 같은 상상 속의 일일 거라는 걸 말이다.

... 내 6년 묵은 희망은 내 6년 묵은 속옷 고무줄처럼 삭아서 흐물거린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 넘쳐나는 김아중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서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아중의 숨넘어가는 듯한 맑은 웃음소리와
그 어느 바이올린과 피아노 2중주보다
더 감미롭고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김아중을 만나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며
찌질하게 추운 방구석에서 이런 글이나 쓰는 나는
팬 약자다.





(사진 출처: 2012년 11월, 12월 InStyle, Bazaar, 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