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3일 토요일

참을 수 없는 소심함



팬질의 꽃.

만나서 사진 찍고 사인받기.

항상 하는 얘기지만 내 생각엔 그런 게 팬질의 꽃, 팬질의 절정이다.




하지만 꽃이면서 동시에 또 끝이기도 하다.

팬으로서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가갈 수는 있지만 친구가 될 수는 없는,

잠깐은 괜찮지만 오랫동안 곁에 머물 수는 없는 것이

일반적인 팬이고 팬의 한계라는 생각이다.




꽃은 한 번 피면 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내려온다.




끝을 본 다음엔 사공 없는 배처럼 맴돌다가

차츰 멀리 떠내려가는 일만 남는다.




나는 몇 발자국만 떼면 끝에 다다를 수 있는데

그걸 못하는 팬이다.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이루고 났을 때의 성취감보다는

그 뒤에 찾아올 허탈감과 막막함이 겁나는

끝없이 소심하고 허접한 팬이다.




그래서 난 끝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 언제 그래야 할지

꼭 그래야 하는 건지도 분간할 수가 없다.




정상 다음엔 내리막이 있다면

차라리 바로 밑에서 정상에 오른 날을 상상하는 것이

오래도록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상상 속의 정상은 어색함도 없고 나이도 없고

내려올 일도 없이 언제나 까닭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김아중을 만나는 일은 상상보다

현실이 더 환상적일 거라는 상상도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막상 기회가 오면 어쩌지 못하고 흘려보내면서도

끊임없이 또 다른 팬미팅, 또 다른 기회를 꿈꾸는 이유다.




매번 비슷한 글을 쓰면서 어쩌면 나는 이유도 없이

김아중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을 수 없는 나의 소심함.

소심한 데는 약이 없다.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