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8일 금요일

아내한테는 김아중이 안 보여...



아이들이 멀리서 왔다 가고 나니 홀가분하면서도 허전합니다.

날은 아직 더웠지만, 아이들이 가는 그 순간 여름이 끝나는 것 같았어요.

지난여름이 한순간에 모두 추억으로 변하더군요.

늘 그래요.

마음에 찬 바람이 한번 지나갑니다.


마냥 울적할 뻔했는데 다행히 김아중의 '명불허전'이 시작됐지요.

예고편이 많이 방영된 덕에 아내가 자연히 제목을 알게 됐고

그래서 그런지 첫 회를 혼자 보기까지의 과정이 참 매끄러웠습니다.


김아중 나오니까 봐야겠다는 식의 껄끄럽고 어이없는 이유를

아내한테 들이밀 필요가 없었지요.

말 안 해도 내가 왜 보는지 알 테니까.


토요일 저녁에

'난 드라마 볼게.' 하고 그냥 혼자 보니까 다 되더라고요.

내가 드라마 보는 거에 대해 아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제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더라고요.


같이 볼까? 같은 헛소리는 물론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CSI 같은 거만 보니까요.

아내 쪽에서 말없이 넘어가기로 했다면 저도 조용히 넘어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죠.


늘 그랬지만, 김아중의 연기는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요.

어느 순간 이번엔 내가 그냥 최연경이야...

- 복마나아하~


예쁘기는 또 왜 그리 예뻐...

연기를 잘해서 예뻐 보이는 건지 예뻐서 빨려드는 건지...


하여간 첫 회는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고,

2회를 기다리며 주방에서 '코빅'을 보고 있는데 같이 보던 아내가

'어제 본 드라마 어땠어?' 하더군요.


마침 화면 아래에 김아중 김남길 어쩌고 하는 자막이 떠 있었어요.

새삼스럽게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나 싶었지만,

'난 뭐 괜찮았어.'라고 했지요.


내가 언제 김아중 드라마가 안 괜찮은 적이 있었어야 말이죠.

이런 대화는 늘 겸연쩍죠.

좋아하는 티는 삼가야 하니까 조심스럽고.


'내용이 뭐야?'

아내는 심드렁하니 냉장고에서 복숭아 하나를 꺼내며 또 묻더군요.


혹시 이 사람이 같이 보려고 이러나 하는 생각을 언뜻 하면서

'김남길이 조선 시대 의원인데 현재로 왔어. 김아중은' 하고 말하는 찰나...


'읭? 김아중? 김아중이 나와?'

'어? 몰랐어?'

'어쩐지... 아이구...'

'뭔 소리여? 아니 저기 지금도 이름이 써있구만...'


아주 황당했어요.

비록 흘낏흘낏 보기는 했지만

예고편을 그렇게 여러 번 보고도 김아중이 나오는 걸 몰랐다니요.

당장 TV 화면에도 김아중 이름이 계속 떠 있었는데

그건 내 눈에만 보였던 건지.


내가 아무 연속극이라도 잠깐 보고 있으면

그거 김아중 나오냐고 괜히 한 번씩 찔러보기도 하더니 말이죠.

어쩐지 드라마 본다고 하는데도 아무 말이 없는 게 좀 이상하긴 했어요.

김아중이 나오는 거 본다 하면 그만 좀 하라며 핀잔이었거든요.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하잖아요.

난 '아'자만 봐도 김아중이 생각나는데 아내는 그렇지 않겠죠.


아내는 눈으로는 예고편을 보고 있었겠지만

관심이 없으니 김아중을 인지하지는 못했었나 봅니다.


하기는 냉장고 속 갈아놓은 마늘은 아내한테만 보이죠.

저는 보이질 않아요.

초콜릿은 척 보이는데.


사람의 뇌는 묘한 면이 있어요.

괜한 의심에 빠지기도 하고, 빤히 보이는 것을 못 보기도 하고.

아이들이 가서 허전한 마음이 전혀 관계없는 김아중으로 달래지기도 하고.




(사진 출처: 2017년 8월 12일~  tvN 토일 드라마 '명불허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