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0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크로노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하죠.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안 가... 아직 젊...


나이 들면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이 젊을 때보다 떨어지고

그러면 같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감소해서

그렇게 느끼게 된다는 연구를 누군가 했다는 글을 얼마 전에 어디서 봤어요.


... 아, 복잡하다.


결국 기억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적으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건데

정보 처리 속도가 주요 원인이라는 건 뭐 그 사람 생각이고

제 생각엔 흥미로운 일 자체가 줄어든 것도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힘들게 처리해서 기억까지 하고 싶은 일이 점점 없어지는 거죠.


어린애들은 지나가는 강아지만 봐도 신기해하고 흥미를 보이잖아요.

제 경우엔 이제 그렇지 않죠.

아무 흥미로운 일 없이, 기억해야 할 일이 없이 흘러가는 날이 대부분이에요.


그렇게 일주일이 가고, 한 달 또 일 년이 가죠.

특별했던 날은 며칠 되지 않고 일 년은 그 특별했던 며칠로 기억이 돼요.

일 년이 며칠 사이로 너무 빨리 지나간 느낌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뒹굴다 보니까 여느 때처럼 문득

제 시간은 김아중 따라 흐른다는 깨달음이 오더란 말이죠.

참, ... 대단한 깨달음...


제게 특별한 날이란 김아중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는 날이었거든요.

물론 개인적으로 좋은 날, 슬픈 날 등 기억하는 날은 있지만,

김아중의 작품이 나오면 초대형 특별함이 더해지는 거죠.


2006년 미녀는 괴로워를 시작으로 09년 그저 바라보다가,

10년 선물, 등 제 지난 시간 속엔 김아중 작품이 놓여있어요.

그런 해는 한층 더 특별하게 기억되고 그만큼 길어진 느낌이죠.

아니 단순히 길어졌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뭔가 명절 전에나 느낄법한 화려하고 풍성한 느낌이 있어요.

반면에 작품이 없던 해는 그만큼 기억할 일 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죠.


김아중은 제 시간을 기억나는 날로 만들기도 하고 안 그러기도 하죠.

제 시간을 길게도 혹은 그저 사라지게 할 수도 있어요.

시간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현실판 크로노스 (Chronos) 입니다.

누가?

김아중이...


근데, 김아중은 아직 자신의 파워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 조절자로서의 각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거죠.

그 왜 영화 보면 처음엔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고 막 싸다니는 히어로들 있잖아요.

김아중이 딱 그 짝이죠.

예쁜 거 믿고 막 돌아다니며 팬들 가슴에 불이나 싸지르는 겁니다.

마구 사고 치며 다니는 거예요.

자신의 진정한 파워를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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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라, 크로노스 처자, 김아중!' 이러면 또

'내가?... 크로노스?... 이게 과학적으로 말이 돼?...' 이러면서 고민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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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든 영화든 얼른 하나 찍어야 내 시간이 늘어나는데...

각성을 해야 말이지...




(사진 출처: A+G 엣지, 쭈's Diary: https://blog.naver.com/sungdevilsh/221510442963)


2019년 4월 1일 월요일

김아중 그리고 다시 본 '그저 바라보다가'


오랜만에 '그저 바라보다가'를 다시 봤습니다.

우연히 5회를 봤는데 잊고 지냈던 소소한 대사나 장면들이

기억에 새롭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다 다시 봤죠.


첫 방영을 2009년에 했으니 어언 10년이나 지난 드라마가 됐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속 핸드폰 말고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네요.


그바보는 대체로 코믹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지만,

지수와 강모 쪽 얘기는 다시 봐도 칙칙합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이에요.


극이 진행되면서 지수가 조금씩 동백을 배려하기 시작하면

묘하게 저도 동백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죠.

동시에 지수는 지수가 아니라 김아중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차츰 환상이 시작돼요.


사실 저는 김아중이 나오면 어느 걸 봐도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 속 인물과 김아중을 동일시하기는 하거든요.

근데 그바보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하죠.

지수가 딱 김아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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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 그런가?...


4회에서 지수는 동백에게 자신은 스크린 속의 여배우일 뿐이라고 당부를 합니다.

동백에 대한 연민을 억누르며 사무적이고 냉랭한 분위기를 만들죠.

물론 이뻐요... 무표정한 얼굴도...


하여간 그건 마치 김아중이 제게 던지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어요.

지금 지수를 연기하고 있는 거지 김아중 자신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맘대로 착각하며 꿈꾸지 말라고 말이죠.


'저어, 할아버지! 정신 좀 차려보세요. 정신!'

어깨 붙잡고 막 흔들다가 양쪽 뺨을 번갈아 짝짝 쳐대는 느낌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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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김아중이 그러겠어...


문제는 지수가 참 예쁘게도 나온다는 거예요.

시도 때도 없이 김아중이 등장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예쁩니다.

쌀쌀하거나 살갑거나 웃거나 울거나

지수든 김아중이든 장면마다 참 예쁘게 나와요.

정신 차리고 둘을 구분한다는 건 대충 불가능해집니다.

아무리 뺨을 처맞는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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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제가 김아중 팬으로 살기를 선택한 게 아니었죠.

팬의 삶을 받아들인 겁니다.

불가항력이었어요.


시간 참 빠르죠.

화면 속 김아중은 기억 그대로 웃고 있는데...

그때 드라마를 두세 개만 더 할 수 있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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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시간이 자꾸 아쉽네요.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3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