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8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기억






컴퓨터는 필요 없는 파일을 지울 수 있지만, 

사람의 기억은 그게 안 되죠.

행복하고 중요한 기억만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고등학교 시절에 싫어하던 동기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가끔 얼굴이 기억납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기억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죠.


아마 그 친구와의 씁쓸했던 경험이 제 기억 

회로 어딘가에 생채기를 낸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가끔 형광등 깜박이듯 '지직' 하고 

기억 회로에 오작동을 일으키며 뇌에 달갑지 

않은 신호를 보내는 모양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 머리에 어떤 엉뚱한 

기억이 남아있을지 나도 알 수 없다는 것은 

불편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합니다.


가끔 김아중을 생각해보면... 

아니, 자주... 


아니, ... 그래요 매일.

매일 김아중을 생각해보면 김아중은 팬에 

관한 걸 잘 기억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생각에는 

세월이라고 부를만한 긴 시간이 지난 뒤에

김아중이 의도치 않게 이 블로그를 

기억하면 어쩌나 싶어요.


어느 날 김아중이 한가히 누워 떡을 먹는데 

지지직 하며

'아, 그 블로그 하던 놈...!'

이라는 기억의 생채기가 뜻하지 않게 

작동할 수도 있는 거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기억.


식겁해서 떡고물에 사레들기 십상이지만

그때 제가 도와줄 방법은 안타깝게도 없습니다.

김아중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


홀연히 나타나 떡고물 사레만 안기고 

사라지는 무정한 놈의 추억...





그런데 나중에 저는 김아중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저는 가끔 김아중의 작품들을 연도별로 

떠올려보곤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작품이 듬성듬성 있기 때문에 연도가 

잘 안 외워져요.


그걸 왜 외우고 앉았느냐 할지 모르는데

그냥 할 일 없는 덕심이죠.






도대체 김아중이 놀 때 

팬들은 뭘 해야 하느냔 말이지...


지금부터 한 15년 후에도 저는 계속 그러겠죠.

낮잠 자려고 누워서.

잠들락 말락 할 때.

제 버릇 개 주는 거 아니니까요.


바로 그때 2020년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기억이 가물가물 이어지다가 2020년에 이르러 

지이익 하고 낡은 LP판 튀듯 삑사리 나는 거죠.



아 2020년에 뭐였지?... 뭐가 있었나?

아, 기억이... 치맨가...?







눈 감은 채 기억의 미로를 헤매며 뒤척이다 

소중한 낮잠을 놓칠 게 틀림없어요.


하지만 김아중이 올해 뭔가를 한다면 

다 틀렸다고 하기엔 아직 약간 이른 올해 

그래도 뭔가 한다면 

제 미래가 서사적으로 웅장해지는 겁니다.


데뷔 2004년 어깨동무. 딱.

2006년 미녀는 괴로워. 딱.

.

... (중략) ...

.

2019년 나쁜 녀석들 딱.


2020년 000. 딱. 


그다음에 뭐, 딱.

그다음 뭐. 딱. 

딱, 딱, 딱, ...






줄줄이 외우고 더없이 벅찬 가슴으로 

낮잠에 빠질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때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을지.



(사진 출처: 2019년 9월 11일 개봉 '나쁜 녀석들 : 더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