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김아중 그리고 내비게이션





얼마 전 부모님 산소로 잘 가고 있는데
내비게이션이 평소와 다른 길을 지시하더군요.
교통 정보를 반영한 새로운 경로라나 뭐라나...

하지만 20년 넘게 다닌 경험으로는
평소 다니던 길보다 나은 길이 없거든요.
막힐 시간도 아니었고.

그래서 안내를 무시하고 그냥 갔지요.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근데 어쩐 일인지 올 때도 자꾸 다른 길을 안내하더군요.
아무래도 모르는 새에 더 빠르고 좋은 길이 생긴 건가 싶어서
결국 안내를 따라 다른 길로 들어섰더니
과속 방지턱이 연달아 있는 좁은 길이었어요.

가끔 내비게이션의 논리 회로가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할 때가 있는 거죠.


내비게이션 탓을 하며 잠시 짜증이 났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는 길이 정말 최선의 길인지에 대한 의심이
늘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새로운 경로 안내를 따라간 것은
더 좋은 길이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가능성에 대한
저 자신의 유혹에 스스로 넘어간 것뿐이라고 볼 수 있었어요.


근데 현상 유지 편향이란 게 있다지요.
사람들은 웬만하면 현재의 상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네요.

대체로 아는 상표를 계속 사고, 익숙한 음식을 먹으며
카페에 가도 늘 앉던 자리에 가서 앉는다는 겁니다.
사람은 변화를 귀찮아하는 성향이 있다는 거예요.

물체에는 관성이, 사람 심리엔 현상 유지 편향이 있는 거죠.


제가 김아중만 보는 건 현상 유지 편향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다른 배우를 찾아본다는 건 귀찮은 일일 수도 있는 거니까요.

어떻게든 번거로운 일만은 피하자는 심리가
저도 모르는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했던 겁니다.

... 내 속은 나도 몰라...


하지만 저는 내비게이션에 따라 곧잘 길을 바꾸기도 하거든요.
이번만 그랬던 게 아니에요.

20년 넘게 다닌 길도 바꿨던 걸 보면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상 유지 편향이 과히 강한 사람이 아닌지도 모르죠.

게을러서 만사 귀찮아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그 현상 유지 편향이라는 것 때문에
김아중만 보는 건 아닌 겁니다.
뭐 당연한 결론이겠지만요.

하여간 저라는 인간은 내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놈인 거죠.

마음속에 내비게이션이 있어서 100m 앞 교차로에서
우측 여배우를 보라 그러면 언제든 볼 놈인 거예요.

에이 무슨~ 이러면서 앞만 보다가
더 멋진 영화적 풍경을 놓치진 않을 것 같은 놈인 거죠.


영화를 보거나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서겠죠.

그리고 행복해지는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하기만 한다면
설령 약간 돌거나 불편하더라도 이런저런 다양한 길을
가보는 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속 내비게이션의 소리에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마음의 안내를 못 듣고 속절없이
가던 길만 가는 거라면 좀 억울하잖아요.

잘 듣고 있다가 혹시 좌회전하라 하면 좌회전해보고
우회전하라 그러면 우회전도 해보는 겁니다.

그렇게 따라가기만 하면 저도 몰랐던 꿈 같은 배우가
미소지으며 서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머릿속 내비게이션을 잘 들어봤는데 말이죠.
얘가 별 말이 없네요.
안내랄 게 없어요.

영화 정보를 반영하여 새로운 배우가 탐색 되었다든지
우측 출구로 인제 그만 나가보라든지 하는 소리가 없어요.

아무것도 없이 아중리 방면 직진이라는 안내만 하네요.
업데이트도 제때제때 하고 있는데 ... ...
10년 넘게 출구 하나 없을 리가 ... ...
고장 났나? ... ...




(사진 출처: A+G 엣지 : CJmall: http://display.cjmall.com/)


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김아중의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무대 인사 후기





제가 사는 도시에서 무대 인사를 한다는 스케줄이 떴었습니다.

속절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하더군요.

가서 볼 것이냐? 말 것이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쉽게 손꼽을 수 있었지만,

가야 할 이유는 사실 없었어요.

팬이라면 가야 마땅한 자리라는 윤리적 측면을

고려해 볼 수는 있었지만요.


당일 아침까지 고민하다가 말다가, 결국 갔다 왔어요.

김아중은 모든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해요.

태풍 탓에 비도 꽤 많이 오던 날이었죠.


그날 사진 찍어보겠다고 복도에서 기다렸는데

엇! 김아중이 코앞으로 지나간 뒤에야 알아챘었죠.


이름을 불러야 하나? 뒷모습이라도 찍어?

하는 생각에 순간 머리는 최고속으로 터질 듯 돌아갔지만

막상 입이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무대 인사 때는 12장짜리 필름을 다 찍은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9장만 찍었고...


잘 되는 것 같은데 뭔가 약간씩 어긋났었어요.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만, 하필 그날이 그런 날.


'캐치 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제 옆의 팬은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었었고

저는 핸드폰 플래카드를 들었었지만,

김아중은 누군가를 찾는 듯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제 주위 말고는 소리 지르는 팬도 별로 없었는데 말이죠.

왜 저러는 걸까?... 싶었는데 이젠 왠지 알 것 같아요.


한 무리의 젊고 발랄한 팬들 사이에

뜬금없이 끼어있는 희끄무리한 할배에 놀란 거죠.


헉! 아까 복도 그 할배?... 너무 싫어...


본능적으로 시선은 먼 곳에...

김아중도 사람이니까 그런 거까지 숨길 순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이해가 가더라는...


김아중은 길지 않았던 무대 인사 뒤에는

다른 스케줄을 위해 곧바로 다른 도시로 떠나갔죠.

무대 인사라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개허무해요.


우리 동네로 온다니까 뭔가 다른 인연 같았고,

생의 마지막 기회인 거 같았고,

인사도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사인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았고,

막 꿈꿔오던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 꿈이었어요.


무대 인사가 끝나자 꿈꿔오던 것들도 다 꿈 같이 흩어졌지만,

김아중을 봤던 순간들도 지금은 자꾸 꿈처럼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이상하죠.

가까운 자리에서 또렷이, 생생히 봤는데도 말이죠.

너무 환상적으로 예뻤기 때문에 그런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좀 무리인 거 같고...


꿈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그날 거기 있긴 있었죠.

하지만, 김아중을 보던 그 모든 순간이 꿈처럼 느껴지는 건

그 순간들이 제겐 불가능처럼 여겨지던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제가 본 김아중은 사진이나 스크린 등

모두 2차원 평면 이미지였죠.

3차원 공간에서의 김아중이란 저처럼 소심한 사람에겐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상상의 세계였어요.


김아중에 관한 한 제게 현실은 언제나 2차원이고,

3차원은 오히려 비현실이 되었죠.

그러니까 제가 김아중을 실제로 보러 갔던 것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현실에서 비현실로의

기묘한 여행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성이 제가 김아중을 보고 와도

늘 꿈같이 모호한 이미지만 기억하게 되는 이유일 듯합니다.


환상적인 꿈으로 가는 여행.

하지만 깨어나면 허무하게 흩어지는.

     (아, 이 표정...)



저도 빵이랑 우유만 먹으면서 Jolla게 무대 인사 따라다니고 싶었는데...

우유를 마시면 탈이 나는 슬픈 짐승이라...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건지도... ㅎㅎ)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2019. 09. 22 찍은 슬라이드 사진들. 창에 비춰보기)




(라이트 박스 위에서 보기. 잘 나오진 않았어도 초점은 맞아서 다행.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