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4일 토요일

김아중 영화 개봉에 즈음하여...



며칠 전 저녁 먹고 TV를 보는데 아내가 갑자기
"김아중 영화 하더라?"라고 했다.




아, 내가 얼마나 기다리던 말이던가...
영화를 보려면 아내와 영화 얘기를 할 수밖에 없고,
순탄한 삶을 위해선 반드시 아내가 먼저 김아중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이번 영화를 어찌해야 할지가 내 화두로 떠오른 참에
누가 보우하는지 감사하게도 아내가 선방을 날려준 거다.




... 선방은 고마운데 아내가 아직도 내게 김아중 얘기를 한다는 사실은
좀 석연치가 않다. 이게 좀 많이 석연치가 않아...




나는 조금 놀랐다는 듯 띄엄띄엄 차분히 물었다.
"어떻게 알어?"
"티비보고 알았지."




"언제 한데?"
"몰라."




짧은 대화였지만 성공했다는 느낌이 팍 왔다.
가슴이 조용히 뛰었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당신 참 신기하다,
당신은 아직도 김아중한테 관심이 있느냐,
김아중은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 - 는 표정과 몸짓을
그 짧은 대화 속에 내가 남부끄럽잖게 모두 녹여낸 거다.




그러기에 의외라는 듯 얼라? 하는 표정이
아내 얼굴에 스치고 지나간 것 아니겠는가?

... 틀림없이 그런 게 스쳤다고 믿고 싶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 당신이 말한 김아중 나온다는 영화는 12월 6일에 개봉한다더라,
나도 봤는데 제목은 무슨 PS 파트너라더라. - 는 말을
적당한 기회에 적당히 무심한 말투로 흘리며 바람 잡는 일이다.




- 아 나도 PS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당신은 혹시 감이 오느냐,
편지 끝에 붙이는 PS, 추신 같은 거 아니겠느냐. -
하는 순진무구한 대사도 준비해놨다.




19금이다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건 극장에서 표 사는 마지막 순간에 알게 되는 것이 마땅한 거다.



- 젊은 애들 보는 남사스런 영화인 줄 전혀 몰랐다,
내가 알았다면 보러왔겠느냐,
추신 파트너가 대체 뭐길래 19금인 거냐,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보고 가자. -
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한 비상시 멘트도 외우고 있다.


하여간 난 요즘 아내 따라서 다시 열심히 극장에 다니며
007, 업사이드 다운, 살인 소설, 브레이킹 던까지 봤다.


- 나 요즘 그냥 아무 영화나 다 당긴다,
내달에 볼 김아중 영화도 그 연장선에서 해석함이 옳지 않겠느냐,
난 사심 없다. - 하는 분위기 마련을 위한 무언의 사전 작업이다.


물론 아내도 그렇게 생각해줄지 나로서도 심한 의문이 드는 것은
내가 외국 영화는 곧잘 봤어도 우리나라 영화는 통 안 본 때문이다.


사람들 다 봤다는 도둑들이나 광해도 안 봤고
아내가 뒤늦게 늑대 소년을 보러 가자고
여러 번 되물을 때도 매번 단호히 도리질했다.


돌이킬 수 없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다.
난 볼 수가 없다.
김아중이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 영화를 보는 것은 내겐 고역이다.


어쩌다 케이블에서 하는 우리나라 영화를 잠깐이라도 볼 때면
아 저걸 김아중이 해야 했는데,
아 김아중이라면 저걸 어떻게 연기했을까,


아 김아중은 저거 안 하고 뭐 한 거냐...
하는 잡생각은 물론 다른 여배우한테 일없이 샘이 나고
더불어 어쩐지 마음이 아파져 계속 볼 수가 없다.


어제 아내는 다시 '내가 살인범이다'를 보자고 했다.
난 또 싫다고 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은
어쩐지 비싸진 않아도 순결한 내 양심을 속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김아중 때문에 영화 하나에 양심을 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영화 하나에 양심이 괴로운 할 일 없는 사람도 있는 거다.


그래서 12월 6일이, 12월 전체가 시름시름 계속 걱정이다.
일 년 내내 우리나라 영화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이
다음 달엔 우리나라 영화를, 마침 김아중 영화를,


그것도 19금을 보겠다고 떠벌리면
지나가던 개라도 그 꿍꿍이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거다.


이번엔 최소 두 번은 봐야 할 텐데...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