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하다 보면 갑자기 회의가 들 때가 있죠.
예를 들어 게임 보스와 숨 가쁜 혈투를 끝내고
전장에 서서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는데 뜬금없이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응? 이게 지금 뭐 하는... ...
세상일이 불현듯 일일 연속극처럼 시시해지는 겁니다.
아이템이... 아이템이 죽어라 안 떨어져... ...
블로그도 하다 보면 그래요.
이 블로그는 뭐에 쓸까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드는 겁니다.
캡처하고, 보정하고, 쓰고, 고치고.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뭔가 목적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없어요.
게임 벌판에 서 있듯 허무합니다.
블로그는 아이템 보상도 없죠.
혼자 좋아서 한다고는 해도 더욱 회의가 드는 겁니다.
난 뭐지?... ...
그런데 수족관에 상어를 넣으면 다른 물고기들의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잖아요.
한가하게 사는 것보다 먹힐까 봐 긴장하고 끊임없이 헤엄치는 게
물고기 수명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제가 아내한테 이 블로그 들킬까 봐 늘 긴장 상태거든요.
아내가 컴퓨터를 한다고 하면
아까 보던 김아중 사진은 잘 닫았었나? 문서는?
하는 생각에 갑자기 긴장 모드가 되는 거죠.
블로그를 짊어지고 아내를 피해 끝없이 헤엄치는 겁니다.
수족관 둥근 복어처럼 쉴 새 없이 헤엄치는 할배...
나도 모르게 수명이 쭉쭉 늘어나고 있었던 거예요.
블로그 덕에...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데도 배가 이만큼밖에 안 한 것도
다 블로그 덕...
... 이러다 백 살도 넘기겠어...
그저 좋아서 하던 일일 뿐인데 얼결에
진시황도 못한 불로장생을 실현하게 생겼어요.
잘 되는 놈은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더니...
근데 생각해보니 어쩐지 김아중도 오래 살 거 같아요.
이 블로그가 신경 쓰일 거 아니에요.
자려고 누우면 불현듯 긴장이 되겠죠.
'하아..., 팬이라는데... 이 화상이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하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척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김아중도 수명이 쪼오끔 늘어나는 거죠.
내 덕에...
아니, 자신 때문에 생긴 블로그니까 스스로 수명을 늘리는 건가요?
일종의 자가발전?
사실, 김아중이 긴장을 왜 하겠어요.
이 블로그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쓸 텐데.
미안해서 해 본 소리예요.
나 혼자만 오래 살 거 같아서...
그러고 보니 이거 읽는 사람들한테도 괜히 미안하고 그러네...
나 혼자 막 벽에 x칠할 때까지 살 거 아니야... ...
근데 매일 긴장하면서 더 사는 거 하고
그냥 편히 빈둥거리다 가는 거 하고
어느 걸 더 좋아할까요?
수족관 물고기는...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