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7일 목요일

김아중 그리고 수족관 물고기



뭔가를 하다 보면 갑자기 회의가 들 때가 있죠.

예를 들어 게임 보스와 숨 가쁜 혈투를 끝내고

전장에 서서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는데 뜬금없이 허전함이 밀려옵니다.

응? 이게 지금 뭐 하는... ...


세상일이 불현듯 일일 연속극처럼 시시해지는 겁니다.


아이템이... 아이템이 죽어라 안 떨어져... ...


블로그도 하다 보면 그래요.

이 블로그는 뭐에 쓸까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드는 겁니다.


캡처하고, 보정하고, 쓰고, 고치고.

이렇게까지 하는 데에는 뭔가 목적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없어요.

게임 벌판에 서 있듯 허무합니다.


블로그는 아이템 보상도 없죠.

혼자 좋아서 한다고는 해도 더욱 회의가 드는 겁니다.

난 뭐지?... ...


그런데 수족관에 상어를 넣으면 다른 물고기들의 수명이 늘어난다고 하잖아요.

한가하게 사는 것보다 먹힐까 봐 긴장하고 끊임없이 헤엄치는 게

물고기 수명에 도움이 된다는 거죠.


제가 아내한테 이 블로그 들킬까 봐 늘 긴장 상태거든요.

아내가 컴퓨터를 한다고 하면

아까 보던 김아중 사진은 잘 닫았었나? 문서는?

하는 생각에 갑자기 긴장 모드가 되는 거죠.

블로그를 짊어지고 아내를 피해 끝없이 헤엄치는 겁니다.


수족관 둥근 복어처럼 쉴 새 없이 헤엄치는 할배...

나도 모르게 수명이 쭉쭉 늘어나고 있었던 거예요.

블로그 덕에...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사는데도 배가 이만큼밖에 안 한 것도

다 블로그 덕...


... 이러다 백 살도 넘기겠어...


그저 좋아서 하던 일일 뿐인데 얼결에

진시황도 못한 불로장생을 실현하게 생겼어요.

잘 되는 놈은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더니...


근데 생각해보니 어쩐지 김아중도 오래 살 거 같아요.

이 블로그가 신경 쓰일 거 아니에요.

자려고 누우면 불현듯 긴장이 되겠죠.


'하아..., 팬이라는데... 이 화상이 이번엔 또 무슨 헛소리를 하려나...'

하며 자신도 모르게 몸을 뒤척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김아중도 수명이 쪼오끔 늘어나는 거죠.

내 덕에...


아니, 자신 때문에 생긴 블로그니까 스스로 수명을 늘리는 건가요?

일종의 자가발전?


사실, 김아중이 긴장을 왜 하겠어요.

이 블로그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쓸 텐데.


미안해서 해 본 소리예요.

나 혼자만 오래 살 거 같아서...


그러고 보니 이거 읽는 사람들한테도 괜히 미안하고 그러네...

나 혼자 막 벽에 x칠할 때까지 살 거 아니야... ...


근데 매일 긴장하면서 더 사는 거 하고

그냥 편히 빈둥거리다 가는 거 하고

어느 걸 더 좋아할까요?

수족관 물고기는...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김아중의 '더 킹'을 봤다.



김아중의 영화 '더 킹'을 결국 봤습니다.

내려받은 지는 좀 됐지만 망설이고 있었어요.

본 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빨리 돌리면서 김아중 나오는 장면들만 찾아봤거든요.


야비한 동네 양아치처럼 단물만 쪼옥 빨아먹은 거죠.

하지만 만둣국 먹는데 만두 다 건져 먹었으면 일 끝난 거잖아요.

국물은 마시든지 말든지...


그러니 제 입장에선 다 본 겁니다...


혹시 영화 '더킹'에 관한 심도 있는 평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어라? 여기가 아닌가 보네.'일 겁니다.


가끔 하는 얘기지만, 저는 우리나라 영화를 딱 두 가지로 분류하죠.

김아중이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


영화에서는 단 한 가지만 봅니다.

김 아 중.


그러니까 당신이 김아중 팬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뒤로 가기 버튼을 가차 없이 누르세요.


국물 좋아하는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다는 거,

그 정도는 다 이해합니다.


작년 초였나요?

이 영화에 김아중이 출연한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땐

개인적으로 좀 난감했었습니다.


제목이 더킹이 뭐야 더킹이...

이제 와서 말이지만 자꾸 '펔잉'이 떠오르는 거예요.

어감도 안 좋고 허세스럽고 ...


거기에 내용도 부정한 권력을 향한 어느 남자의 몸 바침.

제 취향은 아니었죠.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골처럼 우려먹는 소재라 지겹기도 했고.


그걸로도 벌써 도리도리였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김아중의 배역은 출세하려고 안달 난 남자를 내조하는 아내였지요.


이럴 때 보통 영화들은 남편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온몸을 불사르는 헐벗은 아내 장면을 서비스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뻔하고도 저급한 설정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영화 제작 당시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오지랖 같지만, 그리고 변변치도 못한 팬이지만,

그래도 팬은 팬이니까.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야.

주연이 아니래.

분량이 다 잘렸대... ...



이~ 러~ 언 더킹을 봤나... ...





하지만,

속으로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모릅니다.

몸을 불사르는 그런 역이 아니라서 고맙기까지 하더라고요.






근데... ...




난 이유 없이 계속 '펔잉'이 맴돌아... ...





그런 거 있잖아요.

메뉴 사진에는 두부가 냄비에 흘러넘치듯 쌓여있는데

막상 실물은 두부가 냄비 바닥에 두어 점 깔린 두부 전골.

그런 거 받아들면 화나잖아요.


아무리 메뉴 사진은 실물과 다른 거라고 해도

두부를 적게 넣을 거면 처음부터 비지찌개를 끓이든가...

두부가 적은 건 둘째고, 속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죠.

짜증이 밀려와서 맛이고 뭐고 더는 관심이 없어지잖아요.


'더 킹'이 그런 경우였어요.

걱정했던 장면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뭔가 세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허탈함에 짜증이 나서

보고 싶은 마음이 당최 생기지 않는 영화였지요.


안도감과 짜증을 동시에 유발하는 기묘한 영화예요.


난 원래 비지도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도 두부 시켰는데 비지 내오면 화나지...


개봉했을 때는 아내한테 말을 못 하겠더군요.

개봉 전엔 늘 그랬듯이 나름 은밀한 계획을 품고 있었어요.


한가한 날, 아내가 고른 영화나 보러

일단 극장에 따라나서는 겁니다.

그다음 로비를 다정히 손잡고 걸으며

죽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들을 순진한 표정으로 훑는 거지요.

그러다 뜻밖이라는 듯 멈춰 서서

'어? 김아중 나오는 영화가 있네?' 하고

작은 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겁니다.

그러면 게임 끝.


나 이제 저거 알았으니, 본다. 하는 무언의 공식이 성립되는 거죠.

그렇게만 되면 다 되는 거였습니다...


근데 '더 킹' 포스터에 김아중 사진이 없어...

지나가면서 고개까지 꺾으며 돌아봤는데

섬네일도 없어... ...


하아... 고개 부러지는 줄... ...




역시 더킹... ...





사진도 없는데 김아중 나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가 의아해하면 곤란한 거거든요.

이미 알 거 다 알지만 그래도 나름 지킬 선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 저거 봐야 돼.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더군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아내는 알고 있었더라구요.

김아중 나오는 걸.

예고편을 어디선가 봤겠죠.

그런데 나한텐 입 딱 다물고 있었던 겁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속을 태웠었는데... ... 믿을 사람이 없어...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딱히 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었지요.

그건 팬으로서 정말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펀치' 때와 비슷한 상황의 영화를 본다는 건

두부 대신 비지를 내오는 부도덕한 상행위도

눈 감아 주는 것 같아서 속이 편치 못합니다.


나 하나 그런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후일을 기약해야죠.

다음엔 더 큰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언젠가는... ...



봄에는 뭐 좀 있겠지? 했는데... ...






꽃들이 다 지고 있네요...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7년 4월 11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몇 해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적이 있어요.

책 중간쯤에 고양이가 꼬리부터 사라지기 시작해서

미소만 남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앨리스가 그러지요.

미소 없는 고양이는 봤어도 고양이 없는 미소는 본 적이 없다고요.


책 속 삽화를 보면 나무 위에 희미한 고양이 얼굴 윤곽,

큰 눈, 그리고 웃는 입만 괴기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 가더군요.

꼬리부터 사라진다느니, 고양이 없는 미소라느니.

하지만 소설 전체가 워낙 기이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지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사실 애들을 위한 동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고 어른을 위한 동화 같지도 않고...

삽화가 너무 음산하고 등장인물의 대화와 행동들이

혼란스러워서 어렸을 때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어떤 계기로 그 부분을 다시 보는데 아! 하고 감이 오더군요.

... 나만 또 몰랐던 건가?...


그러니까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뜬금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아중이 나왔다가 퇴장하면

머릿속에 그 모습이 남잖아요... 이것도 나만 그런가...


하지만 김아중 모습 전체가 아니라

주로 표정, 예를 들면 웃는 얼굴이 떠오르지요.

대개 구두나 양말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꼬리부터 사라지는 겁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니죠.

눈 코 입은 점차 희미해지고 미소 짓던 환한 분위기만 떠오릅니다.

김아중 없는 김아중의 미소만 남는 셈이죠.

'고양이 없는 미소'란 그런 희미한 기억의 흔적일 겁니다.

맞을 거예요 아마.

아니라고 해도 난 상관없지만...


김아중이 아니었다면 '고양이 없는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아마 평생 몰랐을 거예요.

김아중은 뭘 또 이런 거까지 도와주는지...

감사한 일입니다.


알았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지거나,

아내가 당신 참 장하다고 칭찬할 일은 아닌 게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알았다는 사실은 좋은 거잖아요.

사람은 항상 배우는 거니까.


거기에 덤으로,

형상화할 수 없던 많은 낱말들을

이제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아중 없는' 기쁨, '김아중 없는' 슬픔,

'김아중 없는' 삐짐, '김아중 없는' 분노, 등

단어 앞에 '김아중 없는'을 붙이면 추상적이던 단어들마저

실체화되는 거예요.


... 하나를 알면 둘을 깨우치는...


머릿속에서 낱말들이 이제 살아 움직이게 된 겁니다.

김아중의 아련한 흔적과 함께 말이죠.

신기한 일이죠.

매직이에요.

김아중의 매직.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7년 4월 5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신입사원



예전 직장의 홈커밍 데이가 있었어요.

몇 년에 한 번씩 모이곤 하는데 이번엔 젊은 신입사원들이 보이더군요.


나이가 이십 대 후반 정도 같았습니다.

참 좋은 나이다. 하고 있는데 정식으로 소개할 때 보니까

나이가 삼십 대 중후반... 헐...

그런데 그렇게 어려 보였다니...


어릴 땐 나이 든 사람들의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고

나이가 들면 어린 사람들의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땐 대학생도 아저씨 아줌마잖아요.

하지만 머리가 조금 커지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제 경우엔 이제 많은 사람이 대충 비슷하게 어려 보이네요.


내가 눈썰미가 없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20대와 30대는 비슷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개인이 지내온 삶의 무게에 따른 편차도 존재하겠지만요.


돌이켜보면 저는 삼십 대 때 세상 다 산 줄 알았었지요.

좋은 시절은 지났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 그 신입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 생각이란 게 또 대개 비슷하니까요.


근데 이번에 보니까 삼십 대는 나이를 먹은 게 아니었어요... 차라리 어린 거였어...

그들은 이십 대와 구별이 안 될 만큼 푸르렀고 생기 넘쳤습니다.

삼십 대가 그렇게 푸르른 줄 몰랐기 때문에 속으로 많이 놀랐습니다.

스스로 나이 먹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 자신이 쑥스러울 정도였지요.


이 글을 우연히 보는 삼십 대 중에,

찬란했던 시절은 지나버렸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혹시 있다면,

내가 살아보니까 그런 게 아니더라고,

나도 몰랐는데 삼십 대도 참 좋은 시절이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엠마 스톤'의 'The fools who dream'이 ... 이거 꼭 내 노래 같은 ...

애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이 블로그를 본 삼십 대들이 모두 모이는 겁니다.


그중에 김아중 씨가.... ...




... Here's to the ones who dream...



그리고 제가 차례로 돌아가면서 따뜻하게 얘기해주는 거죠.






... Here's to the hearts that ache....





두 손을 꼭 잡았다가 손등도 쓰담 쓰담 하면서...

- 아중 씨, 아중 씨는요...

- 어디서 또 개수작이야...

... ... ... ...



이제 봄이라 그런지 낮에 자꾸 졸려요.

꿈에서 김아중이나 만났으면... ...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