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4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기억의 바다



고래 똥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고래가 바다 밑바닥에 사는 새우를 잡아먹고 수면으로 올라와 배설을 하면

바다의 인 화합물 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새우에 있는 인 성분이 고래 똥으로 변신해 승천하는 형국이죠.

물론 아무리 변신해도 칙칙한 그림이에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어쨌든 전 그 글이 여러모로 흥미로웠습니다.

일단 '똥'이라는, 내 느낌으로는 평소 말하기가 좀 민망한 단어를

보란 듯이 써댔다는 점이 눈에 띄었죠.

이거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했는데

자꾸 읽으니까 뭐 그런대로 어감이 친근하더란 겁니다.

똥. 똥. 똥... 똥그란,

똥똥한 내 배... 예쁘기도 하... ...


그리고 고래가 똥을 눈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누구나 알지만, 평소엔 굳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잖아요.

고래하면 망망대해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며

숨구멍으로 한가하게 물이나 쏘아 올리는 그림이 저는 떠오르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몰래 흘리고 있었던 겁니다.

많이 흘리고 있었던 거예요.

덩치에 어울리는 거대한 것을...

꼬리를 흔들어 흔적을 지우면서요.


자꾸 상상이 되는 거예요.

그 크고 점잖은 흰 수염 고래가...


그만 해!     

... 앞으로 고래 옆에서는 수영을 못할 거 같아요.

근처에 갈 일도 없겠지만.


사실 그 글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것은 그 하찮은 덩어리가

바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버려야 마땅할 것 같은 하찮은 것에도 예상치 못한 가치가 있었던 겁니다.

세상엔 천대받아 마땅한 게 없는 거예요.

버릴 게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이 쓸모없어 보이는 블로그가 다시 보이는 겁니다.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 블로그가 뭐에 쓸 일이 없었어요.

막 내다 버린다 해도 말릴 사람도 없고요,

아내가 안다면 컴퓨터가 박살이 나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위험성까지 내포하고 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고래 같은 일을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배우들은 작품 활동이 없으면 사람들 기억 밑으로 금방 가라앉죠.

근데 나는 그 기억 밑바닥에 가라앉아있는 김아중을

기억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김아중을 순환시키고 있었던 거예요.

이 시답잖은 블로그를 통해서요.

많이는 아니고 쪼끔...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을 한가하게 헤엄치는

배가 똥똥한 늙은 고래였던 겁니다.

똥그란 배가 슬프긴 하지만 역시 뭔가를 계속 흘리고 있었던 거예요.

많이도 내지르고 있었어요.

하지만 사람들 기억의 바다가 건강하도록 나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었던 거죠.

유기농으로...

근데 잘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나와 블로그와 고래와 고래 똥.


... ...


그만해야겠어요...

어감이 아무래도 안 좋아...

좋아지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