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하든 그에 맞는 적당한 자세가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사격을 한다든지 공을 던진다든지 할 때
적절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효율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만화책을 볼 때도 그에 어울리는 편안한 자세가 있죠.
요즘 저는 김아중의 '명불허전'을 어떤 자세로 봐야 할지 고민입니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라 김아중의 드라마를 공식적으로 TV에서 보려면 늘 고민이었죠.
혼자라면 TV 앞 1미터쯤에 목을 빼고 앉아
침을 흘리는지 마는지도 모르면서 보겠지만 언제나 그럴 상황은 아니죠.
제 처지에 어울리는 자세는 아닙니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죠.
중립적이고 무심한 듯한 자세가 여러모로 이익이 된다고 믿고 있거든요.
때로는 자세만 봐도 그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대충 쉬고 있는지를 알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김아중 좋아하는 걸 아내가 뼛속까지 안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최소한의 의사 표시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드라마 좀 볼까? 어이쿠 이런, 김아중도 나오네...' 정도여야지
'김아중이라니! 난 이제 밥 안 먹어도 좋아!' 이런 분위기가
자세에서 솔솔 풍겨 나오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누워서 보고 있어요.
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습니다.
아니, 김아중 드라마는 되도록 누워서 본 것 같은 기억입니다.
TV 볼 때 재밌거나 긴장되면 바로 앉게 되잖아요.
잘 봐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누워서 본다는 건 그게 무슨 프로든 별 게 아니라는 의미가 깔리는 거죠.
제 처지에 어울리는 무심한 듯 모호한 자세입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최선의 자세죠.
난... 저거 그냥 보는 거야. 딴 거 볼 게 없어서...
눕는다는 건 그런 의미를 온몸에 담아 아내한테 보내는 셈이죠.
백 마디 말보다 무심해 보이는 몸짓 하나가 더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나의 그런 가상한 노력이 아내한테 잘 전달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세상 편한 자세로 김아중을 감상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아주 자리를 깔았네, 깔았어... 또 침 떨어뜨리면서 보겠구만.
조심해서 꺼내는 말도 오해를 살 때가 있는데
설명도 첨부하지 않는 자세 하나에 나의 깊은 뜻을 담아 상대를 기만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아내는 김아중이라면 뭐든 의심부터 하니까요.
아내가 나 보고 로망이 아니라 노망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 그래서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억울한 오해죠.
내가 눕고 싶어서 혹은 편하려고 눕는 게 아니니까요.
김아중은 원래 똑바로 앉아서 봐야 하는 거거든요.
예술품을 누워서 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더구나 침이라니... ...
의관 정제하고 허리를 곧게 펴고 잘 봐야죠.
침만 안 떨어지면 입은 벌려도 상관없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러고 싶어요.
드라마 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생각이 많아집니다.
오늘은 어떻게 봐야 하나.
누우면 오해를 하고, 앉으면 티 내는 거 같고...
박물관의 예술품이라면 언제든 다시 가서 볼 수 있지만
지금의 김아중은 다시 오지도 않는데...
...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박물관처럼 역시 서서 봐야 하는 건가?
(사진 출처: 2017년 8월 12일~ tvN 토일 드라마 '명불허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