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4일 월요일

김아중을 보는 자세



어떤 일을 하든 그에 맞는 적당한 자세가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사격을 한다든지 공을 던진다든지 할 때

적절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거나 효율이 떨어집니다.

심지어 만화책을 볼 때도 그에 어울리는 편안한 자세가 있죠.


요즘 저는 김아중의 '명불허전'을 어떤 자세로 봐야 할지 고민입니다.

사실 이번만이 아니라 김아중의 드라마를 공식적으로 TV에서 보려면 늘 고민이었죠.


혼자라면 TV 앞 1미터쯤에 목을 빼고 앉아 

침을 흘리는지 마는지도 모르면서 보겠지만 언제나 그럴 상황은 아니죠.

제 처지에 어울리는 자세는 아닙니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죠.

중립적이고 무심한 듯한 자세가 여러모로 이익이 된다고 믿고 있거든요.

때로는 자세만 봐도 그 사람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대충 쉬고 있는지를 알 수도 있으니까요.

내가 김아중 좋아하는 걸 아내가 뼛속까지 안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최소한의 의사 표시만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드라마 좀 볼까? 어이쿠 이런, 김아중도 나오네...' 정도여야지

'김아중이라니! 난 이제 밥 안 먹어도 좋아!' 이런 분위기가

자세에서 솔솔 풍겨 나오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드라마를 누워서 보고 있어요.

전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습니다.

아니, 김아중 드라마는 되도록 누워서 본 것 같은 기억입니다.


TV 볼 때 재밌거나 긴장되면 바로 앉게 되잖아요.

잘 봐야 하니까요.

그러니까 누워서 본다는 건 그게 무슨 프로든 별 게 아니라는 의미가 깔리는 거죠.

제 처지에 어울리는 무심한 듯 모호한 자세입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최선의 자세죠.



난... 저거 그냥 보는 거야. 딴 거 볼 게 없어서...


눕는다는 건 그런 의미를 온몸에 담아 아내한테 보내는 셈이죠.

백 마디 말보다 무심해 보이는 몸짓 하나가 더 설득력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나의 그런 가상한 노력이 아내한테 잘 전달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세상 편한 자세로 김아중을 감상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아주 자리를 깔았네, 깔았어... 또 침 떨어뜨리면서 보겠구만.



조심해서 꺼내는 말도 오해를 살 때가 있는데 

설명도 첨부하지 않는 자세 하나에 나의 깊은 뜻을 담아 상대를 기만하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아내는 김아중이라면 뭐든 의심부터 하니까요.

아내가 나 보고 로망이 아니라 노망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 그래서일 겁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억울한 오해죠.

내가 눕고 싶어서 혹은 편하려고 눕는 게 아니니까요.


김아중은 원래 똑바로 앉아서 봐야 하는 거거든요.

예술품을 누워서 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더구나 침이라니... ...



의관 정제하고 허리를 곧게 펴고 잘 봐야죠.

침만 안 떨어지면 입은 벌려도 상관없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러고 싶어요.


드라마 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생각이 많아집니다.

오늘은 어떻게 봐야 하나.

누우면 오해를 하고, 앉으면 티 내는 거 같고...


박물관의 예술품이라면 언제든 다시 가서 볼 수 있지만

지금의 김아중은 다시 오지도 않는데...



... 귀하고 소중한 것들은 박물관처럼 역시 서서 봐야 하는 건가?






(사진 출처: 2017년 8월 12일~  tvN 토일 드라마 '명불허전'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