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국 김아중을 봤다.
보면 안 될 것 같았는데 보고야 만 거다.
보면 까무러칠지도 몰랐고
보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고
보고 나면 팬질 그만둘 것 같아서 두려웠지만, ...
봤다.
절벽 밑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서
무서우면서도 절벽 끝으로 다가가는 아이처럼.
그만큼 안 보고 버텼으면 됐다는 생각도 들었고
now or never라는 생각,
불꽃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여간 이제 나는 김아중을 본 숱한 사람 중의 하나다.
팬질 시작한 지 근 6년 만에 간신히 본 거라서
또 다른 단계 또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도 된 기분이고
못 본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말아야 할 것처럼 뿌듯하다.
나도 전생에 변두리 씨족 국가 하나 정도는 우습게 구한
괜찮은 사람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한 거다.
이 기분을 무슨 말로 할 수 있을까?
2013년 12월 29일 일요일 2시.
CGV 수원.
'캐치미' 무대 인사.
A 열 10.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 위치에 관한 문자 배열들이다.
남이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단어들이 이제
지워지지 않는 기호가 되어 내 시들어가는 뇌 한 편에 각인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오른편에 있던
얼굴도 모르는 여자 둘, 또 왼쪽 멀찍이 있던 여자 둘도
그 날의 기억으로 깊이 새겨진 것 같다.
아니, 여기 다 적을 수는 없지만,
그날 나를 스쳐 지나갔던 풍경과 사람들 대부분은
적어도 한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다.
그 날
집을 나서려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던 그 순간,
구멍 나지 않은 양말을 찾아 서랍을 뒤지던 그 순간,
매일 신는 낡은 운동화를 어쩔 수 없이 신던 바로 그 순간까지
모든 순간에 나는 망설이고 또 망설였지만,
내게 남아있던 쥐꼬리만 한 양심과 이성을 차마 떨치고
날카로운 첫 만남을 위해 기차를 타러 가고야 말았던 거다.
예매도 하지 않았는데 맨 앞줄이 텅 비어있었기 때문에
질긴 인연의 끈이라든가 또는 운명의 장난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설레는 말들을
주섬주섬 떠올리며 극장 안에 미리 들어가 앉아 있다 보니
가슴은 달랠 길 없이 고동치다 못해 요동을 쳤지만,
날카롭기는 개뿔...
김아중이 내 쪽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나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김아중이 내 쪽으로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내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플래시를 그렇게 터뜨려도
김아중은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거다.
그래도...
내가 눈이 워낙 나빠 잘 못 봐서 그렇지
김아중이 나를 힐끔 보기는 봤을 거라는,
나를 향해 말도 했을 거라는,
나를 본 김아중의 검고 깊은 눈동자는
'혹시 저놈이?...'라는 의혹과 불안의 경계에서
촛불처럼 난데없이 흔들리고 말았을 거라는
삼류 멜로 영화 같은 지칠 줄 모르는 망상...
그리고
멈출 듯 멈추지 않는 간헐적인 두근거림...
내게는 쥐뿔만 한 용기도 기회도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런 일도 생겼다.
보고 나면 어쩐지 팬질 못 할 줄 알았는데
아직은 그럴 맘이 요만큼도 없다.
내 참을 수 없는 소심함에 종지부를 찍게 한 마성의 김아중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두 점 부끄러운 일이 자꾸 생긴다.
(동영상 출처: 디씨 김아중 갤러리. 찍은 이; 옐로카드.
2013년 12월 29일 '캐치미' CGV 수원 무대인사)
(사진들은 동영상에서 캡처.)
(사진들은 동영상에서 캡처.)
(아래는 내가 직접 찍은 슬라이드 필름을 스캔한 것. 건진 게 없다.
원본 필름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