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비

 


아프리카 초원에 가뭄이 들면 
군데군데 남은 작은 물웅덩이에 온갖 동물들이 
모여들어 살아남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전엔 자주 봤어요.

요즘엔 잘 안 봐서 모르겠고요.


언제나 결말은 '비가 온다.' 였어요.

저러다 코뿔소, 코끼리 다 죽는 거 아녀?
하는 생각으로 조바심이 극에 달할 때쯤,

계산된 편집이었겠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초원엔 다시 나른한 평화가 왔죠.


엊그제 문득 김아중 팬들도 
참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팬들'이라면 마치 남의 일 같지만 
사실은 제가 아프리카 가뭄 한가운데 
내동댕이쳐져 있는 거죠.


죽도록 안 내리는 비와 안 나오는 김아중,

얼마 안 남은 물웅덩이와 
보고 또 보는 드라마에 의지하는 생존의 의미,

언제고 다시 올 가뭄과 작품 뒤 반복되는 공백기...

아프리카 동물과 제가 다를 게 없어요.


문명의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멀리서 바라본다면 저 역시 아프리카스러운 
삶의 환경 속에서 버둥대고 있었던 겁니다.


산다는 건 역시 다 그런 거구나,
덕질도 이런 치열한 야생의 맛이구나 하는
큰 깨달음을 또...


이제 수개월 내로 김아중의 '그리드'가 
방영될 거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엔 결국 비가 오듯
우리도 결국 김아중을 보긴 보는 겁니다.


버티다 보면 아프리카든 어디든 
좋은 날도 오는 거죠.

언제일지 모를 뿐 모든 것엔 
대개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비를 좋아하지 않아서
비 오는 날엔 더욱 떳떳하게 집에서 뒹굴지만

왠지 김아중은 비 온다고 집에서 뒹굴다가 
잠이나 자고 일없이 부침개나 부쳐 먹고 
그럴 거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뻔뻔하게 그런다 해도 알 순 없지요.

하지만 '그리드'에서 김아중은 형사거든요.

형사가 비 온다고 집구석에만 있으면 
눈치 보일 테고 보기에도 좀 그렇잖아요.


차가운 밤비를 맞으며 집을 나서는 거죠.

... 누가?

핏빛 붉은 가죽 코트, 
총 한 자루를 가슴에 품은 형사 김아중이요.


두루룽~.

저음의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코트 자락을 날리며
김아중은 어두운 폭우 속으로 사라지고

연로한 아버지는 젖은 눈으로 배웅하시는 겁니다.


이윽고 
비 내리는 깜깜한 부둣가 희미한 주황색 가로등.

젖은 머리 아래 드러나는 우수에 찬 눈빛.

김아중은 어둠 속의 범인을 향해 
천천히 총을 겨누는데

그 순간 귓전을 맴도는 아버지의 애절한 목소리.
'나 무서워. 이러다가는 다~ 죽어...'
.
.
떨리는 총신에 흐르는 것은 빗물인가 눈물인가...


.
.
.
아, 김아중.
우리의 김아중...

이번엔 방아쇠 좀 만져보려나...


아프리카는 억수 같은 비로 항상 마무리하던데
김아중도 홍수 날 듯이 내리면 좋겠습니다.


(사진 출처: 에이스 팩토리 네이버 포스트 '김아중 7년 찐 우정 공개')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291827&memberNo=44834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