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롤러코스터 타는 게 좋다.
천천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잠시 머뭇거리는 정적이 흐른 후 갑자기 뚝 떨어지며
숨이 막히고 오금이 저리게 되는 그 느낌.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 같은.
잠깐의 무중력 상태,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빠른 속도와 회전.
모든 게 끝난 후의 나른한 안도감.
그런 것들이 좋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난 뒤에는 놀이공원에 갈 일이 없어져서
마지막으로 타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번지 점프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축 늘어진 오징어 같은 내 몸으론 이제 무리다.
스포츠와 관련해서 시청하는 유일한 운동 경기는 F1 자동차 경주다.
빠른 속도와 고성능 엔진의 날카로운 고음은 무료한 심장을 뛰게 한다.
그래서 내 드림 카는 정지선에서 미친 듯 튀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늘에서 돈이 궤짝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내가 타볼 일은 없을 거다.
몸은 오징어처럼 물렁거려도 마음만은 짜릿한 스릴을 원한다.
롤러코스터나 F1처럼 빠른 속도가 주는 스릴이 좋지만
나이가 드니까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스릴을 느낄만한 일이 거의 없다.
내 벨 소리는 김아중의 'Show me your heart'다.
내 기억엔 이걸 사용한 지 적어도 반년은 넘었는데
그간 아내가 아무 말이 없었다.
난 아내가 김아중 노래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나이는 다른 데로 먹었으려니 하며 지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벨이 울리면 언제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 가슴이 따끔거려서
최대한 전화를 빨리 받는 것이 습관이 됐다.
며칠 전에도 쓸데없는 스팸 전화가 오기에
평소처럼 날쌘 동작으로 그냥 꺼버렸는데
그날따라 아내가 지나가는 투로
"당신 그 벨 소리는 뭐야?
당신이랑 안 어울리는데... 좀 의외야.ㅎㅎ"
하는 거였다.
헉.
아내가 여태 이게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니.
이럴 수가.
올 것이 왔구나.
난관이다. 하는 등의 온갖 생각에 등줄기가 저릿해지는 순간
아내 옆에 있던 큰 애가 갑자기 당연하다는 투로
"김아중 아니에요?"
하며 뜬금없이 튀어나와 내 생각을 딱 가로막았다.
아니, 이놈이가 그걸 어떻게...
이제 보니 이놈 이거 무서운 놈일세...
"잉? 김아중? 참, 나...ㅎㅎ"
아내는 자기가 여태 몰랐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벨 소리까지 김아중 노래로 듣는 게 어이가 없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모호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어 맞어... 당신 여태 몰랐어?ㅎㅎ"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난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얼굴을 재빨리 스캔하면서
당연한 걸 새삼 왜 그러느냐는 분위기를 최대한 잡았다.
... 나도 단련이 좀 된 듯...
"근데 어떻게 그렇게 했어?"
"아, 내 건 그냥 폰에 있는 노래를 벨로 지정하면 돼.ㅎㅎ"
"참, 별걸 다 해요.ㅎㅎ 내 것도 그렇게 되나?"
말하다 보니 폰에 김아중 노래가 있다는 걸 털어놓은 셈이었는데
아들 애가 엄마 폰 벨 소리도 바꿀 수 있다,
자기가 나중에 노래를 넣어주겠다고 다시 껴드는 바람에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얘기가 일단락되었다.
... 이놈이 병 주고 약 주고...
어쨌든 무사했다.
모든 게 지나간 뒤의 홀가분한 안도감.
물 간 오징어 같은 할배의 스릴...
김아중코스터.
요즘 유일한 스릴이다.
그래서 내가 벨 소리를 김아중 노래로 지정했는지도 모른다.
내 무의식이 은연중에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을 찾아낸 걸 거다.
그나저나 내 블로그가 발각된다면 그건 아내가 아니라
아들애 때문일 것만 같다는 걱정이 생겼다.
얘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은근히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이건 스릴이 스카이다이빙 수준인데...
김아중은 너무 스릴이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