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4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하늘





할 일 없이 뒹굴뒹굴하며 창 밖을 보면

다람쥐가 살지 않는 큰 나무와 그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바로 이 나무. 검색해보니 플라타너스와 비슷하긴 한데...)


한가하고 졸음이 몰려오는 풍경이긴 하지만, 나쁘진 않다.

바람이라도 불면 쏴 하며 나부끼는 나뭇잎들,

그 사이로 같이 흔들리는 하늘, 

그리고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창 밖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면서

편안하게 망상에 빠질 수 있다.


교정 잔디에 누워

아까운 줄도 모르고 시간을 죽이며 하늘을 보던 이래

요즘처럼 하늘을 많이 본 적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은 변한 게 없는데

내 몸은 많이도 변했다.


하늘을 보고 있자면

과거의 나도 지금의 나와 아무 차이 없는 같은 하늘 아래 누워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SF적인 허망한 생각도 들고


하늘은 세상 어디나 똑같이 연결되어 있어서

내가 여기서 보는 하늘이나

서울에서 보는 하늘이나 다 똑같을 것이니


내가 맥없이 하늘이나 볼 때 다른 누군가도 하늘을 본다면

그건 하늘을 통한 공간적인 조우,

공간적인 동시 접속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하늘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 사람도 하늘을 보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그래서 지금은 나만큼이나 할 일 없이 하늘을 쳐다볼 것만 같은

김아중 얼굴도 자꾸 떠오르는 것일 거라는

그런 망상을 하고 있자면 쓸데없이 나른한 만족감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말하는 별 같잖은 조우에는 관심이 없겠지만,

내 블로그를 방문한 당신도 하늘을 무심코 봤는데

문득 이 글이 생각나 흠칫 놀라게 된다면


전혀 원하진 않았을지라도

그건 어쩌면 먼 이국 땅에서

몸서리치게 망상질이나 하고 있는 어느 외로운 할배와

저 높은 하늘 어디에선가 시선이 교차했기 때문일 거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도 그럴까 봐 섬뜩하다...

나도 모르는 당신과 시선을 주고받을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하늘을 봤는데

강아지와 놀고 있는 김아중이 떠올라 일순 애틋해지면서

파이팅이라는 말이라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때는 아마 나처럼 당신도

한가한 김아중을 만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김아중은 앞으로 하늘을 안 볼 거라는...

웬 산적 같은 놈들만 자꾸 떠올라...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 캡처)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다람쥐



내 방 창 밖에는 아주 큰 나무가 있다.

겉이 희끄무레하고 매끄러운데 이름은 모르겠다.



동네에 다람쥐가 흔한데

이 나무에 다람쥐가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람쥐는 아무 나무나 다 오르내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만히 보면 근처에 도토리나무도 많아서

굳이 매끄럽고 먹을 것 없는 이 나무에 오를 이유가 없을 것 같기는 하다.



어느 분야든 한 분야의 전문가는 대체로 자신의 일에 대한

어떤 감이 있고 그에 따른 고집이 있는 편인데

다람쥐도 도토리에 대한 감이 있고 고집이 있는 거다.



작은 다람쥐도 자기 누울 자리쯤은 알고

또 아닌 나무는 아닌 지조도 있는 거다.



김아중이 이번에 모처럼 드라마를 하나 하는가 싶었는데

결국 안 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었지만

김아중 맘에 안 드는 무엇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쉽게 됐다.



김아중에겐 자신의 일에 대한 감이 있었을 테고

그 소신에 따라 결정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다람쥐와 달리 

싫더라도 등 떠밀려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역시 김아중은 아니면 아닌 걸로 끝을 맺는다.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는 난 관심이 없다.

그것은 그것대로 흘러갈 일이다.


다만 나 자신이 우유부단해서 그런지

난 이렇게 아니면 아닌 걸로 확 자르는 

김아중의 이런 모습이 또 좋다.


상황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감과 판단을 믿고 나아가는 거다.

매력 덩어리다.

매력 덩어리.


... 난 그냥 얼빠진 놈일 뿐이고...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2014년 9월 19일 ㅇㅇ 브랜드 기념 행사장이란다.
                사진이 많아서 행복하다.)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셜리 맥클레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얼마 전에 봤다.

나도 상상에 죽고 망상에 사는 사람이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제목이 풍기는 판타지가 마음에 와 닿았었다.


영화 중간에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는(https://www.youtube.com/watch?v=-oQO-kGU2lA)

예전에 라디오에서 종종 나오던 노래라서 반가웠고

내용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인위적인 사건들의 연속은 좀 아쉬웠다. 

매우 감동적일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는 정도.


이 영화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영화 때문이 아니라

주연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몇 번 등장하고 마는 주인공 엄마 역의 배우 때문이다.


처음 등장할 때 '어?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잠시 멈추고 검색을 해봤더니 역시, 

'셜리 맥클레인'이었다.


그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었지만,

어렸을 때 영화를 TV에서 방영하면 꼭 챙겨봤던 

예쁜 여배우들 가운데 한 명.

어린놈이 왜 그러고 살았는지...


주로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기억 속 '셜리'는 눈에 띄게 예쁜 건 아니었지만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선한 인상에 

다리가 눈에 띄게 예뻤던 잉?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다.


어쨌든 그 유명하고 예뻤던 '셜리'가 

이제 할머니가 되어 영화를 보조하고 있는 걸 보면서

내가 느낀 실망감이나 세월의 무상함은 정말 컸다.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갑작스레 다시 봐서 더 그랬을 것 같기도 한데

배우에 대한 연민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유튜브로 살펴본 그녀의 근황은 

매우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나이(80세)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영화에 출연한 것은 분명 흔치 않은 축복이라서

배우를 보며 느끼던 애처로움은 사실은 덧없이 나이 들어버린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다른 사람들에겐 언제나 뜬금없겠지만, 

나로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김아중도 그 나이까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고


이 블로그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김아중이 80세에도 활동을 할지 안 할지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또 할머니가 된 김아중을 본다면 지금의 나처럼 착잡한 감회에 젖겠지만,

나는 무슨 재주를 피운다 하더라도 그걸 알 길이 없다는 생각에

심란하고 먹먹한 기분이 들더라는 거다.


그래서 어쩌면 내 상상 중에 유일하게 현실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먼 훗날 어느 명절 차례상 앞에 우리 아이들이 모여앉아

'아버지가 전에 김아중 좋아하셨지...ㅎㅎ'

'맞아. 이번에 무슨 영화에 할머니로 나오던데?'라며

이야기라도 나눠준다면 가만히 찾아가 엿듣던 내가 행복할 거 같더라는...

어쩌면 그때도 같이 간 아내 눈치 보느라 먼 산 바라보며 

몰래 웃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 캡처)




2014년 9월 8일 월요일

김아중은 비현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대개

예쁘다(잘생겼다), 보통이다, 못생겼다. 세 가지로 구분하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단 세 종류로 구분 짓는 것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다.


아침은 잘 챙겨 먹는가? 같은 하찮은 설문일지라도

매우 그렇다, 그렇다, 그냥 그렇다,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다섯 개 선택 항목으로 우리를 쓸데없는 고민에 빠지게 하는 마당에


그냥 예쁜 사람과 눈에 더 띄게 예쁜 사람들을 아무런 구분 없이

찬밥 더운밥 섞듯 예쁘다는 말 하나로 합쳐놓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김아중까지 도매금으로 같이 합쳐서

하나의 말 테두리 안에 넣어 버리는 것에는 화까지 난다.는 건 무리고...


어쨌든 난 사람들의 생김새도 겁나 예쁘다, 예쁘다,

보통이다, 어딘가 아니다, 두루두루 아니다, 등

최소한 다섯 개의 항목으로 구분해야 바람직할 거라는,


그래야 자신은 특별히 더 예쁘다고 믿으며 살던 사람들도 만족하고

보통과 예쁨 사이 어딘가에서 제 위치를 찾지 못해 불행했던 사람들도

적당한 반올림으로 예쁘다는 반열에 오를 수 있으니 만족할 거라는

시시껄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쉬운 대로 이렇게 더 나누어 보면

그간 김아중이 자신은 예쁘지 않다고 하던 말도 이해가 간다.


그 말은 자신을 일반적인 예쁜 사람들과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아 달라는,

자신은 그냥 예쁜 게 아니라 겁나 예쁜 거라는 뜻을 암암리에,

또 겸손하면서도 완곡하게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은 거다.

그것도 모르고...


그렇다.

김아중은 예쁘지 않다.

그냥 예쁘다는 건 거의 모욕이었던 거다.

김아중은 겁나 예쁜 거다... ...


그런데 또 하루 자고 일어나 곰곰이 더 생각해보니까

김아중을 다른 사바세계 인간들과 비교하려던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그런 생각도 드는 거다.


김아중은 겁나 예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없는 특별한 게 있다.

바로 차가운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는 듯한 그 가슴 통증을 유발하는 숨 막힘.


숨 막히게 예쁜 사람을 다른 김빠진 예쁜 것들과 섞어 놓을 순 없다.

서로 불편하고 미안해질 뿐이다.

까마귀들 노는 곳에 백로를 밀어 앉히는 격이고

도토리들 키 재고 있는데 수박 한 덩이를 옆에 세워놓는 격이다.


그래서 뭐랄까...

내게 김아중은 그냥 말로 표현이 안 되는 비현실이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