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8일 금요일

김아중 그리고 종이와 펜


나들이 갈 때 종이와 펜을 가져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간단한 메모는 핸드폰에다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서울에 갈 때 특히 그래요.


혹시나 길에서 김아중을 만나면 사인받으려고...


...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몇 년 전인가 김아중 꿈을 딱 한 번 꿨었습니다.

고속버스 같은 걸 타려는데 문 근처에 사람들에 에워싸인 김아중이 있었죠.

물론 모른 척 버스에 올랐습니다.

저는 꿈에서도 소심하니까.

그런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군요.


지금 아니면 내가 언제 다시 보나, 지금 기회를 놓치면 안 돼!

하는 절박한 느낌이 꿈인데도 생생했죠.

그래서 사람들을 헤치며 버스에서 내려 김아중 쪽으로 나아갔는데,

아... 종이가 없어.

사인받아야 하는데.

아... 펜도 없어.


... 다시 생각해도 명치 끝이 아려요...


길거리에서 김아중을 우연히 만날 확률은 대체 얼마일까요?


그러니까 지나가다가 '어? 김아중이다.' 하고 알아본 다음

인사하고 사인받을 확률 말입니다.


... 그거슨 다시 태어나도 불가능...






이게 간단해 보여도 여러 상황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일단 당연히 같은 장소에 있어야겠죠.

그 넓은 서울 어딘가에서 말이죠.


차라리 벼락을 맞지...


이것만 돼도 99%는 성공한 거라고 봅니다.


차라리 벼락을 맞자니까...


하지만 이런 일이라는 게 100 아니면 0이에요.

99.99도 소용없지요.

나중에 이불이나 차게 됩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어요.


정말 벼락 맞는 것 같은 우연으로

같은 길을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쳐요.

근데 그게 다가 아니죠.


제가 김아중 쪽을 봐야 하는 겁니다.

떨어진 동전이라도 있나 보며 걷다가는 아무 소용이 없어요.

고개를 김아중 쪽으로 돌려야 해요.

고개를 돌리느냐 마느냐로 인생이 달라지는 겁니다.


사실...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동전 때문에 김아중을 놓친 말도 안 되는 경우 말입니다.

지금까지 수십 차례 그랬다 해도 모르는 거죠.


제 등을 토닥이며

할아버지! 고개를 왜 그러셨어요. 방금 김아중이 지나갔어요.

라고 말해 줄 사람이 없잖아요...


왠지 그렇게 모르고 지나간 일이 있었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그게 이상하게 위안이 되거든요.

다음엔 고개만 돌리면 될 거 같아서...


김아중을 만나는 건 순전히 저에게 달려있어요.

김아중은 절 모르니까 제가 알아보는 수밖에 없잖아요.

이런 생각이 문득 들어요.

내가 길에서 김아중을 우연히 본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혹시, 가끔 보던 사람을 엉뚱한 장소에서 만나면

잠시 못 알아보는 경우가 있지 않던가요?

저는 시력이 안 좋아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젊을 적엔 모른 체 한다, 거만한 거 같다는 오해를 산 적도 있고요.


그런데 TV에서 평면으로나 보던 김아중을 난데없이 3D로 본다?...

옆집 아줌마를 마트에서만 봐도 긴가민가할 때가 있는 내가?...


... ... 절대 쉽지 않아요.


어? 비슷한데? 혹시?...

그런 찜찜한 생각을 집에 올 때까지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뭐 10년을 매일같이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알아보겠죠.

아무리 3D라고는 해도 알아볼 겁니다.

설마...


근데 김아중인 걸 알았다 해도 거기서 또 끝이 아니에요.


'저기, 김아중 씨 아니세요? 저 팬이에요.'

지나가는 김아중을 가로막고 호들갑스럽게 말을 붙여야 하잖아요.

그 사람 많은 서울 거리 한복판에서.

김아중 팬이라는 건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저는 발표 울렁증이 있어요...

예쁨 울렁증도...

얼음땡에 특화된 소심한 영혼.

숨이나 안 멎으면 다행...


'하~악, 깜짝이야. 이 할아버지가 누구보고 팬이래.'

그런 소리나 안 들어도 다행...


이 모든 건 순식간에 일어날 거예요.

그 날의 운과 순간의 선택으로 모든 걸 가질 수도, 놓쳐버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직 상황이 종료된 건 아닙니다.


바로 사인.

만남의 대미는 역시 사인입니다.


'김아중 씨, 저,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 이 말 한 번 해보는 게 소원...





'어? 가만, 종이가 없네?... ...'

.

.

.





해피 엔딩이냐 혹은 어이없는 비극적 종말이냐는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로 결정됩니다.


얘네가 없으면 이때까지의 인연과 노력이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될 거예요.

며칠만 지나도 모든 게 꿈처럼 흐물거릴 겁니다.


운이나 노력에 기댈 필요 없이

내 의지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사소해 보이지만 결국 모든 건 저의 준비성에 달려있었지요.

바로 제가 이 모든 인연의 키를 쥐고 있었던 겁니다.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지금까지의 이 찌끄레기 같은 인연에

종지부를 찍고, 찬란한 인연의 새 장을 열 수 있는 거였어요.

제가 시작이고 끝이었습니다.




벌써 사인 100장은 받은 기분...

다 필요없어...

아 눙물이...





그래서 갖고 다녀요.

서울 갈 때는 특히.











(김아중 사진 출처: A+G 엣지 : CJmall: http://display.cjmall.com/,

이모티콘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2018년 5월 9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내가 아는 김아중


간결한 문장과 평범한 단어 몇 개로 

독자를 허구의 세계로 인도하는 소설가들을 보면 부럽습니다.


몇 마디의 암시나 장치를 해놓으면 독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상상하고 끌려올 것을 예측한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그런 면은 마술사들도 비슷합니다.

몇 가지 손기술과 동작으로 관객을 착각에 빠뜨리니까요.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고 계획하는 건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가능할 겁니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아니겠죠.


그래서 또 새삼스럽지만, 김아중의 연기가 놀랍습니다.

자신의 표정이나 동작이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정확히 예측하니까요.

낯간지럽지만, 감정 커뮤니케이션의 마술사라고나 할까...


그런데 그 연기 모두를 계산된 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너무 자연스럽잖아요.

그 순간엔 김아중이 그냥 극 중 인물 자체로 보이거든요.


연기에는 배우의 실제 모습이 얼마간이라도 투영될 거로 저는 봅니다.

단 0.1%라도 말이죠.

김아중처럼 극 중 인물과의 일체감이 높은 경우엔

특히 더 그러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하는 얘긴데

김아중이 이제까지 연기했던 모든 인물을 조금씩 합치고 합치면

실제 김아중에 근접할 것 같더라는 겁니다.

이 드라마에서 조금, 저 영화에선 왕창, 뭐 그런 식으로요.

.

... 뒹굴다 보면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막 나요...


제가 김아중과 눈도 마주친 적 없으면서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바로 그런 걸 겁니다.

제 무의식 속에서 합치고 합친 김아중을 제가 아는 거죠.

그리고 그렇게 아는 김아중이 실제와 같을 거로 믿는 겁니다.

사실 인사나 가끔 나누는 옆집 아저씨보다는 훨씬 더 실제 같죠.


팬 10년이니까...


... 착각은 자유.


하지만 연기하는 김아중으로만 이루어진 합체 이미지는 약간 부족합니다.

실체라기엔 너무 이쁘죠.

비현실적인 신화의 영역이에요.

그래서 인터뷰하는 실존적 김아중이 필요합니다.

이미지에 현실성을 보강하는 거죠.


묘한 건 연기하는 김아중을 보든, 인터뷰하는 현실적인 김아중을 보든

저는 차이를 잘 못 느끼겠다는 겁니다.

그 모두가 저한테는 같은 김아중이고

그 모두가 그저 새로운 배역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어쨌든 이 모두를 합쳐야만

제가 환상을 깨고 진정한 김아중의 참모습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죠.



대체 알아서 뭐 하려고...


드라마 김아중에 인터뷰 김아중을 얹어 합체하는 겁니다.

사실일지 아닐지 나도 모르는 이미지와 사실적 이미지의 합체.


어렵지 않아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간단하죠.


지~~잉.

철컥.

쉬~익.

슈우우~~


두둥.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 ... ...

.

.

.

.





'누구였을까. 낮고도 느린 목소리.

은은한 향내에 싸여. 고요하게 사라지는 흰 옷자락.

부드러운 노래 남기는. 누구였을까. 이 한밤중에.'


- 이진명 -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중에서


뭘 어떻게 해도 이뻐...

상상 속 내가 아는 김아중.



(사진 출처: A+G 엣지 : CJmall: http://display.cjm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