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6일 일요일

김아중이 있다.

 
 
살면서 세웠던 크고 작은 목표들은
 
도착하기만 하면 뭔가 다 끝이 나고 쉴 수 있는 종착지인 줄 알았는데
 
막상 목표에 다가가 보면 그건 그냥 오랜 길 위의 이정표 같은 거였다.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이제 얼마나 남았나를 알려주는,
 
삶이라는 전체 여정 중에 필연적으로 도달한 이정표고
 
그 옆에서 잠깐 쉰다면 쉴 수 있는 벤치 같은 거였다.
 
 
갈림길에 서 있는 헬기장 2km, 장군바위 3.5km 같은 이정표는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거 보겠다고 길을 가는 것은 아닌데
 
살아가는 건 어째서 이정표만 바라보며 달리는 모양새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젠 내가 멋도 모르고 향해 달려왔던 이정표보다
 
이제까지 달려왔던 길들이,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자체가,
 
또 그 길을 이루는 풍경들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안다.
 
 
길은, 또 산다는 것은 띄엄띄엄 나타나는 이정표들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걸어가는 매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말이다.
 
 
맑고 흐린 것은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고,
 
거대한 장군바위가 아니라 애기 바위만 한 것이 나를 기다린다 해도
 
가는 길 주변이 아름다우면 여행의 고단함은 사라진다.
 
 
살아가는 길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취미가 될 수도 있고, 봉사일 수도 있고, 일일 수도 있겠지만
 
내겐 하나 더 김아중을 보는 일이 있다.
 
 
잘 자란 나무나 기묘한 바위, 푸르게 펼쳐진 초원도 아름답지만
 
들꽃 한 송이조차 없다면 어딘가 심심한 풍경이 되고,
 
삭막한 여의도 길도 벚꽃이 필 때는 아름답듯이
 
 
꽃은 자신도 예쁘지만, 주위를 돋보이게 하며
 
없을 땐 못 느껴도 있다가 없으면 사람을 허전하게 하는데
 
내게 김아중은 바로 그런 꽃이다.
 
 
내가 걷는 어쩐지 싱거운 풍경에,
 
대충 봐도 무미한 풍경에
 
느닷없이 나타난 마지막 하이라이트 같은 거다.
 
 
때로는 내가 걸어가는 회색 골목길 어느 담장 너머로 삐죽이 나와 있는 장미처럼,
 
때로는 어머니께 가는 쓸쓸한 논 사잇길 가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처럼,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쑥 나타나 나를 위로해주는 존재다.
 
 
또 무슨 말을 하면 김아중이 좋아하려나...
 
 
난 이런 게 고민이다.
 
내 흰머리는 자꾸 늘어나는데...
 
속절없이 머리도 빠지는 거 같고...
 
 
여행은 목적지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재미없다.
 
휴게소에 들러 싸구려 우동이라도 한 젓가락 먹고 가는 게 재미다.
 
더구나 마지막 목적지에 무엇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면
 
잠깐 쉬면서 주위를 둘러볼 일이다.
 
 
목적지보다 훨씬 아름다운 경치가 옆에 있다.
 
거기 꽃이 있다.
 
김아중이 있다.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3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