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8일 월요일

김아중 그리고 경계선

 


한가함이 넘친다고 다른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으로 심란함이 넘치던 어느 날
사진은 내게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여러 필름이 단종되고 가격이 한참 오른 뒤로는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듭니다.

시답잖은 사진일지라도 부담이 없었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죠.


필름 사진기를 넣은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서면
그 삶의 무게... 가 아니라 그 무식한 쇳덩이의 무게가
어깨를 사뭇 누릅니다.

어깨 아프고 속절없이 땀도 나고...

그래서 사진 찍는다고 자주 나댈 수 없습니다.


찍는 사진의 99%는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뒤에 두고 한껏 포즈를 잡는, 
이제는 제발 돌아와 거울 앞에 서야 하는 아내뿐이죠.

다른 걸 찍으면 혼나...


보잘것없는 사진 생활이지만
그래도 사진기를 갖고 여행하는 일이 생기면 설렙니다.

멋진 풍경 앞에서 '아, 이쁘다. 좋네.' 하다가
가방을 열고 주섬주섬 사진기를 꺼내 드는 일은
왠지 몰라도 삐걱거리는 몸 안으로 
아드레날린을 휘돌게 합니다.

비록 멀리서 보면 늙은 할아버지가 낡은 사진기와 
씨름하는 애처로운 풍경이겠지만요.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
궁금하진 않지만, 이 땅에 보람차게 태어난 목적이 
그 심연을 드러낼 것만 같고 

일생일대의 결과물이 기어이 이번엔 나와줄 것만 같은 
망상 아닌 망상으로 정신이 흐느적거리게 됩니다.

... 아내를 찍는데? ...


사진기 안 가져가도 여행은 좋죠.
사진기 없다고 여행이 망가지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나 하는 평범한 여행에
설탕 한 숟가락을 푹 찔러넣는 것 같은 효과가
사진엔 있어요.

물론 제 경우에 말입니다...


사진은 내 삶의 설렘이고 설탕이라는
부실 아파트 같고 별 도움도 될 수 없는 
결론에 도달했을 무렵 느닷없이, 

하지만 늘 그래왔듯
'김아중도 그렇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삶의 설탕, 꿀, 메이플 시럽 ... ...


김아중 모른다고 인생 망친 거 아니죠.
.
.
.
기운 내세요.
.
.
.
김아중을 몰라도 잘 살 수 있어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저 누구나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내면 되는 겁니다.

설탕 한 숟가락이 부족하지만 
부족한 사실을 모르는 것뿐이에요.


삶의 맛이 달라지는 경계선 너머를 
누구나 알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안 됐지만 삶이란 어차피 그런 거...


영화의 맛, 
아름다움의 맛, 
인생의 맛.
그 모두가 새로워지는 지평선 저 너머의 유토피아...


한번 발 들이면 되돌아올 수 없는
김아중이 자빠뜨려놓고 나 몰라라 사라지는 그곳...
.
.
.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사진 출처: 2017년 tvN 토, 일 드라마 '명불허전' 1회 캡처)

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김아중은 마침표

 


아내는 카레나 국을 한 솥 잘 끓입니다.

저를 놔두고 한가로이 외출하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지만,

"이따가 김치라도 내놓고 먹어."

따위의 걱정 어린 말도 외출 전엔 
항상 잊지 않는 걸 보면
의심은 의심일 뿐이라고 고개를 젓게 됩니다.
.
.
.


김치는 그런 면이 있어요.

무얼 어떻게 먹더라도 
최소한 같이해야 하는 반찬.
진수성찬이든 카레 한 가지든 
빠지면 안 되는 기본.


하지만 풍미가 강해서 다른 음식 
고유의 맛을 느끼기 어렵게 할 때도 많죠.

그래서 저는 되도록 식사 끝 무렵에
한두 번 김치를 먹는 거로 습관을 들였어요.

그러다 보니 이젠 아예 김치 없이도 밥을 잘 먹죠.

... 사실은 반찬 꺼내는 게 너무 귀찮 ...


그런데 피자나 햄버거만으로 속을 채운 날
왠지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분명히 배는 부른데 말이죠.

해외여행에서 몇 날이고 계속 현지 음식으로 
밥을 먹게 돼도 그럴 때가 있죠.
뭐랄까 식사에 마침표가 안 찍히는 기분이요.


그러면 김치를 먹습니다.

특히 해외여행 후 집에 와서 김치를 먹으면 
여행에서 먹은 모든 식사가 비로소 
마무리되는 듯한 느낌도 들고 
안도감마저 들기도 하죠.

'내가 김치 없는 여행을 무사히 해냈구나.' 하고.


그럴 때면 마라톤의 결승선이 달리기의 
마지막 지점이면서 목표 지점인 것처럼
어쩌면 저는 김치를 목표로 부지런히 밥을 
먹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리고 어느 날 또 김치도 내놓지 않고 
혼자 카레 밥을 먹으며 
어디에도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다가  
어쩐지 김치와 김아중이 매우 닮았다는 
생각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김아중은 너무 강렬해서 등장하는 순간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안 봐도 견딜 수 있게 심신을 단련한 ... 
건 아니어도 어쨌든 견디는 것도 그렇고요.


이젠 그럭저럭 잘 지내지거든요.
매일 김아중 안 봐도.
김치를 매일 안 먹듯.

김아중 없는 영화도 잘 보고.

마치 잊기라도 한 듯이.


그런데 그러다가도 
가슴 한편이 표현할 길 없이 
문득 허전하고 답답할 때가 있어요.

며칠 빵만 꾸역꾸역 먹은 것처럼.


아, 그럴 때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김아중이 나와줘야 해요.

몇 년 만이든...


어머니께서 담그시던 얼음 띄운 동치미보다 
더 시원한 건 김아중밖에 없어요.

뭐랄까 그제까지 싱거운 영화와 
배우들을 보며 허송한 시간들에
속 개운한 마침표를 지긋이 찍을 수 있죠.

'이야, 이번엔 김아중 없이 oo 년을 버텼네.
내가 이걸 해냈어...'


김치 없는 해외 여행이 가능한 건
김치 한 보시기 정도는 집에 늘 있다는 
심리적 버팀목이 한몫하기 때문이죠.

김아중 없는 영화를 할 일도 없이 보는 건
그 끝에 김아중이 반드시 있을 걸 믿기 때문입니다.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김아중이 나올 거예요.
언젠가는.

결승선 없는 마라톤, 
김치 없는 집 냉장고는 없으니까요.


김아중이 나와야 
길었던 영화들이 끝납니다.
.
.
.
나쁜 녀석들 영화 한 지가 벌써 ... ...



(사진 출처: 2017년 tvN 토, 일 드라마 '명불허전' 1회 캡처)


2022년 8월 24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사랑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난 너를 사랑해'를
'난 너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로
바꿀 수 있다는 거죠.

생각보다 '사랑'이란 말은 
장황하지 않고 꽤 효율적입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라고 하죠.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로 하기 쑥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에두른 표현은 없을까 했는데 
쑥스러운 건 그대로고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사랑해'보다 간단명료한 말이 없네요.


저는 부모님과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제 아이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쑥스러웠던 것이 제일 큰 이유였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은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지금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이런 건 개인의 성향 차이일 겁니다.

아내는 저와 달리 말로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성향이었죠.

네,... 이었어요.
과거입니다.

지금은 그냥 말이 없으면 사랑 ... 
... 소 닭 보듯...
'사랑'은 생일 축하 노래에서나 한번 해보는 ...


적절한 표현이 잘 떠오르진 않는데 
사랑은 분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 굳이 말하지 않아도 
평소 말과 행동에서 무심결에 드러나는 
어떤 게 있어요.


누군가가 사진기 진열장 앞에 
넋을 잃고 서 있다면,

누군가가 아내 몰래 새 자전거를 들이는 
고민으로 잠을 설친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죠.


사랑이라는 이름이 붙은 행위와 감정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사랑도 있고 
숙연해지는 사랑도 있죠.

사람마다 느끼는 사랑의 온도와 
무게도 다릅니다.

그래서 '사랑'을 말하는 순간 때론 혼란스럽고 
때론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조심스레 말한다고 해도 말이죠.


김아중 영상과 사진을 차곡차곡 모으고
아무 'A.J.'라는 글자에도 눈빛이 흔들리는 것.
.
.
.

말하지 않아도 말할 수 없어도 알 수 있습니다.

혼란스럽고도 가벼운 
어느 이단 콤보의 슬픈 이름.



(사진 출처: 2017년 tvN 토,일 드라마 '명불허전' 1회 캡처)


2022년 8월 11일 목요일

김아중은 배경 음악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잊었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은 건 아닙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세상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영화의 배경 음악은
듣고 있어도 못 느낄 때가 있죠.

배경 음악이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도 없지만요.

김아중은 그런 배경 음악 같아요.




비가 참 많이 옵니다.
여름을 천천히 밀어내고 있네요.

나뭇잎들에 빗방울들이 쉼 없이 떨어집니다.

세찬 빗소리도 못 들을 때가 있죠.


김아중은 이 빗소리를 듣고 있을지...



(사진 출처: 김아중 인스타그램 (@ashia_kim))

2021년 12월 30일 목요일

김아중 그리고 언제나 내 편

 


우리 집 강아지는 보통 아내 옆에서 잠을 잤는데
요즘엔 제 옆에서도 잡니다.

왔다 갔다 해요.


이젠 내가 제 편이라는 믿음 비슷한 게 생긴 건지 
아니면 아내 말고는 방 안에 기댈 놈이 
달리 없으니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택하는 
삶의 방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잘 걷지도 못 하면서 밤에 제 옆으로 오면 
애처롭기도 하고 강아지 밥을 차려주며 살아온 
제 고단한 삶이 인정받는 느낌이 들어요.

… 강아지한테 받는 인정 …


몇 달 전 김아중이 인스*그램에 팬들(triangle)이
보낸 커피차 사진과 함께 '언제나 내 편'이라는
설명을 적었습니다.

(저는 triangle과 관련이 없지만 보기 좋았어요.)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ashia_kim)



그걸 본 뒤론 왠지 저도 그런 게 있었는지 혹은 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나 내 편’.
.
.
… 내 편 함부로 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내 편이었느냐 …


내 편.

지금은 안 계시지만 부모님 이상으로 제 편인 사람은 
아마 없었겠죠.

따로 말하지 않았어도, 
굳이 제 편인 걸 증명할만한 무슨 일이 있지는 않았어도 
언제나 내 편일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의견 차이 정도는 물론 있었지만요.


부모님 다음으로는 아내가 내 편입니다. 

네 그렇죠. 

그런데... 그게 아무래도 ‘언제나’는 아닌 게 아니냐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강아지 같은 거예요.
왔다 갔다...


그러니까 김아중 문제만 해도 그래요.

그런 걸 무슨 문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김아중에 관한 한 아내와 저 사이엔 같은 편 
먹었다고 하기엔 찜찜한 모종의 서먹함이 있어요.

‘언제나’ 내 편이라면 그럴 순 없는 거거든요.
이불 속처럼 언제든 편안하고 따뜻하고 막 그래야죠. 


결국 과거엔 부모님이 확실한 ‘언제나 내 편’이었지만
지금은 ‘언제나’를 붙일만한 사람이 있는지 
고개가 맥없이 갸우뚱해져요.


반대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언제나 내 편’인가 하는.

일단 저는 부모로서 언제나 제 아이들 편이죠.
강아지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외엔 확신이 없습니다.


어쩌면 아내는 내심 제가 ‘언제나’ 자기편일 거로 
여기고 있을 수도 있어요.

아내가 해주는 음식은 군말 없이 뭐든 잘 먹고
사다 주는 싸구려 옷은 투덜대면서도 잘 입고 다니니까요.


하지만, 김아중에 관한 한 아내가 제 편이 아니듯
김아중 아닌 배우들에 관한 한 저 역시 
아내 편일 수가 없… 다가는 식탁에서 쫓겨나…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나는 김아중의 ‘내 편’인가?
.
.
.
대체로 그렇지만 ‘언제나’는 아니었어요.

대체로 맑음에 가끔 흐림처럼 흐린 적이 있었죠.
두 번이나.


오랜 기간 팬이랍시고 블로그를 하면서도 
‘언제나 김아중 편’은 아니었던 겁니다.

종종 후회되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미안하죠.


살면서 ‘언제나 내 편’인 누군가를 얻기도 누군가의 
‘언제나 내 편’이 되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이 김아중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느지막이 다시 반성해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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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내 편’… … 말이 가슴을 찌르네요.



(사진 출처: 2019년 9월 11일 개봉 '나쁜 녀석들 : 더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