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어린 왕자의 장미



소설 '어린 왕자'에서 왕자는 정원에 핀 장미들에게

자신이 돌보던 장미는 특별하다고 얘기합니다.

물도 주고 벌레도 잡아주면서 서로 길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자신의 장미가 소중한 건 장미를 위해 보낸 시간 때문이라는 여우의 말도 배웁니다.

하지만 처음에 왜 장미를 돌보게 되었는지는 왠지 다시 얘기하지 않아요.


어린 왕자의 별에는 꽃이랄 게 별로 없었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이면 사라지는 조촐한 꽃들만 있었다고 하죠.

그런데 어느 날 장미가 나타났던 겁니다.

어린 왕자는 장미의 아름다움에 첫눈에 반합니다.

그 상황에서 장미에게 애정을 쏟지 않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겠죠.


장미는 쓸쓸한 어린 왕자의 별에 갑자기 등장한 그 순간부터

이미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단지 길들였기에 소중한 존재가 된 게 아니었죠.

특별하니까 공을 들였고 그래서 더욱더 특별해진 겁니다.


아무리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라도 자세히 보면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장미들도 예외는 아니죠.

어린 왕자의 장미는 외적으로도 분명히 다른 장미들과 구별되는 면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줄 알았던 자신의 장미가 무척 흔한 꽃이었다는 사실에

슬픈 충격을 받은 왕자는 미처 그런 점까지 헤아리진 못한 듯합니다.


그리곤 서로 길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장미는 특별하다고 하죠.

길들이기 위해선 사랑이 선행되어야 하는데도 그 사실은 빠뜨린 채 말이죠.

어쩌면 자신을 속인 장미에 대한 반감과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려는 자기 최면 같은 말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장미를 선택해서 사랑을 쏟았던 사실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김아중 덕질을 오래 하고 있지만, 이렇게 오래 지켜봤다고 해서

저한테 김아중이 특별한 배우는 아니라는 겁니다.

안물안궁...



이미 김아중은 홀로 특별했어요.

문득 피었다가 문득 져버리는, 그 수많은 예쁜 배우들 속에서.


그래서 또 상상해봅니다.

제가 만일 영화제 레드 카펫을 구경 가면 말입니다.

거기엔 김아중처럼 화려하게 치장한 배우들이 막 널려 있겠죠.

심한 충격일 겁니다.

세상에 여배우는 자기 하나뿐이라고 누가 늘 그랬으니까요.

어쩌면 저도 속았다는 배신감에 몸서리칠지도 모릅니다.

이즈디스더리얼라잎?... .... 므아마아~ 우우우우~



하지만 전 어린 왕자가 아니죠.

더는 그런 거로 상처받지 않아요.

산전수전 다 겪고 인제는 돌아와 렌지 앞에서

굴전 파전이나 부쳐 먹는 닳고 닳은 할배인 겁니다.

이젠 대충 아는 거죠.

다른 배우들이 트럭으로 쏟아져 등장한다 해도 아는 거예요.


아무리 비슷하게 치장을 해도 외모가 다르고 연기가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무엇보다 마음이 다르다는 걸.

.

.

따라올 사람이 없죠.


그러다

배우들이 다 사라진 바람 부는 빈 광장에 남아

내겐 이 추운 날 마음 쓰이는 배우가 있다는 생각을 하겠죠.


눈 내린 논현동엔 아주 특별히 아름다운 여배우가 있다는 생각을 할 겁니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는,

세상에 하나뿐인 배우를 오래도록 떠올릴 거예요.


언제나 별처럼 반짝여서 놓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사진 출처: A+G 엣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