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7일 토요일

김아중의 '나의 PS 파트너' DVD 구매기



김아중과 관련된 것은 나오면 일단 지르는 게

어쩌다 보니 나의 습관 내지는 신념처럼 돼버려서

이 영화 DVD를 산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중에 블루레이가 나올 수도 있으니 기다렸다가

DVD 대신 블루레이나 살까 하는 생각을 처음엔 했었다.



                                                                     (케이스는 온통 빨간색. 19금이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당장 내게 없기는 하지만

가방이 새로 생기면 채울 게 생기고, 채울 게 있으면 가방이 생기듯

일단 뭐든 지르고 나면 차차 다 해결될 일이었다.


                                                       (DVD 첫 화면. 영화보기, 장면 선택, 설정, 부가 영상으로 구성)


하지만 여러 정황을 보건대 블루레이는 어쩌면 안 나올 수도 있고

혹시 나온다 하더라도 DVD는 또 그 나름의 소장 가치가 있다는

고단한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쳐 어쨌든 사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었다.


                                                                                                                                               (장면 선택)

                                                                                                                                                       (설정)

                                                                                                                                            (부가 영상)


인터넷 구매가 싸고 편리하기는 했지만

성인 인증 절차가 맘에 들지 않아 포기하고

오프 매장으로 눈을 돌렸는데


                                                                   (여기부터 메이킹 영상. 간혹 이런 인터뷰 장면도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이 DVD를 팔만한 곳은

교*문고 단 한 군데밖에 없었고

미리 전화를 해보니 단 한 장의 재고가 있었다.



                                                                     (촬영할 때는 민망하게도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있다.)


단 한 곳에 단 한 장.

운명 같았지만 그걸 사지 못하면 서울까지 올라가든지

성가신 성인 인증을 통해 인터넷 구매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매장에서 실물을 발견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며칠 벼르다 찾아간 매장은 하늘이 돕는구나 싶을 정도로 한산해서

19금 DVD를 혼자 고르기에 매우 적절하고 쾌적한 환경이었는데

딱 한 장 있을 DVD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불안함을 달래며 두 번 세 번 진열대를 훑어 본 다음에야 찾았는데

내 근처엔 아무도 없었음에도 혹시나 못 찾는 중에 누가 와서

먼저 발견하고 가져가는 건 아닐지 은근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찜 해놓은 거라고

점잖게 말해주려는 생각도 했었는데 역시 누가 도왔는지

그런 볼썽사나운 짓까지는 안 해도 되었다.




하여간 누가 19금 아니랄까 봐

온통 새빨간 색으로 치장한 DVD를 손에 쥔 다음부터는

민망함이 극에 달해서 절대 반지라도 주운 것처럼

주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뒤의 DVD 전용 계산대를 못 보고

어림짐작으로 매장을 가로질러 메인 카운터로 갔는데




유난히도 친절을 떠는 점원이 그 빨간 DVD를 집어들더니

DVD는 전용 계산대에서 계산해야 하는 거라며

그 역시 절대 반지라도 주운 사람처럼 어쩔 줄 모르기에

DVD를 받아 들고 다시 음반 부스 쪽으로 걸어갈 때는

모든 시선이 내게 꽂히는 느낌이었고

모르도르로 향하는 프로도도 이렇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 사는 데 이제 나름의 연륜을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새빨간 케이스의 19금 DVD는 여타 DVD가 범접할 수 없는 남다른 포스로

사람의 정신줄을 놓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전용 계산대에서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현금을 냈더니

잔돈이 없다며 점원이 DVD와 나를 남겨둔 채 어디론가 휭 사라져서

나도 DVD를 놓아둔 채 얼른 계산대를 벗어나

내가 아니라는 듯 근처 다른 잡화 진열대에서 딴청을 피우다가

점원의 귀환에 맞춰 다시 계산대로 갔고

마침내 잔돈과 DVD를 받아 가방에 집어넣음으로써

짧지만 짧지 않았던 모든 여정이 종료되었다.




주연 여배우가 묘한 표정으로 맨다리를 쭉 뻗고 있는 빨간 19금 DVD를 들고

어쩔 줄 모르며 왔다갔다하더니 잔돈도 없는데 현금을 떡하니 내놓는 늙은 아저씨...




이에 비하면 이제까지 여성 잡지를 동네 책방에서 구매한 일은

어린이용 동화책을 사는 것처럼 손쉽고 떳떳한 일이었다.




매장을 나와서 보니 어느 결엔가 목덜미에 땀이 나 있더라는...


다음 영화는 꼭 19금이 아니기를 빌며...




(사진 출처: '나의 PS 파트너' DVD에서 캡처. 처음 두 장은 직접 찍은 것.)

2013년 4월 12일 금요일

김아중 목소리는 바이올린 느낌이 난다.



'나의 PS 파트너'를 보고 나서 얼마 후에

김아중의 'Show Me Your Heart'를 내려받아 차에서 들었었는데

아내와 같이 움직일 때면 노래가 나올까 봐 항상 조마조마하면서도




(그냥 볼 때는 몰랐는데 캡처하면서 보니까 '삐삐' 분장이 심히 귀엽다.ㅋㅋ)


한편으로는 과연 아내가 그게 김아중 노래인지 듣고 알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해서 언제쯤 자연스럽게 노래가 나올지 기다려지기도 했다.




김아중에 관한 한 좋아하는 것을 감추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마음껏 드러내고 싶은 이율배반적 성향이 내겐 존재한다.




하여간 그 노래는 영화에선 마지막 부분에 한 번 나오는 것이고

그때는 영화 본 지도 두어 주 지났던 때라서 무심코 영화를 봤다면

그게 누구 노래인지 알거나 기억해내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노래가 나왔는데

거의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대뜸 저건 또 어디서 났느냐며 웃었다.




아, 아는구나...

뜨끔하기도 하고 이제 내놓고 들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만큼 김아중 목소리는 특색이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별것이 다 뿌듯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난 그 순간 분명 뿌듯했다.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가 요즘 나오는 여자 가수들의 노래를

잠깐 멈춰 들어보면 대부분 곱고 맑기는 하지만

고음 부분에선 앵앵거린다고 할 수밖에 없이

무미하고 밍밍한 목소리들이 참 많다.




눈을 감고 누구의 노래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들으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특색이 없는데

너무 특이해도 곤란하지만, 너무 평범해도 가수로서의 매력이 없다.




물론 목소리에 대한 호불호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분홍색을 좋아하느냐 초록색을 좋아하느냐처럼

객관적으로 비교 평가할 수 없는 주관적인 문제다.




내게 김아중의 목소리는 자기만의 색과 느낌이 있는 목소리다.

어련하겠느냐고 하겠지만

맑고 고운 것은 물론 딱 내가 원하는 만큼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독특함이 있다.




목소리를 분석해서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능력이 내게 없어서 무척 아쉬운데

김아중 목소리에서 난 언제나 바이올린을 떠올린다.

곱고 매끄럽게 쭉 뻗어 나가는 바탕음 위에 살짝 얹혀있는 비음이

부드러우면서도 절묘하게 마음을 어지럽힌다.




음식으로 치자면 술 마신 다음 날의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처럼

맑고 시원하면서도 은근히 감칠맛이 난다고 할 수 있는데

설렁탕이나 순댓국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내 귀에 좋은 목소리와 내 입맛에 맞는 음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유대 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뭐 다른 가수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당연히 내 알 바 아니다.




아내도 다른 가수들은 누가 누군지 전혀 모른다.

김아중만은 딱하고 아는 거다.

그러니 내가 좋지...


난 얼굴도 목소리도 그냥 김아중이다.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캡처)

2013년 4월 7일 일요일

김아중 목소리는 세상 모든 음악을 바른다.



작년 여름쯤에 방을 정리하다가

둘째가 사용하던 MP3 기기 하나를 발견했었다.




노래도 듣고 동영상도 볼 수 있는 거라서

구매 당시에는 결코 싸다고 할 수는 없는 거였는데

스마트폰에 밀려 더는 사용하지 않게 되자

대충 지퍼락에 담겨 책장 한구석에 처박혀있었다.




사실 나는 그런 걸 사용할 일이 없었다.

이어폰의 음질은 아무래도 큰 스피커만 못한데다가

또 금세 머리를 아프게 해서 오래 들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듣는 음악이란 것이

소싯적 하드 록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변화를 거듭하더니

결국 김아중 노래에 이르러 그 변화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혹은 안식처를 찾게 되었다는 생각인데

이 좋은 걸 어디서나, 아무 때나 들을 수 없다는 건 늘 불만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들을 수는 있지만

아무도 없을 때라는 것이 예전 동네 약장수 오듯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아무리 할 일이 없다지만

아무도 없을 때마다 노래를 듣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라서

거의 항상 김아중 노래에 갈증 비슷한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MP3 기기를 발견했을 때

그것과 김아중 노래를 곧바로 연결하진 못했다.

그건 그저 내가 사용할 일이 없는, 철 지난,

머리를 피로하게 하는 기계에 불과했던 거다.




그러다 불현듯 거기에 김아중 노래와 동영상을 넣는다면?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몰래 듣고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확인차 은근슬쩍 둘째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그걸 다시는 사용할 일이 없으니 필요하면 사용하시라고,

그건 애초에 내 돈으로 사준 것인데도

마치 영원히 자기 것이었던 양, 인심을 쓰며 말해주었을 때

나는 참 둘째가 고맙고 미소가 저절로 나올 만큼 기특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래도 그 기기를 당장 사용하기는 매우 막연했다.

우선 그걸 갖고 어디 다니면서 이어폰으로 들을만한 때와 장소가 없었다.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들으면 좋겠지만 걸어 다닐 일이 흔치 않았고

집 안을 어슬렁거리면서 이어폰으로 들으면

평소 하지 않던 행동에 아내가 무슨 일인가 궁금해할 것이고

그러다 내 앞에서나 혹은 내가 없을 때

자기도 들어보겠다며 기기를 켜보기라도 하면

유사 이래 짝을 찾기 어려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 MP3 기기는 매우 유용할 것 같으면서도 딱히

유용하지 않아서 볼 때마다 안타까워지는 무용지물이었는데

뜻이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인지 마침 적당한 장소를 생각해내고야 말았다.




집 안에서 내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

그래서 내가 이런 걸 사용하는지 마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장소가 딱 한군데 있었으니

어쩐지 말 꺼내기도 남사스러운 화장실이었다.




이 글을 우연히 라도 읽고 있는 사람에겐 참 미안한 일이다.

내가 화장실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서

이 시답잖은 글을 읽기 시작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일은 그렇게 된 거다.

늙은 아저씨의 은밀한 화장실 생활이 결코

궁금하진 않았겠지만, 당신은 얼떨결에 알아버리게 된 거다.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살다 보면 늘 엉뚱한 곳에 엉뚱한 복병이 있는 거다.




집 안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가 한군데밖에 없다는 게

서글픈 일인지 아니면 그나마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있기는 있는 거였다.




물론 화장실에 혼자 있다고 해도 세상과의 소통은 늘 가능해야 한다.

가끔 아내가 문밖에서 강아지 밥은 준 것이냐, 상 차렸으니 빨리 나와라, 등

별 시시껄렁한 말을 내게 붙일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못 듣고 재깍 대답을 안 하면 문을 빼꼼히 열고

재차 물어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밖의 상황을 나 몰라라 할 정도로 볼륨을 크게 해놓고 들을 수는 없다.




그래도 어쨌든 요즘엔 화장실에 가는 일이 즐겁다.

전에도 괴로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낡아빠진 한국 문학 전집을

읽고 또 읽고 하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거다.




이젠 은밀하게 화장실에 음악이 흐르는 거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녹아 들어오는 거다.

내 귓속으로만...

세상 모든 음악 장르와 가수를 바르는 김아중의 목소리가.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