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7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전환점




좋아하는 웹툰이 있었는데 작가 사정으로 기약 없이

중단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럭저럭 흥미를 갖고 봐오던 여러

다른 웹툰들이 어쩐지 시시해지더군요.


좋아하는 것이 나오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기분이었죠.


기차가 오지 않는다면 기다리는 동안

읽으려던 책은 필요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돌이켜보니까 원하는 것을 도저히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것과 관련된 모든 일이

시들해진 경험이 웹툰 말고도 있었습니다.


아이템이 너무 안 나와서 그냥 접은 게임이라든지

장비 업그레이드를 꿈꾸다가 아내 눈치가

보여 접어버린 취미라든지...


기껏 생각해낸다는 게...


저는 평균적 할배니까 이런 게 저만의 특이

성향일 리는 없겠죠.


수틀리면 다 엎어버리는 쪼잔한 성질...

저런 거 말고 다른 건 무서워서 엎지도 못하고...


밴댕이 소갈머리입니다.


김아중 영화를 못 보는 탓에 다른 영화 보는 일도

시큰둥해진 거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땐 그냥 어렴풋한 추론일 뿐이었죠.


어려서부터 수십 년간 이어지던 영화에 대한 흥미가

배우 한 사람 때문에 차츰 시들해졌다는 건

솔직히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불확실했던 인과관계에 이제 확신 같은 게 생겼어요.


써먹을 데도 없는 확신이긴 하지만

어쨌든 제가 영화 전반에 흥미를 시름시름 잃은 것은

분명히 김아중 영화 때문이었던 겁니다.

웹툰처럼 말이죠.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그럼 다 때려치우는 거예요...

김아중 나와! 그러면서...


밴댕이 속의 완결판이죠.


중단되었던 웹툰은 한참 만에 재연재 되었고

차츰 다른 웹툰에 관한 흥미도 되살아나서

요즘엔 다시 이것저것 잘 보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영화는 그게 안 돼요.


한참을 기다리다가 김아중 영화를 보게 돼도

다른 영화에 대한 흥미는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계속 김아중 영화만 보고 싶어요.


구름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 같은 설렘이

다른 영화들엔 없어요.


그런 아득한 눈부심을 주는 배우가 없어요.


그게 이 모든 황당한 덕질의 원인 ... ...


살다 보면 졸업, 결혼, 자녀 출생 같은

삶의 전환점이 있습니다.


그 앞뒤로 생활이 뭔가 달라지죠.


김아중은 제게 그런 중요한 전환점이었어요.


적어도 영화에 관한 한 코로나19만큼

완전히 제 삶을 바꿔놓았으니까요.


그런데

.

.

.

바꿔놓고는 나 몰라라 나오질 않아...

세상에 없던 직무유기.



이거 보려나...


난 더 힘드네...
(그저 바라보다가, 14회 21분경)


(사진 캡처: 2019년 9월 11일 개봉 '나쁜 녀석들 : 더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