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8일 목요일

김아중의 인스타일, 코스모폴리탄 4월호(2013년)를 동시에 샀다.


며칠 동안 일없이 허리가 아프고 감기도 걸려서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좋던 방바닥과 더 각별하게 지냈다.



이불 덮고 푹 쉬라며 아내가 인심 쓰듯 나를 두고 혼자 등산을 갔을 때

사실 몸이 괜찮아져서 같이 가자고 하면 어쩌나 하기는 했지만,




이상의 소설 '날개'의 주인공처럼

아내 방으로 건너가 아내의 화장품 냄새를 맡는 따위의

다소 변태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은 물론 하지 않았는데 대신,




감기약 기운에 느른하고 쑤시는 몸을 일으켜 컴퓨터로 다가가

숨겨놓은 김아중 사진과 동영상을 하나하나 꺼내보았다.



사진마다 독특한 김아중의 향기가 전해져 왔다.



그러다가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약간 어지럽기는 했지만 분연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동네 책방에 가서 인스타일과 코스모폴리탄 4월호를 집어들었다.




책방 주인아줌마가 내 멤버십 번호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놀랍고 당황스러웠는데

아줌마는 이번에는 두 권 다 부록이 없다며

또 잡지는 적립이 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부록은 언제나 처치 곤란이었고

적립 포인트 같은 건 흔적으로 남겨놓으면 안 되는 거라서

누가 보기 전에 얼른 싸주기만 하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지만

나도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책을 받았다.




내 아이디가 아줌마의 기억에 남아있다는

찜찜한 사실 하나만 제외해 놓고 보면

어쨌든 한 큐에 두 권, 일거양득, 일타쌍피.

흔치 않은 순조로운 날이었다.




집에 와서 감기로 흘러내리는 콧물을 훌쩍이며 책장을 넘길 때

인쇄된 사진들은 컴퓨터 속 디지털 이미지와는 또 다른

친밀하고 감미로운 김아중의 향기를 내게 쏟아냈다.




아로마세라피라도 받는 것처럼

그때만큼은 어지럽지도 않고 쑤시는 곳도 없었다.


사진이 나를 잠시 잊게 하는 순간이다.




날개의 주인공도 그런 느낌이었을 거다.

무언가를 매개로 잠시나마 실체에 접근하는 듯한 아련한 느낌.




사진과 나 자신의 환상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망각의 시간.

그리고 그 망각이 제공하는 짧은 휴식과 가슴 아린 위안.




날개의 주인공이 그렇게 기이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내가 이렇게 잡지 사는 일을 어이없이 반복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내게도 날개가 있다면 좋겠다...




(사진 출처: 인스타일 사진들은 인터넷 여러 기사에서 얻었고, 
코스모폴리탄 사진들은 잡지사 홈페이지 http://cosmopolitan.joinsmsn.com 에서 얻었음)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김아중 때문에 블루레이를 찔러봤다.


어느 날 블루레이 플레이어(BDP)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우연히 '미녀는 괴로워'가 블루레이로도 출시된 것을 알았을 때는

어렴풋이 '결국엔 블루레이인 것인가' 하면서도

한편으론 '뭐 필요하랴' 싶었는데




DVD와 BD는 화질 차이가 심각하다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조금씩 내가 가진 '미녀는 괴로워'의 DVD가 같잖아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PS 파트너'도 BD 판이 출시되는 게 아닐까 싶은 요즘에는

김아중은 최상의 해상도로 봐줘야 옳다는,

김아중은 마땅히 BD여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내 개인적으로는 BDP를 사야 할 이유가 나름 절실하지만

우리 집 전체를 놓고 대충 보면 사야 할 이유라는 게 참 막연한데다가

특히 최종 의사 결정 기관인 아내 측 상황을 조금이라도 고려해보면

도무지 답이 안 나온다는 게 문제였다.




컴퓨터용 외장 BD 드라이브를 산다면 컴퓨터에 필요한 거라면서

얼렁뚱땅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알아본 바로는

컴퓨터용 드라이브는 TV에 연결하면 블루레이를 돌릴 수 없었다.




결국 컴퓨터 모니터가 웬 말이냐,

김아중은 역시 대형으로라는 갸륵한 초심을 지키자면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무래도 TV용 플레이어였는데




수년 전부터 영화는 전부 다운받아서 봤기 때문에

이름도 생소한 블루레이를 들먹이면

아내가 구매 자체에 거부 반응을 보일 것이 뻔했다.




거기에 오래전 홈시어터에 대한 나름의 환상이 사라진 뒤로

영화 관련해서 내가 사들인 것이라고는

김아중이 출연한 영화나 드라마 디스크밖에 없으니




내가 BDP를 산다는 것은 곧 김아중 영화를 TV로 보겠다는 말이 된다는 걸

어쩐지 아내가 쉽게 간파할 것 같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쨌든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우리 집에만 없는

현대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으로 둔갑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내게는 그럴만한 논리적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은 계속되었지만,

고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러

어느 날 운전하면서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이 무작정 말을 꺼내봤었다.




"저기 블루레이라는 게 있데."

"그게 뭔데?"




나는

그게 DVD 같은 디스크인데 용량이 엄청 크다,

용량만 큰 줄 알았는데 이게 영화를 보면 화질이 또 엄청 좋다더라,

플레이어를 하나 사면 된다, 별로 비싸지도 않다는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쉴 새 없이 던져댔는데




아내는

"그럼 디스크는? 디스크를 사? 에이, 영화 디스크를 뭐하러 사.

그냥 다운받으면 되는데. 두 번 볼 필요가 뭐 있어."

라는 반응이었다.




다운받으면 된다는 아내의 말에서 이미 승패는 결정 난 셈이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컴퓨터용 드라이브 스펙까지 계속 읊어봤다.




"아니 DVD는 시간이 지나면 화질이 열화라고 해서 망가진다네.

그런데 블루레이는 그렇지가 않데."

이때는 내가 BD와 M 디스크를 혼동해서 이런 말을 했는데 뭐 중요하진 않았다.

"그런데?"




"우리 왜 찍은 사진들 있잖아. 그런 걸 블루레이로 저장하면 좋은 거지.

용량도 커서 DVD 여러 장이 들어가고."


"에이 뭐하러 사. 우린 영화 디스크도 없잖아. ...

   당신, 김아중 영화 볼려고 그러냐? 미녀는 괴로워?"

"아니, 사진 같은 거 저장하면 좋다니까."




아니 그걸 어떻게 안 겨...?

순간 너무 뜨끔해서 더는 할 말을 잃고

어색함을 숨기기 위해 황망히 차선을 바꿔보기까지 했다.




나는 사진 저장에 온 힘을 주고 있었는데

아내는 왜 엉뚱한 곳에 힘을 주느냔 말이다...

사람 말을 듣는 겨 마는 겨...




김아중 때문에 블루레이를 찔러봤지만

김아중 때문에 못 먹는 감이 되어버린 슬픈 현실.

산다는 건 참...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캡처)












2013년 3월 6일 수요일

김아중이 아프리카로 간다.



얼마 전 김아중이 아프리카로 자원봉사를 갈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 철렁하면서 헐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다음 작품은 언제일까 하며 매일 버티고 있는데 봉사라니.

차기작은 또 아니구나...

그렇다고 뒤통수 맞은 배신감 같은 건 아니고...




뭐랄까 넋 놓고 가는데 삐끗해서 무안하고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는 느낌.

남 봉사하러 간다는데 내가 왜 이러냐 하는 생각.

다 내려놓으면 편할 거 같다는 생각.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밀려왔다 밀려갔다.




3월 11일 출국. 10일 일정. 라이베리아.

남이 보면 아무 문제 없다.

잠시 다녀오는 거다.




좋은 일 하러 가는데 봉사의 봉 자도 모르는 내가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그냥 어떤 이유로든 김아중이 우리나라를 떠나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일단 알 수 없이 허전하고 싫다.




그리고 이 막연한 허전함에 안쓰러움이 더해지는 이유는,

그래서 이 봉사 일정이 도통 맘에 들지 않는 이유는

봉사 장소가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내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유럽, 미국이면 이렇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아프리카.

이름만으로도 뜨거운 기운이 숨을 턱턱 막는 곳.

낯선 사람을 보면 동네 개들 대신 동네 사자들이 짖어댈 것만 같은 곳.




내게 세상 모든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세상 모든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맨 마지막에 이르러

시간도 남는데 여기라도 갈까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됐네 하고 돌아설 아프리카.




내겐 그렇게 낯설고 먼 곳으로 김아중이 간다.

한 때 동물의 천국이었지만 이젠 동물이 사라지는 대륙.

내 자식이라면 봉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라고

핑곗김에 손 꼭 잡으며 한 서너 번은 족히 말렸을 장소로




소중한 김아중이 간다.

우리의 하나뿐인 김아중이 간다.




좋은 일 하러 간다는데 내 마음은 왜 이런지.

왜 휑하게 뭔가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 드는 건지.


주사를 맞을 때보다 기다릴 때가 더 떨리는 법이라서

막상 김아중이 아프리카로 가고 나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10일은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아마 지나갈 거다.

거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고

무사하게 건강하게 지내다 웃으며 나타날 거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추억이 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김아중 파이팅!'이다.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캡처)











2013년 3월 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