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 수요일

김아중까지의 거리




역방향 좌석에 앉아 기차 여행을 해보셨나요?

창밖 풍경들이 정방향과 달리 멀어져가는 게 신선합니다.


어떤 것이 내 옆을 지나갈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아련히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죠.


나타났다가 멀어지고, 나타났다가 멀어지고...

역방향으로 가면서 보는 사물들은

먼저 가버린 다른 풍경들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늘 지나간 후에야 볼 수 있죠.


제 옆을 지나 점차 작아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마치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옆을 지나가는 풍경들은 사라지는 시간처럼 보이죠.


멀리 보이는 풍경들은 속절없이 지나간 날들이고

현재의 기차 안에서 그들을 잠시 추억하는 느낌도 듭니다.


제 덕질과 비슷하기도 하죠.

제가 김아중 영화를 극장에서 보든,

TV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든

결국엔 과거에 촬영해놓은 영상을 보는 거잖아요.


이미 창밖으로 오래전에 지나간

멀리 떨어진 풍경을 이제 보는 것처럼 말이죠.


제겐 현재의 김아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늘 과거의 잔상입니다.


밤하늘 별 중엔 몇 억 년 전의 별빛인데

지금 보이는 것도 있고

태양도 8분 전의 태양이 보이는 거라고 하죠.


별 생각 없이 살았지만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교묘한 공간 속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리 김아중의 SNS를 팔로우해도,

저 같은 팬은 수초 전 혹은 수일 전 김아중의

행적을 추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김아중과 동시대에 살고 있으니

김아중을 실시간으로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크고 작은 시차를 두고

과거의 김아중을 알 수 있을 뿐이죠.

너무 당연해서 무심히 지나쳤던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사실이 김아중과의

근본적인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한편

멀어져가는 풍경을 보는 것만큼이나 설명하기

어려운 아릿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거꾸로 앉아가는 기차 여행이

제게 김아중을 생각나게 합니다.


나무들은 멀리 숲이 되고

숲은 멀어져 얼굴이 되죠.


창밖은 어느새 하나 둘 김아중으로 물이 듭니다.


너무 멀어서 8분 전의 태양을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저는 먼 풍경처럼 지나간 과거의 김아중을 봅니다.


태양까지는 약 1억5천만 km랍니다.

김아중까지는 ... 가늠할 수 없는 먼 거리겠죠.

빛의 속도로 가도 언제 닿을지 알 수 없는 ...



(사진 출처: 2019년 9월 11일 개봉 '나쁜 녀석들 : 더 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