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김아중의 '원티드' 그리고 나의 반성


'원티드'는 끝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자꾸 생각나는 드라마입니다.

사실 김아중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는 전부 두고두고 생각이 나지만

이건 단순히 김아중 때문만은 아닙니다.


'원티드' 홈페이지에는 이 드라마를 통해 미디어와 그것을

소비하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역학 관계를 보여주겠다는 소개말이 있는데

드라마를 보면 그 외에도 작가가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서 제게 가장 와 닿은 이야기는 바로 정혜인의 죄였습니다.

마지막 16회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한테 정혜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사과하는 장면.


네... 눈물 나게 이뻤지요...


저도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그리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뭐 저야 김아중이 울면 언제나 따라 우는 주책바가지이지만

따라 운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정혜인의 죄가

바로 나의 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부끄럽더군요.

그것이 바로 자꾸 이 드라마를 되새기게 하는 원인입니다.


극 중 정혜인은 도와달라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무시합니다.

자신과 당장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는 일.

자신이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할 거라는 생각에 행동하지 않는 양심.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을 앞세우는 이기심.


직접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정혜인의 방관적인 태도야말로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원인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행동 하나하나로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행동들이 쌓이고 많은 사람이 그런 행동을 당연시하면

총체적 파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경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혜인의 죄는 바로 나처럼 이웃의 아픔에 관심 없는 사람들의 죄이며,

드라마는 나처럼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든 보통 사람들의 죄에 대한 비판입니다.


...뭐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정혜인이 사과하는 장면은 김아중이었기 때문에 보기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지만,

그 죄는 다른 범죄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수치스럽고

어떤 면에서는 추악하기까지 합니다.


남의 아픔에 잠시 공감은 할지언정 곧 잊어버리고,

나와 이해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이나 환경에는 무관심하며

잘못인 줄 알아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무기력한 양심.

평소 제가 우리 사회에 대해 갖는 태도였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저의 태도였습니다.


'원티드'는 설정에 다소 무리가 있다는 말이 있었지요.

드라마를 보면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현실성이나

개연성을 다소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펼쳐지고 있는 막장의 진수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황당한 일은 늘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의 어처구니없는 비현실성은 드라마의 그것을 압도합니다.


누군가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없으면 가장 비열한 집단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이놈도 싫고 저놈도 싫다는 이유로 또,

대통령이 누가 되든 나하고는 별 상관없다는 짧은 생각으로

주위에 무관심하고 나아가 정치에 무관심하며 냉소적이던 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결국 요즘처럼 혼란한 시기가 온 것이 아닌지도 계속 반성하게 됩니다.


김아중은 참 좋은 드라마를 했습니다.


기승전 김아중...




(사진 출처: SBS 수목 드라마 '원티드' (2016년 6월 22일 ~ 8월 18일) 홈페이지,

'원티드' 관련 인터넷 기사들, 킹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