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3일 목요일

기억나는 모습들

 


가깝거나 가까웠던 사람들을 일없이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특정 모습이나 시절이 있습니다.


가령 돌아가신 부모님이라 하면 
제가 대학 다닐 무렵의 모습이 주로 생각나죠.

예전에 살던 집 안방에서 웃으시던 모습,
저를 상대로 윷놀이를 하시던 모습.

그 이전이나 이후보다 그때가 많이 생각나요.


혼자 있을 때 아내를 생각해보면 지금보다는
연애 시절이나 신혼 즈음의 모습이 많이 떠오르죠.

퇴근 버스에 맞춰 시내 정거장에서 기다리던 아내.
그렇게 같이 저녁 먹고 영화 보고.

날 좋은 날 손 잡고 거닐던 신혼집 근처 언덕길.

그때는 제가 사진을 그렇게 찍어대도 
미소만 지었는데 말이죠.


우리 아이들은 이제 제 건강을 걱정해주는
아저씨들이 되어버렸지만

제 기억 속에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제가 안아 올릴 수 있었던 때의 모습입니다.

손잡고 놀이동산 걷던 때가 엊그제 같아요.


이제 나이 들어 잘 걷지도 못하는 우리 집 
강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인형을 물고 와서 
놀자며 짖곤 했지요.


어떤 이유로 그런 모습들이 떠오르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어요.

다만 그 당시 저 자신이나 기억의 대상 
적어도 한 쪽은 행복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저랑 가까웠던 적도,
또 앞으로도 전혀 가까워질 리 없지만
이런 얘기에 빠지지 않아서 심히 괴로울 김아중은 
'미녀는 괴로워' 때의 모습이에요.

병원에서 몰래 빠져나왔을 때, 중고차 매장, 
백화점, 오디션 장면, 등등...


그때 김아중은 왜 그랬을까요?

왜 사람 가슴을 그렇게도 찢어놓았던 걸까요?

그 전후 각종 기사, CF 속 모습들도...
.
.
.

... 그때부터 물간 할배 하나가 팬이 되...


'미녀는 괴로워'의 김아중이 떠오르는 건
당시 내가 행복했기 때문일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뭐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행하지도 특별히 행복하지도 않았어요.
그냥 더없이 평범한 나날들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평범함이 행복이다.
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고

그때나 지금이나 김아중을 보는 순간엔
무슨 조화인지 항상 행복하니까 
영화를 보던 그 순간엔 틀림없이 행복했겠죠.

... 음, ... 애매...


반면 그때의 김아중은 행복했을까? 는 
정말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만나서 소꿉친구처럼 마주 앉아 속내를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죠.


그래도 짐작하기엔 영화의 성공으로 
대중적 인기가 치솟았으니 행복했을 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저처럼 실없는 팬도 생겼으니까
마음 한편이 심란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 실없는 팬 하나를 신경 쓸 리가...


그 시절 김아중이 생각나는 건 
누가 행복했느냐 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겠죠.

그건 행복의 문제라기보다는 김아중이 제게 가한 
충격의 강도에 관한 걸 겁니다.

연기, 목소리, 외모를 한데 모아 가한 뜨거운 충격.

김아중이라는 배우가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을 
뜨겁게 헤집어 놓은 선명한 기억이 원인일 거예요.

... 뭘 자꾸 뜨겁대...


기억의 형성 과정은 다를지 몰라도
기억 속 모습들은 저마다 아름답습니다.

새벽빛에 스러지는 그믐달처럼 희미하지만
그리운 얼굴들은 언제나 웃고 있어요.

그래서 더 애틋합니다.


어느새 다시 가을입니다.

시간은 지나가도 기억은 지나가지 않네요.



(사진출처:  ACE FACTORY 네이버 포스팅: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memberNo=44834478&volumeNo=323543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