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1일 일요일

김아중 그리고 마법의 거울

 



동화에는 종종 마법의 물건이 등장해서 

흥미를 북돋아 주죠.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렸을 때 별로 탐나지 않던 물건은 

마법의 거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은 

백설 공주라고 대답하는 그 거울이요.


그림 형제의 백설 공주를 보면 마법의 거울이 

그런 대답을 했던 때가 공주 나이 7살 때입니다.

계모 왕비는 그래서 공주를 죽이려 하죠.


7살.

그 나이의 예쁨은 어른들의 예쁨과는 사뭇 다른데

거울이 뭔가 심각한 오류를 범한 듯합니다.

사실 계모 왕비는 거울의 말을 들었다기보다는 

전처 자식에 대한 미움과 시기심으로 가득 찬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이겠죠.


거울은 어린 공주가 매우 예쁘다는 설정을 위해 

끌어들인 동화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겠지만, 

어렸을 때는 그저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기억이에요.

예쁜 사람을 좋아하긴 했어도 누가 제일 예쁜가엔 

관심이 없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해봅니다.


갖고 싶었던 건 알라딘의 요술 램프 같은 거였죠.

램프의 요정한테 부탁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부자가 되면 뭘 할지는 모른 채 말이죠.


지금 이렇게 나이를 먹고 생각해봐도 

역시 그 거울은 참 쓸모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대체 예쁜 사람이 누군지 거울이 대답해준다 한들 

삶에 도움 될 게 없잖아요.


더구나 저 같으면 누가 제일 잘 생겼냐? 를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사실 궁금하질 않죠. 

제가 아닌 누군가의 이름이 나올 게 뻔하잖아요.


김아중은 직업상 거울을 많이 보겠지만 

역시 저런 거울은 필요 없죠.

물어보면 자기 이름이 나올 게 또 너무 뻔하니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결국 저런 거울이 필요 없기는 저나 김아중이나 

매한가지...

헐, 이러다가 또 친구 하게 생겼...

저기요, 할배랑은 이유가 달라요. 또 개수작 

부리지 말아요.


예쁜 사람 말해주는 쓸데없는 기능 말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기능이 있다면 

썩 괜찮은 보물 가운데 하나가 되겠지요.


당첨될 복권 번호라든가, 급등할 부동산이나 

주식 정보, 등 물어볼 만한 게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저라면 김아중이 좋아하는 꽃이라든가, 

과일이라든가, 책 같은 소소한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물어보고 싶어요.


세상 순수...

김아중이 좋아하는 거라면 

뭐든 나도 좋아할 수 있... 미친...


또, 김아중이 생일 선물로 받고 싶어 하는 것을 

미리 알아볼 수도 있죠.


뭐 덕질을 이제 쓸데없이 오래 해서 

김아중의 취향을 대강 짐작한다 해도 

심심하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거울아 거울아, 

김아중 님이 생일날 받고 싶어 하는 게 뭘까?'


'오! 주인님, 

김아중 님이 받고 싶어 하는 생일 선물은 

인형도 있고 책도 있고 케이크도 있지만...'


'있지만...? 그래, 계속해봐.'


'주인님, 그중에 제일은 바로 에 르 메 ㅅ...'


'닥쳐! 너 미쳤구나? 팬들의 사랑이지! 

사랑 몰라?

너 그것밖에 안 되는 거울이었어?'

.

.

.

'... 일단 복권 번호부터 말해줄래?'

.

.

아, 뭐든 말해주는 거울이 있다면...



(김아중 사진 출처: A+G 엣지 : CJmall: http://display.cjmall.com/)


2020년 10월 4일 일요일

김아중 그리고 무언중 인정

 


요즘엔 예쁘다기보다는 평범하거나 특징 없이 

밋밋한 생김의 배우들이 여주인공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내가 보는 드라마를 오다가다 옆에서 잠깐 보면

아니 쟤가 왜...? 싶은 배우들이 많아졌어요.


저야 뭐 김아중 빼면 세상 모든 배우가 연기든 

외모든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도토리 키재기라도 좀 큰 도토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더라고요.

왜 작은 도토리를 쓰는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며칠 전 아내가 새 주말 드라마를 보다가 

쟤가 어떻게 주연이냐며 열을 내더니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면서 채널을 돌리더군요. 

한 마디로 주연을 하기엔 안 예쁘다는 거였어요.


물론 제가 대충 보기에 드라마 내용도 별로였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겠죠.


그러면서 몇 달 전 아주 유명했던 드라마에서도 

여주가 평범해서 참고 보느라 아주 힘들었다는 거예요.


드라마 설정상으로는 예뻐야 하는데 실제 배우가 

그렇지 않으면 몰입이 어렵다는 주장이었어요.

평범한 애가 예쁜 척하는 건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네요.


아주 뜻밖이었죠.

저는 제가 남자니까 예쁜 배우를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유는 좀 다르지만, 결과적으론 아내도 

분명히 예쁜 배우를 원하는 거니까요.


후련했어요.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아내가 해주니까.


그간 남자 주연에 대해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여주인공에 관해선 이렇다저렇다 말을 

잘 못 하겠더라고요.


이쁜 건 김아중뿐인 사람이 어련하겠느냐고 

느닷없는 기습을 당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좀 답답했죠.

TV 보면서 실없이 이런저런 말을 하더라도 

여주인공 평가만큼은 함부로 할 수 없었으니까요.


... 김아중 팬은

도토리들을 도토리라고 할 수 없어...





하여간 나불대고 싶을 때라도 조심하며

지냈는데 뜻밖에 아내가 물꼬를 튼 거였죠.


그래서 저도 신나서 같이 장단을 맞췄습니다.


요즘엔 왜 작은 도토리들이 이리도 많은 거냐

대충 그런 내용으로 말이죠.


김아중이 주연을 해야 한다... 까지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감당이 안 되고...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제게 여주인공 평가 자유

이용권이 생긴 거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가면 늘 뒤통수가 노출되기 마련이고

뒤가 서늘하다 싶을 땐 이미 늦은 거니까요.

보조를 맞추면서도 미묘하게 늦는 한 걸음이 중요하죠.


자유이용권 같은 건 없...


어쩌면 우리 세대는 워낙 예쁜 배우들만 주인공을 

하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주인공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기왕이면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원하는 

보편적 욕구 때문에 평범한 얼굴에는 만족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이유야 어떻든 이런 시답잖은 일에 아내와 

의기투합하는 상황이 유쾌했어요.


그러다 문득 이 신나는 대화에서 직접 

언급되지 않은 사실 하나를 깨달았죠.


아내가 김아중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런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요.

단 한 번도.


당연한 건데도 

왠지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두고두고 기분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A+G 엣지 : CJmall: http://display.cjm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