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1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몇 해 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은 적이 있어요.

책 중간쯤에 고양이가 꼬리부터 사라지기 시작해서

미소만 남는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 앨리스가 그러지요.

미소 없는 고양이는 봤어도 고양이 없는 미소는 본 적이 없다고요.


책 속 삽화를 보면 나무 위에 희미한 고양이 얼굴 윤곽,

큰 눈, 그리고 웃는 입만 괴기스럽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 가더군요.

꼬리부터 사라진다느니, 고양이 없는 미소라느니.

하지만 소설 전체가 워낙 기이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었지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사실 애들을 위한 동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고 어른을 위한 동화 같지도 않고...

삽화가 너무 음산하고 등장인물의 대화와 행동들이

혼란스러워서 어렸을 때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 어떤 계기로 그 부분을 다시 보는데 아! 하고 감이 오더군요.

... 나만 또 몰랐던 건가?...


그러니까 이런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뜬금없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아중이 나왔다가 퇴장하면

머릿속에 그 모습이 남잖아요... 이것도 나만 그런가...


하지만 김아중 모습 전체가 아니라

주로 표정, 예를 들면 웃는 얼굴이 떠오르지요.

대개 구두나 양말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꼬리부터 사라지는 겁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얼굴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아니죠.

눈 코 입은 점차 희미해지고 미소 짓던 환한 분위기만 떠오릅니다.

김아중 없는 김아중의 미소만 남는 셈이죠.

'고양이 없는 미소'란 그런 희미한 기억의 흔적일 겁니다.

맞을 거예요 아마.

아니라고 해도 난 상관없지만...


김아중이 아니었다면 '고양이 없는 미소'가

무슨 의미인지 아마 평생 몰랐을 거예요.

김아중은 뭘 또 이런 거까지 도와주는지...

감사한 일입니다.


알았다고 해서 내 삶이 윤택해지거나,

아내가 당신 참 장하다고 칭찬할 일은 아닌 게 좀 섭섭하지만,

그래도 뭔가 하나 알았다는 사실은 좋은 거잖아요.

사람은 항상 배우는 거니까.


거기에 덤으로,

형상화할 수 없던 많은 낱말들을

이제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아중 없는' 기쁨, '김아중 없는' 슬픔,

'김아중 없는' 삐짐, '김아중 없는' 분노, 등

단어 앞에 '김아중 없는'을 붙이면 추상적이던 단어들마저

실체화되는 거예요.


... 하나를 알면 둘을 깨우치는...


머릿속에서 낱말들이 이제 살아 움직이게 된 겁니다.

김아중의 아련한 흔적과 함께 말이죠.

신기한 일이죠.

매직이에요.

김아중의 매직.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