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1일 금요일

김아중의 '더 킹'을 봤다.



김아중의 영화 '더 킹'을 결국 봤습니다.

내려받은 지는 좀 됐지만 망설이고 있었어요.

본 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빨리 돌리면서 김아중 나오는 장면들만 찾아봤거든요.


야비한 동네 양아치처럼 단물만 쪼옥 빨아먹은 거죠.

하지만 만둣국 먹는데 만두 다 건져 먹었으면 일 끝난 거잖아요.

국물은 마시든지 말든지...


그러니 제 입장에선 다 본 겁니다...


혹시 영화 '더킹'에 관한 심도 있는 평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어라? 여기가 아닌가 보네.'일 겁니다.


가끔 하는 얘기지만, 저는 우리나라 영화를 딱 두 가지로 분류하죠.

김아중이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


영화에서는 단 한 가지만 봅니다.

김 아 중.


그러니까 당신이 김아중 팬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뒤로 가기 버튼을 가차 없이 누르세요.


국물 좋아하는 사람도 간혹 있을 수 있다는 거,

그 정도는 다 이해합니다.


작년 초였나요?

이 영화에 김아중이 출연한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땐

개인적으로 좀 난감했었습니다.


제목이 더킹이 뭐야 더킹이...

이제 와서 말이지만 자꾸 '펔잉'이 떠오르는 거예요.

어감도 안 좋고 허세스럽고 ...


거기에 내용도 부정한 권력을 향한 어느 남자의 몸 바침.

제 취향은 아니었죠.

각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골처럼 우려먹는 소재라 지겹기도 했고.


그걸로도 벌써 도리도리였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김아중의 배역은 출세하려고 안달 난 남자를 내조하는 아내였지요.


이럴 때 보통 영화들은 남편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온몸을 불사르는 헐벗은 아내 장면을 서비스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뻔하고도 저급한 설정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영화 제작 당시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오지랖 같지만, 그리고 변변치도 못한 팬이지만,

그래도 팬은 팬이니까.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니야.

주연이 아니래.

분량이 다 잘렸대... ...



이~ 러~ 언 더킹을 봤나... ...





하지만,

속으로 얼마나 다행이다 싶었는지 모릅니다.

몸을 불사르는 그런 역이 아니라서 고맙기까지 하더라고요.






근데... ...




난 이유 없이 계속 '펔잉'이 맴돌아... ...





그런 거 있잖아요.

메뉴 사진에는 두부가 냄비에 흘러넘치듯 쌓여있는데

막상 실물은 두부가 냄비 바닥에 두어 점 깔린 두부 전골.

그런 거 받아들면 화나잖아요.


아무리 메뉴 사진은 실물과 다른 거라고 해도

두부를 적게 넣을 거면 처음부터 비지찌개를 끓이든가...

두부가 적은 건 둘째고, 속았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죠.

짜증이 밀려와서 맛이고 뭐고 더는 관심이 없어지잖아요.


'더 킹'이 그런 경우였어요.

걱정했던 장면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뭔가 세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허탈함에 짜증이 나서

보고 싶은 마음이 당최 생기지 않는 영화였지요.


안도감과 짜증을 동시에 유발하는 기묘한 영화예요.


난 원래 비지도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도 두부 시켰는데 비지 내오면 화나지...


개봉했을 때는 아내한테 말을 못 하겠더군요.

개봉 전엔 늘 그랬듯이 나름 은밀한 계획을 품고 있었어요.


한가한 날, 아내가 고른 영화나 보러

일단 극장에 따라나서는 겁니다.

그다음 로비를 다정히 손잡고 걸으며

죽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들을 순진한 표정으로 훑는 거지요.

그러다 뜻밖이라는 듯 멈춰 서서

'어? 김아중 나오는 영화가 있네?' 하고

작은 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겁니다.

그러면 게임 끝.


나 이제 저거 알았으니, 본다. 하는 무언의 공식이 성립되는 거죠.

그렇게만 되면 다 되는 거였습니다...


근데 '더 킹' 포스터에 김아중 사진이 없어...

지나가면서 고개까지 꺾으며 돌아봤는데

섬네일도 없어... ...


하아... 고개 부러지는 줄... ...




역시 더킹... ...





사진도 없는데 김아중 나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가 의아해하면 곤란한 거거든요.

이미 알 거 다 알지만 그래도 나름 지킬 선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그래서 나 저거 봐야 돼.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더군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아내는 알고 있었더라구요.

김아중 나오는 걸.

예고편을 어디선가 봤겠죠.

그런데 나한텐 입 딱 다물고 있었던 겁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속을 태웠었는데... ... 믿을 사람이 없어...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딱히 끌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었지요.

그건 팬으로서 정말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펀치' 때와 비슷한 상황의 영화를 본다는 건

두부 대신 비지를 내오는 부도덕한 상행위도

눈 감아 주는 것 같아서 속이 편치 못합니다.


나 하나 그런다고 해서 당장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후일을 기약해야죠.

다음엔 더 큰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언젠가는... ...



봄에는 뭐 좀 있겠지? 했는데... ...






꽃들이 다 지고 있네요...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