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7일 수요일

김아중 그리고 강아지



개에게는 주인이 한 명이라고 한다.

우리가 우리 식으로 생각하는 상전으로서의 주인인지 아니면

개한테는 개 나름으로 생각하는 어떤 다른 의미의 사람일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아지 맘 속으로 따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라는 거다.


우리 집 강아지를 보면 확실히 그런 거 같기는 하다.

아내가 주인이다.

다른 사람과 잘 놀다가도 잘 때는 세상없어도 아내 옆에 자리를 잡고 등을 붙이며 잔다.

사실 그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난 가끔 잠시라도 강아지가 내 옆에 누우면 신경이 쓰여서 잠을 설친다.


같이 산책을 하면 강아지에겐 아내의 존재가 가장 중요해진다.

아내가 동네 산책 중에 잠깐 빵집이라도 들어가게 되면 

그 순간부터 빵집 앞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나나 다른 식구들의 행방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버려진 강아지들도 주인과 헤어진 장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장소로 주인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 충성심 때문일 거라는데 

어쩌면 주인이 없어진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새끼 때부터 사람 손에 길러진 야생 동물을 다시 놓아줄 때는 

조금씩 야생성을 기르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남북 전쟁 후에 자유를 얻은 노예 중에는

일하던 농장에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글도 모르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상태로는 갈 곳도 달리 없었겠지만

그들도 변화된 삶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생명체는 모두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멀어진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강아지가 주인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잘 신던 양말 한 짝을 어느 날 잃어버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혼란과 낭패감을 들게 할 것이라는 건 틀림없다.

그리고 그런 심각한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 


누가 물어본 적도 없고 또 궁금할 리도 없지만,

내가 그래서 김아중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거다.


겁이 나...

김아중처럼 생기지 않은 여배우들을 본다는 게...

눈이 다운그레이드된다는 게...


김아중은 보면 모자가 참 잘 어울린다.

아무 모자나 사이즈가 맞겠지... 좋겠다...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2015년 10월 2일, OO 백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