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3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셜리 맥클레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얼마 전에 봤다.

나도 상상에 죽고 망상에 사는 사람이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제목이 풍기는 판타지가 마음에 와 닿았었다.


영화 중간에 여주인공이 부르는 노래는(https://www.youtube.com/watch?v=-oQO-kGU2lA)

예전에 라디오에서 종종 나오던 노래라서 반가웠고

내용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인위적인 사건들의 연속은 좀 아쉬웠다. 

매우 감동적일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다는 정도.


이 영화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영화 때문이 아니라

주연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조연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몇 번 등장하고 마는 주인공 엄마 역의 배우 때문이다.


처음 등장할 때 '어? 혹시?...'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를 잠시 멈추고 검색을 해봤더니 역시, 

'셜리 맥클레인'이었다.


그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었지만,

어렸을 때 영화를 TV에서 방영하면 꼭 챙겨봤던 

예쁜 여배우들 가운데 한 명.

어린놈이 왜 그러고 살았는지...


주로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기억 속 '셜리'는 눈에 띄게 예쁜 건 아니었지만 

천진난만하고 귀엽고 선한 인상에 

다리가 눈에 띄게 예뻤던 잉? 그런 이미지로 남아있다.


어쨌든 그 유명하고 예뻤던 '셜리'가 

이제 할머니가 되어 영화를 보조하고 있는 걸 보면서

내가 느낀 실망감이나 세월의 무상함은 정말 컸다.


완전히 잊고 지내다가 갑작스레 다시 봐서 더 그랬을 것 같기도 한데

배우에 대한 연민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유튜브로 살펴본 그녀의 근황은 

매우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나이(80세)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영화에 출연한 것은 분명 흔치 않은 축복이라서

배우를 보며 느끼던 애처로움은 사실은 덧없이 나이 들어버린 

나 자신을 향한 연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다른 사람들에겐 언제나 뜬금없겠지만, 

나로서는 항상 생각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김아중도 그 나이까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고


이 블로그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은 

김아중이 80세에도 활동을 할지 안 할지 그 결과를 알 수 있겠지만,

또 할머니가 된 김아중을 본다면 지금의 나처럼 착잡한 감회에 젖겠지만,

나는 무슨 재주를 피운다 하더라도 그걸 알 길이 없다는 생각에

심란하고 먹먹한 기분이 들더라는 거다.


그래서 어쩌면 내 상상 중에 유일하게 현실이 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먼 훗날 어느 명절 차례상 앞에 우리 아이들이 모여앉아

'아버지가 전에 김아중 좋아하셨지...ㅎㅎ'

'맞아. 이번에 무슨 영화에 할머니로 나오던데?'라며

이야기라도 나눠준다면 가만히 찾아가 엿듣던 내가 행복할 거 같더라는...

어쩌면 그때도 같이 간 아내 눈치 보느라 먼 산 바라보며 

몰래 웃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