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9일 일요일

김아중의 '캐치 미'를 비행기에서 봤다.


 
어쩌다 보니 미국에 또 혼자 오게 됐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혼자 집 떠난다는 건 정말 심란한 일이다.
 
 
더구나 돈이 넘쳐나서 비즈니스석을 탈 처지도 아니고
 
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 행여 옆 사람 공간을 침범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열네 시간씩 비행기를 타는 일은 고문에 가깝다.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그야말로
 
그저 버티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이번 비행은 두 가지 점에서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첫 번째는 내 옆자리에 앉았던,
 
자기네 나라가 가운데라고 무작정 우기는 우리 옆 나라 아줌마.
 
 
이 아줌마는 나라 이름처럼 가운데 열에 자리 잡고 앉아
 
비릿하고 텁텁한 동물 사람의 냄새를 은은히 풍기더니
 
비행기가 순항 모드에 들어가 코가 익숙해질 즈음엔
 
난데없이 구수한 방귀탄을 쏘아댔다.
 
 
솔직히 처음엔 내 코를 의심했었다.
 
내가 잘못 맡았겠거니,
 
설마 비행기 안에서?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그런데 이게 두 번 세 번 자꾸 반복되고
 
끝날 거 같지도 않고 피할 데도 없고 그러니까
 
나중엔 사람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었다.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최악의 아줌마였다.
 
 
두 번째는...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비행기 안에서 '캐치 미'를 봤다는 거다.
 
 
사실 비행기에서 유일한 낙이라면 간간이 승무원이 건네주는
 
공짜 주스 받아마시는 거와 공짜 영화 보는 건데
 
 
그간 비행기를 탈 때면 혹시 김아중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매번 했었지만, 번번이 실망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면서는 그저 외국 영화나 두어 개 보다 보면
 
지루한 여행도 어떻게 끝나겠거니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고
 
실제로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외화 하나를 보기도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또 다른 외국 영화를 고르다가
 
불현듯 혹시? 라는 생각이 떠올라 한국영화 폴더를 열어보니
 
열 편 남짓한 영화 중에 당당하게 '캐치 미'가 있었던 거다.
 
떡 본 듯 반갑고, 어쩐지 자랑스럽고, 괜히 감사했다.
 
 
고마워서 딱 두 번 봤다.
 
연속으로 계속 보려다가 혹시 통로 건너편 뒷자리 우리나라 아줌마가 볼까 봐
 
내 깐엔 일코 한다며 중간에 서너 시간쯤 외화를 보며 쉬고 나서 또 본 거다.
 
... 내 소심함은 어디서나 빛난다...
 
그리고 몇몇 장면은 돌려서 다시 보기도 했고.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엉덩이 아픈 것도 못 느꼈고
 
옆자리에서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 듯했다.
 
 
그냥 손바닥 하나보다 조금 큰 스크린 외에
 
이 세상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약이 이런 걸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고통을 잠재우는 마약.
 
김아중.
 
 
물론 난 이것도 인연이라고 믿는다.
 
나한테는 다 닥치고 인연이다.
 
 
어쩌다 갑자기 오게 된 미국.
 
비행기에서 '캐치 미'와의 우연한 조우.
 
이게 인연이 아니면 내게 무슨 다른 인연이 있겠나...
 
 
멀리 가더라도 자기를 잊지 말라며 김아중이 풀어놓은 인연의 실타래에
 
내가 또 발이 걸리고 만 것이 틀림없다는 행복한 상상...
 
                                          눈을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감았다가 뜨는지...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