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1일 토요일

김아중의 '캐치미'를 보고 나서



나는 TV는 잘 안 보지만 개그 프로그램들은 되도록 챙겨 보고
 
외국 코미디 영화도 종종 내려받아 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캐치미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별로 할 게 없다.
 
내가 김아중 팬이기도 하지만,
 
흔한 조폭 얘기가 아니라서 소재도 새로웠고
 
군데군데 마음껏 웃을 수 있었던 부분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자연의 물리 법칙과 이성적 논리에 관심을 두거나
 
영화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 몇 방울이라도 흘려야 돈이 안 아까운 사람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가족애, 동료애 따위의 계몽적 교훈이나
 
감독의 정치적 견해가 궁금한 사람도 이 영화를 보면 안 될 거다.
 

이 영화는 이를테면 '미스터 빈' 시리즈 같은 영화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말들을 받아들이며
 
마음을 열고 편히 있으면 시종일관 웃음이 번져 나오는 영화다.
 

요즘엔 코미디라고 해도 어쭙잖은 감동 코드로
 
관객의 눈물을 유도해보려는 영화들이 대부분인데
 
캐치미에는 그런 억지 눈물 자극 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물론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종합선물세트는 그 나름의 미덕이 있다.
 
하지만 내가 원치 않는 소고기 맛 다시다까지 들어있는 종합세트보다는
 
내가 원하는 참기름만 가지런히 들어있는 것이 훨씬 좋기도 한 거다.
 

캐치미는 요즘 외국 영화에서도 보기 드문 순수한 웃음보따리다.
 
순수한 참기름 세트인 거다.
 
작위적인 눈물 코드가 일단 없다.
 
감독이 강요하는 교훈도 없다.
 
감독의 정치 성향은 더더욱 알 수 없다.
 

대신 첫사랑과의 헤어짐과 만남이라는 애틋한 감성에
 
가끔은 황당하고 느물느물한 웃음을 적절히 섞어놓은
 
밀크 초콜릿 같은 달콤함을 제공하는 데 충실한 영화다.
 
초콜릿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매운 떡볶이를 들이미는 따위의
 
몰염치한 짓을 이 영화는 하지 않는다.
 

추운 연말이다.
 
지난 한 해의 무거움을 웃음으로 잠시 잊고 싶은 사람,
 
무겁진 않았지만, 그냥 한번 웃어보고 싶은 사람,
 
앞으로 다가올 무거움이 마냥 걱정인 사람,
 
그냥 무거운 건 무작정 싫은 사람,
 
전문가를 자처하는 한량들이 뭐라고 하든 소신껏 웃어보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이 영화를 한 번 볼 일이다.
 

천진난만하고 시원하게 웃고 나면 덤으로
 
순수했던 첫사랑의 추억이,
 
그런 게 없었더라도 마치 있었던 것처럼,
 
한동안 주변을 떠돌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으니까...
 


 
(사진 출처: 영화 '캐치미' 공식 사이트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92526 
 
   ... 여기가 아닐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