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김아중은 동글동글하다.


 
일요일 저녁에 한가하게 예능 프로를 보던 아내가 불현듯
 
"주ㅇ이 영화 나오데?" 라고 했다.
 
 
"아, 그래?"
 
잠깐이었지만
 
'아 그거 김아중도 나와.'
 
를 말해야 하는 찬스인지 아닌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김아중을 말하는 것은 언제나 옳지 않다.
 
'호빗'을 보러 가면 영화관에 널려있을 '캐치미' 포스터를 보며
 
자연스럽게 바람을 잡을 수 있는데 여기서 일을 망칠 순 없는 거였다.
 
 
"김아중도 나오더라...?"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아내가 한 말이었다.
 
 
내가 김아중에 혹하는 걸 알면서도 주ㅇ 얘기부터 꺼낸
 
아내의 저의는 통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의 머뭇거림은 의도치 않게 신의 꼼수 중의 꼼수가 된 거 같았다.
 
 
나는 정말 이 이상 쿨한 남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아내가 여기지 않을까 싶게
 
"아..., 그럼 보러 가야겠네?"
 
라고 미소를 띠며 차분히 말해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혼자만의 숨 가뿐 신경전을
 
무사히 치른 후의 여유로움이 묻어있었을 거다.
 
 
그래서 월요일(12월 16일)엔 아내가 벼르던 호빗을 봤고
 
어찌어찌 하다가 수요일 저녁이 되었을 때
 
"내일 아침 10시 10분이야. 김아중 거 봐야지."
 
라는 아내의 말이 있었다.
 
찾아가는 서비스처럼 날짜와 시간까지 알아서 착착 진행이었다.
 
 
눈발이 약간 흩날리던 목요일(19일) 아침
 
예정대로 영화관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갑자기 아내가
 
"영화 제목이 뭐였지? ... 아 캐치미.ㅎㅎ 우리 뭔 주책이냐."
 
하며 키득거렸는데
 
묘하게도 아내는 이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고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어쩐지 흐뭇한 분위기를 틈타
 
"기념이지.ㅎㅎ"
 
라고 얼버무리며 내가 전단지 두 장을 뽑아 챙겼는데도
 
아내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이었다.
 
꿈이라도 이렇게 순조로울 순 없을 거 같았다.
 
 
영화는 아내 말로는 괜찮았단다.
 
나야 뭐 더 말할 게 없었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김아중의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다.
 
"이쁘니까.ㅎㅎ"
 
다른 수많은 어설픈 이유들이 입안에서 맴돌기는 했지만,
 
정직은 언제나 최선의 방어다.
 
 
아내는 어떤 배우가 더 예쁘네, 난 아니네 하며 말을 주고받았는데
 
아내는 내가 동글동글한 형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려줬다.
 
 
"김아중이 동그래? 동그랗지는 않은데...?"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어도
 
김아중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이 영 불안해서 그냥 말았는데
 
 
아내가 말하는 '동글동글'이란 외형적인 면도 있겠지만
 
어쩐지 행동이나 말에서 풍기는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김아중이 애교 있게 통통거리는 모습들이
 
아내에겐 동그랗다는 느낌으로 형상화된 게 아닐까 싶은 거다.
 
 
하여간 '캐치미'는 더 할 수 없이 평화롭게 봤다.
 
흥행은 비록 아쉽게 되었지만
 
내게는 2013년 12월 어느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준 영화가 하나 생긴 거다.
 
 
작년에 '나의 PS 파트너'도 아무 탈 없이 봤고,
 
'싸인'도 그렇고,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이후부터는 모든 게 조금씩 더 순조로운데
 
 
내가 티를 많이 안 내서 그런가? 하는 생각보다는
 
아내도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평화로우면서도 쓸쓸한 느낌이다.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