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0일 수요일

김아중의 '캐치 미' 제작보고회


11월 17, 18, 19, 3일 간 아내가 친구들과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결혼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짐짓 아무렇지 않게 그러라고 했다.
 
이미 가려고 예약까지 다 해놓고 말하는 건데 반대해봤자
 
나만 웃기는 사람 되는 거다.
 
 
처음엔 김아중 영화나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문득 18일쯤에 서울에 가서 그간 점찍어둔 카메라 가방이나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은 맘에 들었지만, 가격이 좀 뜨끔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몰래 현금으로 구매하려고 봐둔 것이 있었기에
 
아내가 떠나기 전에 카레를 한 냄비 끓일 때는 조바심까지 났다.
 
 
그러는 중에 '캐치 미' 제작보고회가 18일이라는 기사가 떴다.
 
오호, 보고회 하는구나... 내가 서울 가려는 날이네...
 
처음엔 그런 생각이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남의 나라 얘기였던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침에는 제작 보고회에 가서 김아중을 보고
 
끝나면 카메라 가방을 사고
 
그다음엔 용산에 가서 '미녀는 괴로워' 블루레이나 한정판을 하나 사더라도
 
아무도 모를 거라는 알차고 은밀한 계획이 번쩍 떠오르는 거였다.
 
뭐 아무도 모른다고 해봤자 아내만 모르면 되는 거지만...
 
 
아, 이건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 같았고,
 
살다 보니 드디어 나도 김아중 실물을 다 보는구나,
 
나도 전생에 나라 하나쯤은 구했나 보다,
 
김아중에, 가방에 이건 뭐 완벽한 계획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뒤죽박죽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는데
 
아 그만 입장권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것참...
 
내가 그렇지 뭐...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김아중을 보겠냐...
 
 
꿈꾸는 것 같던 환상이 실망으로 바뀌고 나니까
 
가방 구매 같은 원래 계획들마저 허망하게 여겨져서
 
결국 18일엔 시계만 보다가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보고회를 한다던 11시가 됐을 때의 기분이란...
 
 
사실 내가 김아중을 보면 뭐하겠나.
 
떨려서 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다가 사인이나 한 장 받으면 끝일 텐데.
 
이 나이에 주책이 하늘을 뚫는 거지... 그냥 다 허무한 거지...
 
 
김아중을 실제로 보는 건 외국 여행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도 해봤다.
 
다녀오고 나면 뭔가 꿈을 꾼 거 같고
 
기억 속 풍경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흐릿해지면서
 
막연히 설레던 느낌만 가슴 한편에 남게 되는,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녀왔다는 사실 외에는
 
TV로 보는 풍경이 훨씬 보기 좋은 그런 외국 여행.
 
 
며칠 혹은 몇 달을 다녀온다 해도 우리가 외국을 다 알 수 없듯이
 
몇 분 혹은 몇 초 동안의 짧은 지나침으로 김아중을 알 수는 없는 거다.
 
뭐 내가 김아중을 알아야 할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지만...
 
 
그렇다면
 
어차피 모르고 지낼 거 보면 뭐하느냐는 거다...
 
 
이게 참...
 
아무리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 게...
 
 
가장 그럴듯했던 기회를 또 놓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참 허전한데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남이 찍어 놓은 사진이나 보면서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늙은 아저씨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젊은 사람들처럼 소리도 질러보는,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뿐이라는 쓸쓸한 생각이 든다.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11월 18일 '캐치 미' 제작 보고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