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6일 목요일

김아중 팬 약자



여러 해 동안 김아중 팬질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잘 몰랐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세상 많은 것에 등급이 있어 때론 사람을 울리고 웃기듯
팬에도 상중하의 급이 있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드는 거다.





상과 중을 나누는 기준은 별거 없다.
김아중을 만나봤다면 상, 아니면 중급이다.

가히 팬질의 끝, 팬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직접 만나서 사진 찍고 사인을 받는,
정말 할 일 없는 팬이 아니라면 범접할 수 없는 상급.




중과 하의 경계도 별거 아니다.
팬 활동을 하면 중, 아니면 하급이다.

팬클럽이나 카페, 갤러리 등에서 활동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팬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TV나 영화에 나오면 눈여겨보면서도 팬클럽에는 가입하지 않는,
티는 안 내지만 그렇다고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 팬들은 하급이다.




이 중간에 상에 이르지 못한 한을 품은 채 팬클럽을 떠도는,
역시 할 일도 없는 팬 대부분은 중급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처음 팬질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아중과 같이 사진 찍는 팬들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저런 거를 할 수 있으리라, 어깨동무까지는 몰라도
악수를 빙자하여 그 하얗고 고운 손을 아무 이유 없이 두 손 모아 잡아보리라
생각하며 꿈에 부풀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도 팬질의 끝을 당연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스스로 판단하건대, 나는 중급의 어느 끝자락에 매달려있다는 생각이었고
조금만 더 지나면 곧 상급으로 진입할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채
팬질의 정상을 바라보며 할 일이 이렇게도 없을까 싶은 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게 그렇지가 않은 거였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상 단계로의 진입은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만나면 뭐 할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거나 일단 만나고 말겠다는,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진 않는 각목 같은 의지와




내가 바로 팬이다 하고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비록 그것이 쌀 한 톨만큼이라 해도, 있어야 가능한 거였다.




아쉽게도 남들 다 가지고 있는 듯한, 그런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의지와 용기가 내겐 없다는 생각이 이제 든다.
원래 그런 게 없었는지 혹은 세월이라는 벽이 막아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과거 수많았던 팬 사인회와 팬 미팅, 레드카펫을 바라볼 때는
그래도 '나도 언젠가는' 하는
기약 없는 가느다란 희망 하나가 있었는데




최근에 대책 없이 마구 쏟아지는,
이유도 가지가지인 각종 시사회와 무대 인사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함에 가위눌리듯 버둥거리다가 문득 깨달은 거다.




의지박약인 나는 지난 6년간 언제나 이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라는 걸 말이다.




내가 그런 곳에 가서 실제로 김아중을 보는 것은
김아중이 쓴다는 SF 시나리오보다 더 SF 같은 상상 속의 일일 거라는 걸 말이다.

... 내 6년 묵은 희망은 내 6년 묵은 속옷 고무줄처럼 삭아서 흐물거린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 넘쳐나는 김아중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서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김아중의 숨넘어가는 듯한 맑은 웃음소리와
그 어느 바이올린과 피아노 2중주보다
더 감미롭고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김아중을 만나보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며
찌질하게 추운 방구석에서 이런 글이나 쓰는 나는
팬 약자다.





(사진 출처: 2012년 11월, 12월 InStyle, Bazaar, El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