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7일 목요일

김아중의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무대 인사 후기





제가 사는 도시에서 무대 인사를 한다는 스케줄이 떴었습니다.

속절없이 가슴이 뛰기 시작하더군요.

가서 볼 것이냐? 말 것이냐?...


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쉽게 손꼽을 수 있었지만,

가야 할 이유는 사실 없었어요.

팬이라면 가야 마땅한 자리라는 윤리적 측면을

고려해 볼 수는 있었지만요.


당일 아침까지 고민하다가 말다가, 결국 갔다 왔어요.

김아중은 모든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해요.

태풍 탓에 비도 꽤 많이 오던 날이었죠.


그날 사진 찍어보겠다고 복도에서 기다렸는데

엇! 김아중이 코앞으로 지나간 뒤에야 알아챘었죠.


이름을 불러야 하나? 뒷모습이라도 찍어?

하는 생각에 순간 머리는 최고속으로 터질 듯 돌아갔지만

막상 입이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무대 인사 때는 12장짜리 필름을 다 찍은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 보니 9장만 찍었고...


잘 되는 것 같은데 뭔가 약간씩 어긋났었어요.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만, 하필 그날이 그런 날.


'캐치 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역시 눈도 마주치지 못했습니다.

제 옆의 팬은 커다란 플래카드를 들었었고

저는 핸드폰 플래카드를 들었었지만,

김아중은 누군가를 찾는 듯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제 주위 말고는 소리 지르는 팬도 별로 없었는데 말이죠.

왜 저러는 걸까?... 싶었는데 이젠 왠지 알 것 같아요.


한 무리의 젊고 발랄한 팬들 사이에

뜬금없이 끼어있는 희끄무리한 할배에 놀란 거죠.


헉! 아까 복도 그 할배?... 너무 싫어...


본능적으로 시선은 먼 곳에...

김아중도 사람이니까 그런 거까지 숨길 순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이해가 가더라는...


김아중은 길지 않았던 무대 인사 뒤에는

다른 스케줄을 위해 곧바로 다른 도시로 떠나갔죠.

무대 인사라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개허무해요.


우리 동네로 온다니까 뭔가 다른 인연 같았고,

생의 마지막 기회인 거 같았고,

인사도 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사인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았고,

막 꿈꿔오던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 꿈이었어요.


무대 인사가 끝나자 꿈꿔오던 것들도 다 꿈 같이 흩어졌지만,

김아중을 봤던 순간들도 지금은 자꾸 꿈처럼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이상하죠.

가까운 자리에서 또렷이, 생생히 봤는데도 말이죠.

너무 환상적으로 예뻤기 때문에 그런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좀 무리인 거 같고...


꿈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사람이 그날 거기 있긴 있었죠.

하지만, 김아중을 보던 그 모든 순간이 꿈처럼 느껴지는 건

그 순간들이 제겐 불가능처럼 여겨지던 일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제가 본 김아중은 사진이나 스크린 등

모두 2차원 평면 이미지였죠.

3차원 공간에서의 김아중이란 저처럼 소심한 사람에겐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상상의 세계였어요.


김아중에 관한 한 제게 현실은 언제나 2차원이고,

3차원은 오히려 비현실이 되었죠.

그러니까 제가 김아중을 실제로 보러 갔던 것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현실에서 비현실로의

기묘한 여행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성이 제가 김아중을 보고 와도

늘 꿈같이 모호한 이미지만 기억하게 되는 이유일 듯합니다.


환상적인 꿈으로 가는 여행.

하지만 깨어나면 허무하게 흩어지는.

     (아, 이 표정...)



저도 빵이랑 우유만 먹으면서 Jolla게 무대 인사 따라다니고 싶었는데...

우유를 마시면 탈이 나는 슬픈 짐승이라...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건지도... ㅎㅎ)



(사진 출처: 인터넷 여기저기)





(2019. 09. 22 찍은 슬라이드 사진들. 창에 비춰보기)




(라이트 박스 위에서 보기. 잘 나오진 않았어도 초점은 맞아서 다행.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