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8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나의 주문



'샤잠'이라는 주문을 외치면 번개가 치면서 주인공 소년이

순식간에 수퍼히어로로 변하는 영화를 봤어요.

복장은 물론 외모까지 한번에 바뀌니까 평소 신분을 숨겨야 하고

튀는 옷을 입어야만 기운이 나는 히어로들한테는

참 적절하고 신선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급할 때 변장하기 위해 어느 구석으로 달려가

몰래 옷을 갈아입거나 가면을 써야 할 일도 없고

마법의 옷이니까 빨래나 보관도 문제없고,

단 두 마디로 히어로 관련 찌질한 난제들이 한번에 해결된 겁니다.


'샤잠!'


... 근데 애초에 대개의 히어로들은 왜 신분을 감추려는 걸까요?

옷은 왜 또 죽어라 쫄쫄이만 입고...


가끔 기분이 가라앉을 때가 있어요.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요.

그럴 때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리면 괜찮아지죠.

좋아하는 거라고 해봐야 뭐 늘 김아중이지만 말이죠.


하지만 김아중을 떠올리면 선명한 한 가지 모습이 아니라

이런저런 모습들이 흐릿하게 겹쳐 떠올라요.

그래서 그런지 가라앉은 기분이 단번에 사라지기보다는

뭔가 뭉그적거리며 슬금슬금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죠.

차가운 맥주를 단숨에 들이켤 때 느껴지는 '쨍'함이 부족해요.


근데 이제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냈다는 겁니다.

큐사인이나 수업 시작종처럼 명확한 신호를 머리로 보내는 거예요.

저한텐 일종의 주문이죠.


'아즁!'


비록 내가 변신하진 않지만, 머릿속 어지러운 생각들이 '펑!' 사라져요.

막연한 이미지보다는 뚜렷한 음절이 사고의 흐름을 단번에 바꾸는 거죠.


'아즁!'


'아중!' 보다는 어쩐지 '아즁!'이에요.

'아중'은 함부로 부르기엔 너무 귀한 이름이니까.


'아즁!'


슈우~웅 하는 느낌으로 빠져드는 겁니다.

소리 낼 필요는 없죠.

그냥 단어를 떠올리거나, 정 아쉬우면 입을 살짝 움직이는 거예요.

이름 자체에 강력한 힘이 있어요.


'아즁!'

살아온 날들은 왜 그 모양인지,


'아즁!'

살아갈 날들은 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지,


'아즁!'

자괴감이, 불안감이 순식간에 없어져요.


'아즁!'


이루지 못한 꿈들이 많은 것도

더는 이루고 싶은 꿈이 없는 것도 다 잊을 수 있어요.


'아즁!'

.

'아즁!'

.

'아중!'

... ...

... 주문이 잘 안 들으면 들을 때까지...


.

.

.

누구나 때로는 주문을 외우며 사는 거겠죠.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괜찮으면 좋겠어요.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3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