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히스토리 채널의 'Alone'이란 걸 가끔 봅니다.
오지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누가 오래 버티나 경쟁하는 거예요.
외딴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는 게 묘하게 재밌네요.
야생 생활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나한테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지금 엄청 편하게 지내는구나 하는 감사함, 안도감 같은 것도 생깁니다.
출연자들은 대개 처음 며칠은 간단한 거처를 마련하고,
불을 피우고, 먹을 걸 구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럭저럭 정착을 하고 안정적인 식량 확보가 가능해지면
멀리 떨어진 가족을 생각하며 조금씩 외로워하기 시작하죠.
결국, 외로움과 싸우는 프로그램인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최근 에피소드에서 한 출연자는
먹고 아무 할 일 없이 지내는 걸 못 견뎌 하다가 도전을 포기하더군요.
그것이 유일한 이유였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총체적 결론은 너무 심심하다는 거였습니다.
할 일 없이 지내는 건 자기 삶의 철학과 다르다나 뭐라나...
... 나하곤 달라도 너무 달라...
그런 사람도 있더군요.
할 일이 없는 걸 못 견디는 사람 말이죠.
저는 잘 견디거든요.
심심한 거.
아니 오히려 저는 할 일 없는 상태에 이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심심해서 블로그를 하기는 하지만 상금이 걸려있다면
심심하게 뒹구는 것쯤은 마냥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가 쫌 게을러...
심심하면 하루종일 김아중 생각을 하는 거죠.
뒹굴면서.
먹을 거 있겠다, 할 일도 없겠다, 버티면 돈도 줘, 얼마나 좋아...
아무도 없는 오지에서 저녁이면 쏟아지는 밤하늘 별을 보며
김아중이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하는 겁니다.
환상적이죠.
꿈에서나 있을 법한 밤입니다.
김아중이 다음 작품 고민을 하고 있을지,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밥은 현미인지 백미인지, 찹쌀은 섞어 먹는지, 귀리가 몸에 좋다는데,
만나면 섞어 먹는지 물어볼까? 실례이려나? 보리는 어떻게 하나...
할 일도 없는데 뭐 이따위 생각만 해도 끝이 안 날 거거든요.
생각할 건 또 많죠.
나 같은 팬을 괜찮아할지, 괜찮지는 않아도 거슬릴 정도는 아닐지
그런 생각도 해보구요.
싫어할 거라는 가정까지는 할 필요가 없지요.
그건 너무 비참해지잖아요.
팬은 원래 얼굴에 철판 깔고 하는 거거든요.
김아중이 좋아하든 말든... 쭈욱 뻔뻔하게... ...
잎이 잔뜩 달린 나뭇가지 하나를 꺽어드는 겁니다.
유치하지만 잎을 하나씩 떼면서 하는 거 있잖아요.
날 괜찮아할 거다, 아니 그건 아니여, 괜찮..., 아녀...,
아니여가 나오면 자존심 상하는데 팬 때려칠까?...
아녀,... 때려쳐,... 아녀...,
이러면 두어 달은 심심찮게 지날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난 팬이라면서 김아중이 뭘 좋아하는지
뭐 그런 거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네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생각나는 게 많지 않습니다.
전에 무슨 라디오 프로에 도넛을 몇 상자 사 간 걸 보면
단 거는 좋아할 거 같고,
와인은 좋아한다고 한 거 같은데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 거 같고,
사과는 좋아하는지 아닌지, 수박은, 딸기는, 참외는, 오이는, 시금치는...
아, 브로콜리...
이게 또 끝이 없네요.
두어 달이 뭐야, 일이 년도 가뿐히 뒹굴...
아니 실은 이런 거로 벌써 팬질 10년이에요. 10년... 뻔뻔 10년...
... 바람처럼 사라진 내 청춘, 아니 노년... ...
그런 프로는 나가기만 하면 우승인데...
아 근데 왠지 서글프네... 말해본 적도 없이 10년이라니... ...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