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4일 목요일
김아중 그리고 남은 인연
아직 남아 있는 인연이 있기에 산다고 하죠.
어디에 어떤 모습의 인연이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못다 한 인연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그 인연을 다 하기 위해 사는 거랍니다.
꼭 낯선 곳 낯선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일 필요는 없지요.
아내와 함께 라일락 향기를 맡아야 하는 인연이
몇 번 더 남아있을 수도 있고,
우리 집 강아지한테는 공을 더 던져주어야 하는
인연이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찾아야 할 인연을 다 찾고 난 다음엔,
해야 할 인연을 다 하고 난 다음엔 노을 지는 저 너머로 가겠지요.
기왕이면 아내와 라일락 향기를 맡는 인연이
수 없이 남아있다면 좋겠어요.
강아지한테도 공을 던져 줄 일이 많이 남아있으면 합니다.
강아지랑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을 거 같거든요.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시간은 소리 없이 지나가고
라일락은 일 년에 단 한 번 핀다는 걸요.
소중한 줄도 모르고, 끝인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 많은 인연이 생각납니다.
86년 봄 언젠가는 마당에 핀 목련 아래에서
지금처럼 철없이 사진 놀이를 하고 있었지요.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는 어머니께서 웃으며 보고 계셨고요.
저는 그 목련을 어머니와 오래도록 다시 볼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저는 그해 여름 멀리 떠났었고 몇 해 뒤 부모님은 이사를 하셨지요.
시간이 가기 전엔 알 수 없기 때문에
한순간이나마 행복할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저나 어머니나 그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리고 또 생각합니다.
나는 김아중과 어떤 인연이 남아있을까? 하고요.
남아있는 인연이란 아마 없겠죠.
지금 이렇게 블로그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제게는 과분할 만큼 좋은 인연입니다.
우편으로 선물을 받은 적도 있고,
멀리서나마 한 번 본 적도 있습니다.
아마 제가 가진 인연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사인이라도 한 장 받는 인연이 남아있다면...
하고 늘 생각해봅니다.
사람의 마음은 채워질 수 없이 언제나 허전한 법이니까요.
물론 좋은 인연이라는 건 순전히 저만의 생각입니다.
김아중 편에선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어후, 또오 싸인! 싸인!... 그래, 싸인해줄게. 내가 아주 하나 해주고 만다.
근데 나 있는 데로 와야 돼.'
이럴 수도 충분히 있는 거거든요.
배 나온 할배 하나가 자꾸 뭐라고 하니까.
귀찮고 신경 쓰이고.
근데 그런다고 또 내가 막 오가고 할 수 있는 입장이 또 아니거든요.
아무리 방에서 뒹굴뒹굴해도 저도 입장이란 게 있잖아요.
내가 뒹구는 게 쪼오끔 바빠서... 가 아니라
그게 나한테 남은 마지막 인연이면 어떡해... ...
겁이 겁나게 나... ...
사인 받고 돌아서는데 김아중이 기다렸다는 듯이
'인제 그만 하세요.' 그러면,
그러면 이 알량한 블로그 인연도 사라지는 건데...
노을 넘어갈 때까지 할 게 없잖아...
안 되지... ...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