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6일 일요일

김아중 그리고 아내의 반전




"이제 드라마 볼 거 하나 생겼어."

결국엔 드라마 방영 하루 전날 아내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너무 좋다 보니까 입이 심하게 근질거렸죠.

그렇다고 동네 사람들한테 말할 수는 없고...


그리고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불쑥 들이대는 거,

이를테면 뒤통수를 치는 거, 그건 비열한 짓이잖아요.

저처럼 차.카.게 살려는 아저씨가 할 짓은 아니죠...


... 음, 더구나 아내 뒤통수 치기는 뭐랄까,

비열한 데다 위험하기 짝이 없어요.

거기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죠.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거...

전 그런 불확실성을 아주 혐오합니다.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정도를 걸어야죠.

방영 전에 아내하고 정당한 합의를 해야 마땅한 일이었어요.

그간 내가 밥하고 빨래 돌린 게 얼만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의 제안을 조율하고 수용하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

그런 건 늘 아름답죠.

아름다운 건 좋은 거고, 좋은 건 착한 거...


아내가 무서우냐구요?...

에이... ...

문제의 본질을 그딴 식으로 파악하려들면

결코 진실에 다가갈 수 없지요... 그럼요...


막 화가 나려고 하네...


... 어떻게 알았어...


그저 어떻게든 아내의 은혜로운 윤허를 얻어서

두 다리 편히 뻗고 드라마를 보고 싶었어요.

소시민적인 삶에 어울리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을'의 바람이었죠.

근데 너무 겁이 나서... 미루고 미루다가 하루 전에... ...


"어? 뭔데? 언제부터?"

입질은 금방 왔거든요.


"내일..."

막상 말은 했지만, 심장이 떨려서 좀 천천히 설명하려는데

"?? 또 김아중 나오는 거구나? 어이구..."


제가 드라마를 꾸밈없이 소개 좀 해보려고

맘 속에 준비한 단어들이 있었거든요.

스릴러, 아이 납치, 범인의 같잖은 요구,

시청자와 미디어의 관계, 등등...

근데 김아중이냐고 딱 한마디 하더니 그걸로 끝이 났어요.

어이구... 에 모든 게 끝났어요.


이거 괜찮은 아이디어다, 쫌 심오하다,

내가 설마 김아중 때문에 보겠느냐,

엄태ㅇ도 나오고 지현ㅇ도 나오고 전효ㅅ도 나온다더라, 등

일말의 소명 기회도 다 사라졌죠.


뭐 사는 게 늘 이렇군요.

역시 좋기만 한 일은 없는 겁니다...

아, 좋기만 한 일 좀 일어나 봤으면...


방영 첫날 TV 앞에 쪼그리고 앉은 나를 보더니

아내가 혀를 차며 다른 방으로 가더군요.

거실에서 혼자 보는데 가시방석이었죠.


그래도 이번에 김아중은 정말 예쁘게,

무진장 많이 나오더라구요.

다 이뻐... 너무 좋아...

잠깐씩 가시방석을 잊을 만큼...


"내용이 뭐야?"

2회 하던 날 끝날 때쯤 아내가 옆에 앉으며 물었습니다.

쟤는 누구고, 쟤는 무슨 관계고, 쟤는 지금 ...,

등등 열심히 상황 설명을 해줬어요.

사실 잘 꼬드겨서 아내와 같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가시방석을 벗어나죠.


"재밌어?"

뭐 저는 꼭 드라마가 재밌어서 보는 건 아니죠.

김아중만 나오면 전 일단 다 좋으니까요.


하지만 너무 좋아하는 거 티 내면 안 되잖아요.

미운털 박힌 놈이 그러면 오갈 데 없어지잖아요.


"... 뭐 재밌는 부분도 있고..., 약간 느린 곳도 있고..., 그러네."

이 정도면 됐지 싶게 나름 시니컬한 태도를 보여줬죠.


"재밌는 것도 아니고 재미없는 것도 아니라고? ㅎㅎ

그럼 재미없는 거네.

아니, 당신이 처음부터 우리나라 드라마를 본다고 하는 게 웃긴 거지.

여자 하나 보겠다고..."


여자 하나! 두둥... ...

결정타였어요.

아내는 내가 좀 그럴듯한 밑밥을 더 깔아보기도 전에

정곡을 쿡 찌르며 들어와 숨 쉴 틈도 없이 쐐기를 박더군요.


또 끝이었어요.

앞으로는 정말 나 혼자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전에 '싸인'과 '펀치'를 나란히 앉아서 봤던 기억이 꿈처럼 스쳐 지나가더군요.


근데 2회 마지막에 트렁크 여는 장면 있잖아요.

앤지 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안알랴줌' 하던 장면이요.

옆에서 시큰둥한 멘트를 연신 날려대던 아내가 거기서

"찾은 거야? 앤가?"

하며 갑자기 뜬금없이 확 낚이더라고요.


허허 이럴 수가...


아내의 반전...

뭐 그런 셈이 됐어요.

재미있네 없네, 말이 필요 없는 거였어요.

그냥 보면 되는 거였어요.


다음엔 어쩐지 같이 볼 거 같습니다. ㅎㅎ

오손도손까지는 아니라도...


김아중 최고!!!



(사진 출처: 2016년 6월 21일 SBS 수목 드라마 '원티드' 제작발표회 인터넷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