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2일 월요일

김아중 그리고 잿밥



내 취미는 사진이라고 남한테 말하기는 하지만

저는 사진보다는 사진기에 관심이 더 많은 부류입니다.

사진기를 만지다 보니 어쩌다 사진도 찍게 되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다. 뭐 그런 경우입니다.


당연히 이렇다 하게 좋은 사진을 찍은 적이 없습니다.

아내와 강아지 얼굴만 찍어대니 사진이 늘 틈도 없지만

사실은 사진 찍는 재능이 없는 겁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여러모로 재능이 없다는 걸 부단히 깨닫는 거죠.


하여간 저는 사진기 만지는 게 좋아서 사진을 찍는 편이라

좋아하는 사진기가 아니면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제에 까다롭기까지 합니다.


사진만 이런 줄 알았는데 저는 다른 취미에서도

전부 비슷한 경향이 있더군요.

어딘가 약간씩 잿밥 쪽입니다.

취미의 세계에서 잿밥을 구분한다는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요.


영화 취향도 그래요.

어려서 영화를 보기 시작한 이유도 대개 예쁜 여배우들 때문이었죠.

맘에 드는 여배우가 안 나오면

유명한 영화라도 별로 내키지 않았고요.


예쁜 여배우 때문에 보다가 내용도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어도 망한 거는 아니다.는 그런 자세죠.

일관된 잿밥입니다.


그래도 그동안엔 문지방에 걸터앉아 잿밥 쪽으로

발만 내밀고 지낸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아중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문지방을 넘어 선 겁니다.


왜 김아중이었는지,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입니다.

김아중이 어떤 뇌관을 터뜨린 것이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좋은 사진기도 비슷해요.

보면 뭔가 확 와 닿는 게 있거든요.

마음속에서 뭔가가 '탁' 터지는 거죠.

그러면 달려가서 와락... 덥석...


좋은 여배우도 뭔가 확 와 닿는 게 있죠.

가슴 속에서 뭔가가 '지~잉~'하고 울리는 겁니다.

그러면 와락... 헐...


요즘 보고 싶은 우리나라 영화가 나왔습니다.

윤동주 시인을 그린 영화요.

왠지 한번 보고 싶었어요.

김아중이 출연하지 않는데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우리나라 영화는 정말 수년만이었습니다.


'별 헤는 밤' 같은 시들의 정서가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했죠.

근데 아내가 저한테는 묻지도 않고 혼자 보고 와버린 겁니다.


김아중이 안 나오니까 저는 당연히 안 볼 거로 생각했겠죠.

그간 나의 행실로 봐선 자업자득이라

뭐라고 말은 못 하겠는데 속으론 정말 어이도 없고 아쉬웠습니다.

정말 많이... ...


그렇게 아쉬우면 혼자라도 보면 되지 않느냐구요?... ...


에이,... ...


김아중도 안 나오는데 내가 혼자 뭐하러 봐요...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달밤이었으나 ... ...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