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1일 목요일

김아중 그리고 동물원



극장에서 볼 외국 영화를 고르려면 귀찮을 때가 있다.

내용이 뭔지 배우는 누군지 평은 또 어떤지도 

알아야 하는 게 성가시게 느껴진다.


대단할 것 없는 그런 정보들 다음엔

또 아내의 취향이라는 절대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나의 선택과 아내의 선택 사이에서

전혀 만만치 않은 저울질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건

좋은 것이지만 귀찮은 면도 있다.


31가지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매번 고민이다.

삐끗하면 예상치 못한 걸 손에 들고 저번 것이 좋았다느니 

아내 것이 더 낫다느니 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기억이 가물거리기는 하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에 보면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는 동물원의 동물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다는 내용이 있다.


자유롭지만, 다른 동물의 공격이나 굶주림의 위협이 있는 야생의 삶이

자유 대신 안전과 풍부한 먹이가 있는 동물원의 삶보다 

동물 입장에서는 더 나을 게 없다는 거다.

자유냐 배부름이냐...


동물들이 말이라도 해주면 속 시원하겠지만

그간 사람으로서의 내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난 작가의 말이 어쩐지 마냥 헛소리 같지만은 않다.


그러니까 자유롭지만, 영화를 고르느라 고민하는 삶이 좋은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뒹굴다가 때가 되면 김아중이 던져주는 영화나 덥석 무는 게 좋은가?

내용도 필요 없고 같잖은 평들도 필요 없고.

대나무만 먹는다는 동물원의 판다 같은 삶.


난 적어도 우리나라 영화에 관한 한 고민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김아중 영화에 갇혀있는 내 삶의 방식은 나무랄 게 없다.

판다 뺨치게 편하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자유란 어떤 면에서는 성가신 거다.


말은 하지 않지만

아내도 이젠 김아중이 나오면 같이 보는 거고

안 나오면 자기 혼자 봐야 한다는 걸 안다.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다.


김아중이 출연한 작품이 주식이라면

어쩌다 김아중이 SNS나 인터뷰를 통해 추천해주는 영화나 노래는 간식이다.


그런 건 이를테면 아내가 마트에서 자기 맘대로 골라 오는 

10개들이 아이스크림 꾸러미 같은 거다.

직접 고르는 번거로움 없이 편안하게 누워있다가 받아먹는 아이스크림.

전혀 나쁘지 않다.

맛이 없더라도 내 잘못은 아니다.


김아중이 추천하는 것들도

내 취향이 아닐 때는 

'아니 뭐 이런 걸...' 하면 그만이고


내 취향일 때는 

김아중과 나의 영적 합일점을 드디어 찾은 건 아닐까 하는,

비록 김아중은 합일점 따위를 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다소 은혜로운 현재 진행형 망상 속으로 풍덩 빠져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뒹구는 판다 같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동물원에 먹이가 뜸하다는...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