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4일 토요일

김아중 그리고 신기했던 일



얼마 전 연휴에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다녀왔었다.
 
가깝지만 아직 안 가봤었다는 것과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서 여행비가 저렴하다는 것이
 
이번 여행이나 이전의 모든 여행을 총괄했던 아내의 한결같은 말이었다.
 
 
앞으로의 모든 여행 역시 아내가 한결같이 총괄할 것이고
 
여행지나 여행 시기는 저런 기준을 한결같이 충족할 거라는 것도 거의 확실한데
 
어쨌든 한결같다는 건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으르고 소심한 나 같은 인간이 묻어 다니기에는 불만을 어필할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어쨌든 내가 더운 나라에서 땀 흘리며 무얼 하고 다녔는지가 궁금한 사람은 없을 테고
 
또 그런 얘기를 블로그에 시시콜콜 늘어놓아
 
내가 누군지 증거가 될만한 흔적을 혹시라도 남겨놓을 필요는 더욱 없는데
 
 
다만, 자연이 만든 기묘한 풍경도 봤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오래된 유적도 봤지만
 
사실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여행 마지막 순간에 일어났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이 시답지 않은 글을 남기게 됐다.
 
 
나한텐 하도 신기한 일이라서 믿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귀국 후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해서 막 멈추려는 순간
 
라디오에서 김아중의 '마리아'가 나오기 시작했었다.
 
 
전율이 찌르르 일어났다고 하면 약간 뻥이지만,
 
순간 정말 뭔가가 머리를 확 휩쓸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들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바로 그 순간에
 
이젠 흘러간 가요나 다름없는 김아중의 노래가 난데없이 나오는 거...
 
내게 일상은 김아중이고, 김아중은 내 일상인 것을 마치 안다는 듯이...
 
 
그 많은 택시 가운데
 
그 많은 라디오 채널 가운데
 
바로 그 순간에.
 
 
만일 공항에서 짐 찾는 일이 더 늦었거나,
 
중간에 도넛 가게에 들러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른 택시를 탔거나,
 
혹은 그 택시 그 채널이었다고 하더라도
 
라디오 디제이가 다른 노래를 내보냈더라면...
 
 
난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사실 그 순간 그 노래는 나한테만 신기한 것이고
 
같이 있던 아내나 그 방송을 들었을 다른 모든 청취자에게는
 
한 때 유행했던 노래 이상의 의미는 없었을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 아내라면 뭔가 한마디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하여간 남이야 어찌 됐든 내겐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노래였다.
 
수많은 우연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모두 일렬로 정렬하여 그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도 나로선 당연한 일이다.
 
 
'내가 김아중 팬인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닐까?'
 
'어쨌든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인연이라는 거겠지?'
 
'기묘한 풍경이나 유적보다 더 신비로운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연이 아니겠는가?' 하는 등의
 
나다운 망상들이 꽤 여러 시간 동안 머리에서 맴돌아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붕붕 떠다녔었다.
 
 
하지만 허황한 망상과 냉철한 이성 사이를 어지럽게 왕복한 끝에
 
어찌 된 일인지 뜬금없이 결국 다음과 같은 씁쓸한 결론에 도달하고야 말았고
 
그건 나한텐 참 안타깝고 나답지도 않은 것이었다.
 
 
끄덕하면 김아중을 만나는 팬들도 있는데 나한텐 이런 게 인연이구나...
 
난 이런 걸 인연이랍시고 생각하고 싶은 거구나...
 
팬이라면서 참 대단한 인연도 다 있다...
 
 
내가 어지간히 구차하게 여겨지는 날이 있었다...
 
5월 초순의 어느 날이었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