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일 토요일
김아중과 경복궁에 간다면
경복궁에 가본지 한참 됐다.
지방에 살면서 가끔 느끼는 아쉬운 점은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궁이 근처에 없는 것이다.
잘 정돈되고 커다란 궁 안을 천천히 걸어보면
지방에 흔한 사찰이나 사당을 서성이는 것과는 다른 맛이 있다.
물론 내가 무슨 배흘림기둥 같은 거를 찾아보는 안목이나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냥 궁의 넓은 공간과 수목들에서 느껴지는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어느 순간부터 좋아졌던 것 같다.
아주 어려서 부모님 따라갔던 경복궁이나 비원은 걷기만 해서 힘들었고
놀이 시설과 동물원이 있던 그 옆의 창경궁 (그때는 창경원)이 훨씬 좋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소풍이니 뭐니 해서 몇 번 갔을 거 같고
고등학교 때 그러니까 머리가 약간 더 컸을 때
교내 미술 사생대회를 경복궁에서 했는데 그때는
하루 수업 없이 쉬었기 때문에 좋기도 했지만
궁에서 특별히 할 것은 없어도 그 고즈넉함이 어쩐지 나쁘지 않았었다.
그 후 나이가 들어 아내와의 데이트를 경복궁으로 간 적이 있는데
학창 시절의 기억처럼 가끔 사진이나 찍고
한가하게 얘기 나누며 걷기 좋았었다.
그때도 체력은 여전히 저질이라서 많이 걷지는 못했다.
... 그때는 무엇보다 온통 아내 얼굴만 보였었는데...
그렇게 결혼 전에 가 본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경복궁'하면 아련함과 더불어
한가하고 여유로웠던 느낌이 되살아난다.
요즘엔 어떻게 변했는지 아니면 변한 게 없는지
한 번 가서 천천히 걸어보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서울은 멀고 너무 복잡해서
일도 없이 궁만 보러 간다는 것이 생뚱맞다는 생각이 든다.
경복궁엔 요즘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그 모두가 저마다의 그릇만큼 추억을 만들어가질 텐데
뜬금없지만, 김아중 작품 역시 수많은 사람이 봤으니
그들 모두 제 크기만큼 김아중에 대한 추억이 있을 거다.
많은 사람에게 추억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유명한 사람은 유명한 건축물과 비슷하다.
특히 김아중처럼 크게 흥행한 영화를 가진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안겨줄 것이 틀림없다.
그건 참 묘한 느낌이다.
김아중으로 해서 나처럼 같잖은 망상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먼 훗날에도 나타나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망상의 물결... 그리고 쓰러짐...
물결은 그냥 그렇다 치고
갑자기 김아중은 경복궁에 무슨 추억이 있을지 궁금하다.
엄마 손 붙잡고 궁을 걸어본 적이 있는지...
아이스크림 내놓으라고 궁 안에서 뒹굴어본 적은 없는지...
추억이 있든 없든 내가 어쩔 도리는 없는데
없든 있든 한 번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다.
내년 봄에 할 일도 없는데
경복궁에서 팬들과 미팅이나 한번 하면 좋지 않을까,
'김아중과 함께하는 봄맞이 역사 탐방' 어쩌구 하면서
따뜻한 봄날 다 같이 경복궁을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여럿이 걷다 보면 언제나 손이 참 처치 곤란이니까
기왕이면 서로 꼭 잡고 걷는 게 바람직할 거라는...
자리 바꿔가면서 한 번씩 잡아보는...
한 사람당 10분씩...
그러면 서로 싸우지 않을 거 같은...
걷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 손금도 서로 봐주고...
내가 하면 추행일지도...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어느 봄날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고궁에 모여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
단풍 좋은 가을날의 망상.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3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