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1일 토요일

영화 '첨밀밀'을 보며 김아중을 생각한다.

 
편안한 주말이었다.
 
아내가 뜬금없이 '첨밀밀'을 한 번 보자고 했다.
 
유명하고 오래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던 여배우가 아니어서 안 봤던 영화다.
 
내가 좋아하던 배우는 왕조현과 임청하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얼빠인 거다.
 
 
어디에서 들었는지 아내는 눈물을 쏙 뺀단다며 기대를 했고
 
나도 이젠 여배우에 대한 반감도 물러져서 보는 데 동의를 했다.
 
할 일도 없는데 오랜만에 오붓하게 둘이서
 
눈물이나 두어 바가지 쏟아보자는 심산이었다.
 
 
그 유명한 영화를 내가 자세히 소개할 이유는 없을 거다.
 
김아중이 나온 것도 아니고
 
모르긴 해도 나만큼이나 할 일은 없지만
 
나보다는 훨씬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들의 리뷰가 셀 수없이 많을 거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아름답게 포장된 불륜이기도 하고 애끓는 사랑이기도 하다.
 
보고 난 후에도 여러 장면이 눈에 어른거릴 만큼 괜찮은 영화였는데
 
아내나 나나 다 볼 때까지 기대한 것처럼 눈물을 흘리지는 못했다.
 
 
그뿐이라면 나 혼자 가슴에 묻어두고 지나갔겠지만
 
김아중이 아직 배우의 꿈이나 키우고 있었을 옛날에 나온 영화를
 
여기 늘어놓게 된 것은 기본 줄거리의 곁가지로 짧게 등장하는
 
주인공 고모의 사랑 얘기가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고모는 젊었을 때 미국 배우 '윌리엄 홀든'의 팬이었고
 
그가 홍콩에서 영화를 찍을 때 구경을 갔다가
 
그의 초대로 호텔에서 같이 식사를 한 번 해본 것을
 
평생의 추억으로 안고 누추하게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그런 고모가 주인공에게
 
'윌리엄 홀든'과 식사할 때 사용했던 식기류 몇 점과 냅킨이
 
자신이 평생 가장 소중하게 간직했던 것이고

'윌리엄 홀든'은 자신을 잊었겠지만

자신은 그를 기억하므로 괜찮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운명한다.
 
 
허망한 삶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난 여기가 맘에 들었다.


겉으로는 고모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애련한 독백이지만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주인공들의 사랑에 대한 영화의 시각이기도 하고

나아가 세상 모든 연인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간결한 경구처럼도 느껴진다.


사람이란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같이 보낸 시간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며

이런 것들은 만남이나 사랑의 결말과는 별개로

삶을 지탱해주는 위안과 행복이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서로 잊힐까 봐 두려워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확인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대에게 기억되느냐가 아니라

내가 상대를 기억하느냐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이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그냥 이대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허무함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세상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말 같기도 하다.
 

하여간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다시 생각이 나서

이 부분을 찾아보니 주책없이 눈물이 고였다.


좋아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를 기억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대를 기억하는 것이고 그걸로 충분하다는,

팬이란 특히나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 김아중 팬으로 지내는 내 처지와

주인공 고모의 처지가 오버랩되어 더 애틋하게 여겨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고모는 마치 내게

내가 김아중을 기억하면 그뿐이고

그러면 충분한 거라고 말을 건네는 듯싶다.
 

아는데,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다.


고모는 '윌리엄'을 만난 적이라도 있지...
 

고모의 유언 부분을 영화에서 잘라내어 올리려고 했는데
 
구글에 올리는 방법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여기와 똑같은 내 다른 블로그 링크를 적어둔다.
 
 
 
영화 전체를 통해 흐르는 애잔함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지만
 
쇠락한 집 안 풍경과 차분한 배경 음악,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차분히
 
삶을 관조하는 듯한 여배우의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나에겐 이게 있다...)
 
 
자신의 늙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어
 
그가 자신을 찾지 않은 것은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3회 캡처)
 
(동영상 출처는 영화 '첨밀밀' (199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