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과 향 자일리톨 껌을 입에 넣었을 때였다.
사과 향이 입안에 은근히 퍼지는데
느닷없이 아, 이 향이 바로 김아중이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때리는 거였다.
이어서 김아중은 풋사과다.는 생각도 들고.
이유는 없었다.
지금까지 수백 개는 씹었을 껌이고
지금까지 수백 개는 먹었을 사과인데
갑자기 사과 향이 김아중으로 변하고
다시 김아중은 풋사과로 변하는 거였다.
... 나도 가끔은 껌이 김아중으로 변하는 개 껌 같은 얘기 말고
껌으로 한가하게 풍선이나 불어본 얘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원한 연둣빛. 사각사각하는 상쾌함.
단맛과 자극적인 신맛의 조화로운 공존.
부드러우면서도 도도한 김아중이 변신한 것 같은 과일.
바나나나 허니듀?
아니지. 물러터지고.
참외 수박 배?
... 달아터졌다...
풋사과 이상으로 김아중 같은 과일은 없다.
깨물면 김아중이 튀어나올 것 같은.
아무렴.
나로서는 기막힌 연상이다.
내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한계치다.
연두색만 해도 그렇다.
따뜻한 노랑과 차가운 파랑의 혼합색.
이젠 길을 가다 연두색 담장만 봐도 김아중이 떠오르는 거다.
평범하던 것이라도 새로운 의미가 되는 날이 있고
그런 일은 언제나 예고도 없이 일어난다.
매일 지나치던 길가의 풀잎이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눈부시게 눈에 들어오고
벌써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유도 없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것처럼
이유도 없이 잊히지 않는다.
젊은 날 타지에서 처음 사용했던 비누의 향은
언제나 미지에 대한 설렘과 막막함이 엉켜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고
그 한때에 대한 기억은 다시 비누의 향으로 연결된다.
풀 이파리 몇 개가 비누 하나가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몇 미터 앞 모래 몇 알 때문에
예상치 못하게 길 위에서 나둥그러진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영화 하나 보다가
눈부신 김아중에 나둥그러지는 거다.
그렇게 많은 영화를 봤는데
헤아릴 수없이 많은 여배우를 봤는데
난 김아중에게서 걸린 거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길을 가다 연두색 풀잎만 봐도 김아중이 떠오른다.
그런데 사과 껌 이후로 나는 이런 생각도 가끔 한다.
김아중은 바다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고.
싱싱한 생미역처럼 시원하고 그윽한 먼 바닷내음.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몰아치기도 하는.
넓고 푸르고 아련하게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그래서 이제 또 바다만 떠올리면...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비디비치 페이스북, 비디비치 2013 F/W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