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8일 일요일

김아중이니까



여태껏 김아중과 비슷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있으면 벌써 유명해졌겠지...
 
 
그런데 며칠 전 다운받은 어떤 노래를 듣는 중에
 
아내가 이거 누가 부르는 거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같이 들었던 노랜데 여태 모르고 들었나 싶어서
 
가수 이름을 말해줬더니
 
김아중 같았는데 고음에서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긴가민가했단다.
 
 
아니 그게 무슨...
 
'인형의 꿈'을 부르는 '러브홀릭'이었는데.
 
 
어이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그걸 내색할 군번은 또 아니고
 
이런 걸로 말을 이어 나가봐야 내게 득이 될 것도 없어서
 
 
가만히 먼 산이나 바라보며 멍하니, 충격으로 멍한 것도 있었지만,
 
대체 어느 부분에서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건지 머리를 쥐어짜 보니까
 
하~하~ 하는 바람 빠지는 듯한 창법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또 할 일도 어지간히 없는 마당에 계속 할 일도 없이 머리를 굴려보니
 
내 편에서 보자면 아무래도 터무니없는 이런 아내의 오해에는 의심할 바 없이
 
나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냐...
 
아내가 말은 하지 않지만,
 
내가 듣는 여자 가수 노래 중에 자신이 잘 못 듣던 것은 웬만하면
 
일단 다 김아중 노래일 거라고 짐작하는 상황 같다는 거다.
 
아마도.
 
 
물론 아내는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별 뜻 없이 말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제 발이 저린 나의 과민한 망상일 뿐일 수도 있으나
 
전혀 비슷하지 않은 김아중을 끌어다 댄 데에는
 
단순히 나의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되는 거다.
 
 
어쨌든 내 날카롭지 못한 이성적 추론에 따라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김아중이 가수도 아닌데 잘 못 듣던 노래라고 해서
 
그 많은 걸 전부 다 김아중이 불렀으리라고 정말 아내가 생각한다면
 
그건 매우 심각한 비약이고 부조리한 선입견임이 틀림없다.
 
 
이런 선입견의 막심한 폐해에 대해 아내와 마주 앉아
 
술잔이라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고도 지성인다운 논의를 하기엔
 
그간 나의 행적이 그리 떳떳지 못하고,
 
 
그러지 말라고, 내가 너무 억울한 거 아니냐며
 
이젠 무말랭이처럼 말라버린 아내의 감정에 호소하기엔
 
역시 그간 나의 행적이 문제로 떠올라서 난 그냥 답답한 것이다.
 
 
물론 김아중이 가수도 아닌데 일본어 노래까지 부른 걸 보면
 
아무 노래나 다 불렀을 것 같은 의구심이 들 법도 하고
 
 
또 그 김아중의 일본 노래까지 찾아 듣는 인간이라면
 
무엇을 또 못 찾아 들을까 하는 그런 의심을 하는 것 또한
 
대단히 부당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는 데 나의 딜레마가 있지만,
 
 
이 머리를 어지럽히는 오해의 요점은
 
목소리가 비슷하냐 아니냐
 
또는 김아중이 노래를 다 불렀느냐 아니냐
 
또는 김아중이 별걸 다 부르는구나 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나는 항상 김아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처신 잘해라.
 
라는 아내의 에두른 경계경보, 혹은
 
 
이 인간이 아직도 김아중을 좋아하지 아마?
 
라는 미처 아내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러난 무의식 속의 경계심 따위
 
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쯤 되면 난 요즘 품행 방정하니 잘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왜 그러는 겨?
 
라는 케케묵은 의문이 다시금 슬그머니 떠오르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머리를 돌려보면
 
결국 이 끝없이 돌고 도는 듯한 불신의 시작은 나의 과거 주책없음에서 비롯된 거라서
 
이게 바로 생활 속의 인과응보인가 하는 잔잔한 깨달음에 이르게 되는 거다.
 
 
... 내가 할 일이 이만큼이나 없다...
 
 
팬질은 관객도 없이 평균대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쓸쓸하고
 
위험수당도 없이 혼자 좋아 죽는 고공 줄타기 같은 위태로운 작업이다.
 
균형을 알아야 하고 망상을 더해야 하며
 
도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고 총알도 가끔...
 
 
난 처음이라 몰랐고 지금도 애써 모른 척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김아중이라면, 김아중이니까
 
난 모든 걸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마약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은 느낌으로 몽롱하게 스며들어
 
산재한 불안과 아쉬움을 잠재우기 때문이다.
 
팬질이란...
 
 
 
(사진 출처: KBS 2009년 4, 5, 6월 수목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12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