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예쁘다기보다는 평범하거나 특징 없이
밋밋한 생김의 배우들이 여주인공을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내가 보는 드라마를 오다가다 옆에서 잠깐 보면
아니 쟤가 왜...? 싶은 배우들이 많아졌어요.
저야 뭐 김아중 빼면 세상 모든 배우가 연기든
외모든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도토리 키재기라도 좀 큰 도토리가 있기
마련인데 이상하더라고요.
왜 작은 도토리를 쓰는지.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며칠 전 아내가 새 주말 드라마를 보다가
쟤가 어떻게 주연이냐며 열을 내더니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면서 채널을 돌리더군요.
한 마디로 주연을 하기엔 안 예쁘다는 거였어요.
물론 제가 대충 보기에 드라마 내용도 별로였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었겠죠.
그러면서 몇 달 전 아주 유명했던 드라마에서도
여주가 평범해서 참고 보느라 아주 힘들었다는 거예요.
드라마 설정상으로는 예뻐야 하는데 실제 배우가
그렇지 않으면 몰입이 어렵다는 주장이었어요.
평범한 애가 예쁜 척하는 건 도저히 봐줄 수가 없다네요.
아주 뜻밖이었죠.
저는 제가 남자니까 예쁜 배우를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유는 좀 다르지만, 결과적으론 아내도
분명히 예쁜 배우를 원하는 거니까요.
후련했어요.
내가 하고 싶던 말을 아내가 해주니까.
그간 남자 주연에 대해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여주인공에 관해선 이렇다저렇다 말을
잘 못 하겠더라고요.
이쁜 건 김아중뿐인 사람이 어련하겠느냐고
느닷없는 기습을 당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좀 답답했죠.
TV 보면서 실없이 이런저런 말을 하더라도
여주인공 평가만큼은 함부로 할 수 없었으니까요.
... 김아중 팬은
도토리들을 도토리라고 할 수 없어...
하여간 나불대고 싶을 때라도 조심하며
지냈는데 뜻밖에 아내가 물꼬를 튼 거였죠.
그래서 저도 신나서 같이 장단을 맞췄습니다.
요즘엔 왜 작은 도토리들이 이리도 많은 거냐
대충 그런 내용으로 말이죠.
김아중이 주연을 해야 한다... 까지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감당이 안 되고...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제게 여주인공 평가 자유
이용권이 생긴 거라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가면 늘 뒤통수가 노출되기 마련이고
뒤가 서늘하다 싶을 땐 이미 늦은 거니까요.
보조를 맞추면서도 미묘하게 늦는 한 걸음이 중요하죠.
자유이용권 같은 건 없...
어쩌면 우리 세대는 워낙 예쁜 배우들만 주인공을
하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주인공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기왕이면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원하는
보편적 욕구 때문에 평범한 얼굴에는 만족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이유야 어떻든 이런 시답잖은 일에 아내와
의기투합하는 상황이 유쾌했어요.
그러다 문득 이 신나는 대화에서 직접
언급되지 않은 사실 하나를 깨달았죠.
아내가 김아중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그런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거요.
단 한 번도.
당연한 건데도
왠지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두고두고 기분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진 출처: A+G 엣지 : CJmall: http://display.cjma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