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5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나의 스릴



난 롤러코스터 타는 게 좋다.

천천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 긴장감이 극에 달했을 때

잠시 머뭇거리는 정적이 흐른 후 갑자기 뚝 떨어지며

숨이 막히고 오금이 저리게 되는 그 느낌.

활시위를 떠나는 화살 같은.


잠깐의 무중력 상태, 숨 돌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빠른 속도와 회전.

모든 게 끝난 후의 나른한 안도감. 

그런 것들이 좋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고 난 뒤에는 놀이공원에 갈 일이 없어져서

마지막으로 타본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번지 점프도 한 번쯤 해보고 싶었지만 

축 늘어진 오징어 같은 내 몸으론 이제 무리다.


스포츠와 관련해서 시청하는 유일한 운동 경기는 F1 자동차 경주다.

빠른 속도와 고성능 엔진의 날카로운 고음은 무료한 심장을 뛰게 한다.

그래서 내 드림 카는 정지선에서 미친 듯 튀어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늘에서 돈이 궤짝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내가 타볼 일은 없을 거다.


몸은 오징어처럼 물렁거려도 마음만은 짜릿한 스릴을 원한다.

롤러코스터나 F1처럼 빠른 속도가 주는 스릴이 좋지만 

나이가 드니까 일상에서 어떤 형태로든 스릴을 느낄만한 일이 거의 없다.


내 벨 소리는 김아중의 'Show me your heart'다.

내 기억엔 이걸 사용한 지 적어도 반년은 넘었는데 

그간 아내가 아무 말이 없었다.


난 아내가 김아중 노래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러려니, 

나이는 다른 데로 먹었으려니 하며 지내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벨이 울리면 언제나 바늘방석에 앉아있는 듯 가슴이 따끔거려서

최대한 전화를 빨리 받는 것이 습관이 됐다.


며칠 전에도 쓸데없는 스팸 전화가 오기에 

평소처럼 날쌘 동작으로 그냥 꺼버렸는데 

그날따라 아내가 지나가는 투로 

"당신 그 벨 소리는 뭐야?

당신이랑 안 어울리는데... 좀 의외야.ㅎㅎ"

하는 거였다.


헉. 

아내가 여태 이게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니.

이럴 수가.

올 것이 왔구나. 

난관이다. 하는 등의 온갖 생각에 등줄기가 저릿해지는 순간

아내 옆에 있던 큰 애가 갑자기 당연하다는 투로

"김아중 아니에요?"

하며 뜬금없이 튀어나와 내 생각을 딱 가로막았다.


아니, 이놈이가 그걸 어떻게...

이제 보니 이놈 이거 무서운 놈일세...


"잉? 김아중? 참, 나...ㅎㅎ"

아내는 자기가 여태 몰랐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벨 소리까지 김아중 노래로 듣는 게 어이가 없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는 모호한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어 맞어... 당신 여태 몰랐어?ㅎㅎ"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버거운 상황이었지만

난 당황하지 않고 두 사람의 얼굴을 재빨리 스캔하면서 

당연한 걸 새삼 왜 그러느냐는 분위기를 최대한 잡았다.


... 나도 단련이 좀 된 듯...


"근데 어떻게 그렇게 했어?"

"아, 내 건 그냥 폰에 있는 노래를 벨로 지정하면 돼.ㅎㅎ"

"참, 별걸 다 해요.ㅎㅎ 내 것도 그렇게 되나?"


말하다 보니 폰에 김아중 노래가 있다는 걸 털어놓은 셈이었는데 

아들 애가 엄마 폰 벨 소리도 바꿀 수 있다, 

자기가 나중에 노래를 넣어주겠다고 다시 껴드는 바람에 

아무의 관심도 끌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얘기가 일단락되었다.

... 이놈이 병 주고 약 주고...


어쨌든 무사했다.

모든 게 지나간 뒤의 홀가분한 안도감.

물 간 오징어 같은 할배의 스릴...

김아중코스터.

요즘 유일한 스릴이다.


그래서 내가 벨 소리를 김아중 노래로 지정했는지도 모른다.

내 무의식이 은연중에 롤러코스터 같은 스릴을 찾아낸 걸 거다.


그나저나 내 블로그가 발각된다면 그건 아내가 아니라

아들애 때문일 것만 같다는 걱정이 생겼다.

얘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은근히 꿰뚫고 있는 느낌이다.

이건 스릴이 스카이다이빙 수준인데...

김아중은 너무 스릴이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5년 9월 8일 화요일

김아중 그리고 내 모자






이런 블로그에 내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는 건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블로그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여기 있는 모든 얘기가 내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서

그래서 말을 꺼내 보자면 난 머리가 작은 편이 아니다.


아, 햇살이 이렇게도 좋은데 이 무슨 뜬금없는 고백인가...


수학 부등식 단원을 자면서 배웠더라도 다 알겠지만

무엇무엇보다 작지 않다는 뜻은

그게 무엇이든 그것보다 크거나 같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 무엇이 무엇이든 난 큰 게 아니라

그 무엇과 같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고 싶다.


머릿속 내용물도 작은 편이 아니라면 바랄 게 없겠지만

그건 또 아니라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이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 좀 있다.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더할 나위 없는 끝물에 이르렀지만

난 여름마다 은근히 모자에 신경이 쓰이는데 올여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자 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따금 뙤약볕에 강아지와 산책이라도 하게 되면

챙 넓은 둥근 모자를 쓴 사람이 부러워지기도 하고

머리도 채 감지 않은 아침나절에 어디라도 급히 나갈 일이 생기면

어울리는 모자 하나가 절실해지는데

나로 말하자면 내게 어울리는 올바른 사이즈를 일반 마트나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발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원 사이즈 핏츠 올' 혹은 '프리 사이즈' 따위의

시답지 않은 설명을 붙이고 있는 모자들은

백이면 백 모두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를 위한 것이다.


그런 설명에 솔깃해서, 또는 머리가 짧을 때 억지로라도 맞는 듯해서 샀던 것들은

한 번의 세탁 과정을 거치면 머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에 얌전히 얹게 되는 사이즈로 변신하게 된다.


허접스러운 티셔츠 하나에도 대중소 세 가지 구분이 있는 마당에

어째서 모자 만큼은 하나같이 한 사이즈밖에 없는지 정말 궁금한 일이다.

예전 학창 시절엔 교모에도 사이즈 구분이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교모가 폐지된 이후에는 머리 큰 사람들도 덩달아 우리나라에서 폐지된 것인지,

모자 만드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 수년 전에 우연히 미국이나 영국 가게에서는

XL을 넘어 XXL 사이즈까지 인터넷으로 판매한다는 걸 발견했는데

그건 마치 세상의 눈을 피해 어디에선가 숨어지내던 나의 동족들이

일시에 대밍아웃이라도 하는 듯한 숨 가쁜 감동이었고

누가 내게 이제 당신은 이 세상에 더는 혼자가 아니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모자라는 게 그다지 절실한 물건은 아니었고 또

그런 것까지 외국으로부터 사기는 좀 뭣하다는 생각에 그냥 부러워하고 말았는데

작년 겨울 미국에 머물 때 마침 생각이 나서

인터넷으로 겨울용 XL 사이즈 하나를 주문했었다.


예전에 L 사이즈 머리까지 문제없다던 모자를 한 번 구매했다가

그들의 L과 나의 L 사이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심연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XL이었다.


내 소중한 개인 정보를 블로그에 까발리다니...


하여간 당시에 며칠을 기다려 XL 사이즈 모자를 받아들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머리를 넣어보는데

아무런 저항도 없이 머리가 모자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드디어 내 자리를 찾았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학창 시절 이래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

'모자를 찾아서'라는 길고 외로운 여정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는 성취감 같은 것들이

복잡 미묘하게 뒤섞여 마치 신세계라도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더구나 그 모자는 넉넉했다는 사실.

그랬다. XL은 내게도 넉넉했던 거다.

내가 늘 마음속으로만 웅얼거리던 작은 외침.

'난 그저 작지 않을 뿐이야!'를 확인했다는 것도 의의라면 의의였다.


이제 낮이고 밤이고 어디든 머리 안 감고도 편안히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긋한 기분.

이젠 내 머리를 구속하며 옥죄던 모자들은 가라...


무슨 모자 하나 사고 호들갑이냐 할지 모르지만,

옷이나 신발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모자들은

스타일이나 사이즈가 다양하지 않아서

내 맘에 드는 것을 과연 살 수 있을지 그간 의문이 들었었기 때문에

모자를 찾았을 때의 기분은 남달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머리 작은 것들은 모른다...

니들이 뭘 아러... 니들이 모자를 아러?...


하지만 적어도 모자는 누군가 어딘가에서 만들기는 만들 거라는 희망은 있었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드는 거니까 말이다.

나보다 훨씬 심한 사람도 어딘가엔 자신의 모자가 있을 거라는

믿음까지 버릴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데 배우는 다르다.

내 맘에 딱 드는 배우.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할 수 없다.

김아중을 보기 전까진 나도 그런 게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으니까.

하늘이 돕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른 배우들은 모두 그저 어딘가 맞지 않는 모자들처럼

잠시 머리 위에 얹어졌다가 어딘가로 잊혀가곤 했다.


김아중은 내게 꼭 맞는 모자 같은 배우다.

잘 맞아서 편안하고 바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지 않고

머리 대신 마음을 덮어주는 모자.

모자든 배우든 마음에 드는 것이 세상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어쨌든 이번 여름에는 아마존에서 둥근 챙이 달린 여름 모자 하나를 샀다.

이제 내 사이즈를 아니까 실패하지 않는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맞는 모자가 여름과 겨울용으로 각각 하나씩 있는 거다.

마음은 김아중 하나로 사시사철 덮을 수 있지만

머리를 덮는 데는 대충 두 개는 필요한 듯싶다.


아내도 내가 잘 맞는 모자를 찾았다니까 자기 일처럼 좋아했었다.

그간 모자를 찾아 헤매던 나의 수고를 알기 때문이었다.

김아중을 찾았다고 했을 때는 말도 못하게 뜨악한 표정이더니...

그거 참...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5년 7월 31일 금요일

김아중과 좋은 생각



TV에 어떤 아저씨가 나와서 하는 말이

남을 위해 좋은 생각을 하고 또 좋은 글을 쓰면

자신의 얼굴이 좋은 얼굴로 변한단다.


대개 이런 말들은 이렇다 할 근거가 없더라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왠지 정말일 거 같은,

좋은 생각을 해주면 좋은 얼굴을 받는 공평한 세상.


그래, 이제부턴 좋은 생각만 하는 거야.

나도 어서 당장 좋은 글을 싸질러야 해.


그래서 달려와서 고작 하는 게 이 블로그질...


가만, 내가 남을 위해 한 번이라도 좋은 생각을 해 본 적이... 

... ... 


그래도 김아중을 위해서는

적어도 나쁘다고 할만한 생각을 한 기억이 없다는 사실...


...기억만 없을지도...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내 얼굴이 무척 좋아졌...

더우면 기름기로 번들번들 광도 막 나고...


잠깐...

그럼 김아중은 대체 얼마나 좋은 생각을 하며 살기에 

그렇게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냔 말이지.


김아중은 아프리카 애들 생각을 많이 하니까...


온 세상 팬들을 위해서도 매일매일 좋은 생각을 막 할 거고...


팬 중에는 나 같은 아저씨도 막 껴있겠지...


어후..., 

김아중이 날 위해서 매일 ...


어후..., 

숨이 턱 막히면서 안 먹어도 또 막 배가 부르고...


그래서 내 배가 막 나오는구나...


그런 거였어...

내 둥근 배는 김아중 때문...


더워서 웃통을 벗고 있으면

배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심란한 착시 현상에 관한 적나라한 고찰...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



2015년 7월 5일 일요일

김아중의 '캐치 미' OST를 내려받았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는데 '캐치 미'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진숙'이 남산에서 '호태'와 엇갈리는 장면이다.


어긋나는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말없이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진숙'을 보고 있으면

변변한 첫사랑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나도, 응?, 

그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이 마음에 적지 않은 공명을 일으켜

'진숙'이 김아중인지 김아중이 '진숙'인지 정신이 아득해진다고밖에 할 수 없다.

연기가 연기가 아니다. 


난 그 한 장면만으로도 '캐치 미'의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장면을 보면 내가 왜 맨날 미친 사람 헛소리하듯 

김아중 김아중 거리는지 미루어 알 사람은 알 거다.


... ... 이뻐...


그건 그렇고,

그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주는 것이 배경으로 흐르는 잔잔한 OST인데 

영화 BD에도 따로 실려있지 않고 OST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어서 

그 음악만 간편하게 들을 수 없는 점이 늘 아쉬웠다.


그러다 며칠 전 우연히 이걸 네이버 뮤직에서 발견했다.

그런 데서 구할 수 있다는 걸 여태 모르고 있었으니 

나 자신 어이가 없지만, 어쨌든 봤으니 사야 했다.


배경 음악이 짤막짤막한 것까지 모두 33곡인데

그 중 '널 만난 그 날', '헤어지던, 남산', '고백 1 - 우리 이번만 헤어지자',

'고백 2 - 아직 널 사랑해', '다시 시작한 우리', 등 총 5곡을 구매했다.


남산 장면에 흐르던 음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헤어지던, 남산'이다.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이 교차하는 분위기에 

더 할 수 없이 잘 어울리게 작곡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곡들도 그렇지만 '널 만난 그 날'은 낭만적인 회상 장면에 

여러 형태로 변주되어 사용되는 곡인데 따뜻하고 설레는 느낌이 좋다.


'널 만난 그 날'의 변주곡들 가운데는 1분 내외의 짧은 곡들도 있는데 

그런 것도 전부 내려받고 싶었지만, 너무 짧으면 

무슨 음악이 그렇게 짧으냐고 아내가 출처를 캐물을까 봐 참았다.


'다시 시작한 우리'는 영화 맨 마지막에 사용된 밝고 경쾌한 곡.


아무튼, 다 내려받지 못해서 매우 아쉽지만, 음악들이 참 좋다.

종종 영화 보다가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이사 온 옆집에서 떡 한 접시라도 가져온 듯 행복해지는데

특히 이건 듣고 있으면 김아중도 떠오르니 더 말할 게 없다.

떡을 시루째 받은 느낌이다...



(사진 출처: 영화 '캐치 미'(2013.12.18 개봉) 캡처)